무뎌지는 방법

독하게 마주하기

by 흐를일별진



긴 시간의 연애를 끝내고 내가 그를 잊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이별의 상처를 마주하는 거였다.
그 무렵의 나를 주변에서는 지나치게 독하다고 말했고, 나는 독해지지 않고서는 완전히 그를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5년의 시간은 습관이 되기에 충분했으니까.


보통의 사람들이 이별한 연인과 관련된 모든 걸 지우고 눈 앞에서 치워낼 때, 나는 그 모든 걸 눈 앞에 꺼냈다. 그가 준것들을 일부러 마주하고, 함께 갔던 장소를 찾아가고, 그 순간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고의적으로 실감했다. 어떻게 애를 써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상처를 후벼 파며 확인했다. 무뎌질 때까지 계속해서 보고 또 봤다.

그 무렵엔 영화도 음악도 멀리했다. 그와 관련된 추억이 무뎌질 때까지 어떤 외부 자극도 피했다. 감정이 뒤섞이면 현실 감각에 착오가 오니까, 최대한 추억을 무디게 만드는 데만 집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이 지나면 모든 게 익숙해졌다. 눈 앞에 있는 것들을 보면서도 있는지 몰랐고 그의 사진을 보면서도 아 이런 사람과 연애했었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이별 노래를 들어도 슬프지 않았고 로맨스 영화를 봐도 혼자라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그 무렵의 나, 5년의 연애가 덤덤해지기까지 딱 1달이 걸렸다. 그 후에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큰 동요도 없었다. 이미 내 마음엔 딱지가 앉다 못해 새살이 돋기 시작했으니까.


피하는 건 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모른 척 현실을 묻어두는 건, 임시방편이라 생각했다. 훗날 아주 작은 자극에도 흔들리게 될, 나를 속이는 거짓말. 끝이 완전해지려면 폭행을 당하듯 내 마음을 쉴 틈 없이 한계치로 몰아야 했다. 그래야만 어떤 자극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극단적인 예시가 이별이지만, 사실 나는 사람을 비롯한 날 힘들게하는 모든 걸 잊기 위해 같은 방법을 썼다. 새살이 돋을 때까지 상처를 뜯고 또 뜯어내는 것. 아주 가끔 흉터가 생기기도 하지만, 흉이란 건 완전히 과거가 무뎌졌다는 소리와 같다고 생각했다. 흉터가 있는 곳엔 또 다른 흉터를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게 되니까 말이다.


생각해보면 정말 별거 아닌, 아주 짧은 시간의 만남이었는데 이상하게 남아있는 게 많다. 그래서 몇 주가 지난 지금도 확실한 것보다는 의문인 게 더 많다.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남은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나를 모르겠는 기분인데, 그냥 분위기에 휩쓸린 건가 싶다가도 어쩌면 필연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괜찮은 줄 알았던 발목이 아프고, 갑자기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져서 한동안 피하고자 했던 순간들을 다시 꺼내보기 시작했다. 우습게도 그 과정이 일종의 시발 비용이라고 하는 충동구매까지 이어졌는데 (에어팟 프로를 예찬하며!) 진짜 조금씩 무뎌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뭔가 까마득한 옛일 같기도 하고. 역시, 그냥 덮어버리는 건 나하고 안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