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성령론 강의는 반전으로 가득했다. 다른 강사님들이 주로 따뜻하고 편안한 니트 차림으로 오셨다면 말끔한 셔츠에 벨트까지 하고 오신 이병호 간사님은 첫인상부터 사뭇 진지해 보였다. 한마디로 성령론이라는 강의에 걸맞게 굉장히 진지한 강의를 선사하실 것만 같았다.
강의 서두에 자신이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거듭 소개하실 때에도 의례 하는 이야기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강의를 시작함과 동시에 '나만 봐! 나만 봐! 나만~~ 봐!'라는 최고의 유행어를 연발하며 한껏 치켜올린 무릎을 양손으로 찰싹 치는 앙증맞은(?) 간사님의 몸동작에 모두가 무장해제 되고 말았다.
그렇게 우리는 제목부터 무시무시한 성령론 시간에 가장 많이 웃었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얼마나 웃었던지 강의가 끝난 뒤에 성령에 대해 무엇을 배웠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였다. 내용이 가볍진 않았다. 성령을 따라 살았던 간사님의 간증은 많은 이들, 특히 군생활에서 겪은 이야기는 남학생들의 마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의 핵심은 성령이 하라는 대로 하고 성령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토록 단순한 일이 그토록 어려운 이유는 우리의 의지가 좀처럼 꺾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간사님은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덕일 만큼 억울한 상황에서 군대에 차출되었다. 그 억울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혹독한 교관을 만나 어려운 훈련소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저녁 점호 시간에 교관이 욕설을 내뱉으며 ' 기독교 xx 있으면 당장 앞으로 튀어나와!'라며 소리를 질렀다. 찍히면 죽는다는 생각에 모두 숨죽이고 있는데 마음 한편에 '네가 나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사님의 반응은 어땠을까? 당연히 헛소리라고 치부하며 무시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며칠 뒤 같은 상황에서 관등성명을 외치며 스스로 사지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하나의 예이지만 성령으로 사는 삶과 내 의지로 사는 삶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해되지 않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찾아올 때가 있다. 설상가상으로 그 후에 더 큰 어려움이 찾아온다. 그런데도 성경은 그것을 성령을 따르는 길이라고 말한다. 간사님도 기독교인임을 밝힌 후에 숱한 어려움을 겪었고 다른 간증들처럼 훗날에야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여전히 겁이 많아서 선뜻 용기가 나지 않지만 성령을 따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성령을 따르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그 길을 인내하며 순종한다면 언젠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다. 반대로 내 의지로만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다고 인생의 모든 어려움을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담임목사님께서 항상 강조하시는 말씀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스스로 찾지 않는다면 우리 삶에 반드시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안 될 만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예수님을 좋아했고 하나님과 성령님은 조금 멀게 느껴졌다. 성령님은 뭔가 수련회나 부흥회에서만 만나는 조금은 평범하지 않은 영적인 존재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예배시간에 성령충만을 구하라고 할 때도 인격적인 친밀감보다는 신비로운 무언가를 쫓는 것 같아서 일말의 거부감이 있었다.
그럼에도 BEDTS(독수리예수제자훈련학교) 훈련을 통해 성령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내가 만든 하나님이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더욱 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