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강의 대신 애찬식이 있었다. 생소한 단어라서 찾아보니 초기 기독교 신자들이 성찬식이 끝난 뒤 한자리에 모여서 음식을 함께 먹던 잔치라고 한다. 우리는 성찬식을 하지 않아서 애찬식이란 사전적 의미에 맞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한 자리에 모여서 함께 음식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BEDTS(독수리예수제자훈련학교)는 대략 4달 정도 강의가 진행되는데 바쁘게 달려온 지난 두 달을 돌아보고 남은 시간을 격려하고자 이 시기에 애찬식을 하게 된 것 같다.
금요일 저녁은 정말이지 배꼽 빠지게 웃음 가득한 시간이었다. 평소 근엄한 학교장님이 '따이따이~'를 연발하는 모습이라니! 남자 간사님들의 차력쇼에 이어진 여자 간사님들의 복고풍 댄스까지. 얼마나 웃었으면 금요철야로 본당에 모인 성도님들이 나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을 정도였다. BEDTS는 무척 따뜻하지만 진지한 학교다. 적지 않은 인생의 시간과 재정을 들여 모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여 학교 과정이 느슨해지지 않을까 항상 주의를 기울이셨는데, 오늘은 모두가 조금은 느슨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함께 웃었다.
특히 간사님들의 차력쇼가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 이제 갓 돌을 지난 둘째가 다음 날 아침 갑자기 우유병을 손으로 치면서 '따이따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토요일 모임에서도 아이는 한동안 계속 따이따이를 외쳤다... 아기독수리학교(키즈케어)에 있던 첫째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아마 밤새 집에서 차력쇼가 열리지 않았을까 싶다.
애찬식이 감사했던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날 오전에 첫째 유치원 운동회가 있었다. 처음 가보는 운동회는 생각보다 훨씬 즐겁고 신났다. 그렇게 운동회의 꽃인 계주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덩달아 분위기에 들뜬 나는 아내를 권유해서 여성 계주 대표로 내보냈다. 아내가 뛰는 모습을 영상에 담아두려고 바통을 넘겨받을 즈음 함께 달리기 시작했는데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아내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남성분이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스타트하는 아내를 뒤에서 그대로 덮쳐 버렸다. 아내는 힘겹게 다시 일어나서 경기를 마쳤지만 옷도 찢어지고 상처도 있었다. 처음에는 타박상 정도로 여겼는데 시간이 갈수록 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에 가보니 팔이 골절돼서 그 자리에서 뼈를 맞추고 붕대를 감았다. 아이들 운동회에서 다치는 부모님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그게 우리 가족이 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계주를 권했던 아내에게 미안했고 걱정이 앞섰다.
오후 내 무거운 마음이 있었는데 아내는 괜찮다며 집에서 쉬는 대신 BEDTS에 참석했다. 모임을 마치고 밤늦게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가 말했다. '요즘 하나님께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오늘 애찬식을 보면서 정말 많이 웃었고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 같아서 너무 행복했어요.' 아내의 말이 깊은 여운을 남겼다. 어찌 보면 참 불행하다고 느낄 수 있는 하루였을텐데 아내는 그 순간을 가장 기뻐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과의 시간을 우선으로 여기는 아내를 위해 하나님이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주셨다고.
토요일 오후에는 하나님의 음성 듣기 체험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금요일에 하루 쉬었으니 토요일은 다시 원래 진지한 모습으로 돌아가는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내 예상을 빗나갔다. 체험은 야외활동이었는데 2인 1조로 한 사람은 목자, 한 사람은 양이었다. 양은 안대로 눈을 가리고 목자의 음성을 따라 모든 코스를 통과해야 한다. 문제는 중간중간 섞여 있는 사탄(간사님)이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있어서 관전을 했는데 사탄의 속임수는 제법 교묘했다. 팔을 다친 아내에게 계단에서 목자의 손을 잡고 가도 된다고 하거나, 임산부인 자매에게 잠시 쉬어가도 된다는 식의 말은 너무 그럴싸하게 들렸다. 더 큰 어려움은 목자도 그게 거짓말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양보다 목자가 더 앞장서서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기도 했다. 비밀이지만 어떤 목자와 양은 사탄에게 일찌감치 속아서 강의실에서 따뜻한 어묵국물을 마시며 한참을 쉬기도 했다.
직접 양과 목자를 해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뜻밖의 깨달음이 있었다. 양과 목자가 활보(?)하고 있는 동산 한쪽에 서있는 나에게 간사님 한분이 다가오셔서 말씀하셨다. '형제님, 아내에게 내리막길에서 잠깐 기다리라고 해줄래요?' 처음이라 아직 상황파악이 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무심결에 '왜요?'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간사님이 한참 침묵하시더니 당황한 모습으로 말없이 황급히 떠나셨다. 나만 덩그러니 남아서 당황하고 있었는데 그제야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고 간사님이 나를 이용해서 아내를 속이려고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내가 너무 속일 틈을 보이지 않았나 죄송한 마음이 들다가 이내 이런 생각을 했다. 아, 생각보다 사탄의 속임수가 허술하구나(간사님 죄송합니다!). 다시 돌아보니 사탄도 양과 목자를 속이기 위해 무던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중에는 아무도 속아주지 않는 사탄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나는 사탄으로 대변되는 세상의 시험과 유혹이 은연중에 완벽하리만큼 강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벌벌 떨었다. 하지만 사탄은 완벽하지 않다. 그들도 나를 속이고 넘어뜨리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지만 항상 성공적이지는 않다. 그리고 만약 내가 그들의 속임수를 알고 이겨낼 수 있다면 그들이 안쓰럽게 여겨질 만큼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이시고 그분은 세상보다 크시기 때문이다. 그렇게 뜻밖의 시간과 장소에서 사탄에 대한 두려움이 한꺼풀 벗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