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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by 더디지만 우아하게

BEDTS(독수리예수제자훈련학교)도 벌써 한 달의 시간이 지났다. 5개월의 과정이 길게만 느껴졌었는데 막상 5분의 1이 지나갔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아쉬운 생각이 든다. 아직 훈련의 소회를 논하기에는 이르지만 BEDTS를 시작하면서 체감하는 변화 중 하나는 주말에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줄었다는 점이다.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 오후를 교회에서 보내야 하기에 여유시간이 없기도 하지만 그만큼 내가 그동안 무엇에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쏟았는지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허투루 보내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정작 우선순위는 많이 무너져 있었을지 모르겠다.


지난주는 예배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었다. 예수전도단 군산지부 대표로 계신 김진환 간사님께서 강의를 해주셨다. 대학생 시절 나에게 예수전도단은 찬양으로 알려진 선교단체였다. 예수전도단 화요모임은 한국을 대표하는 찬양예배 중 하나였고 지금도 우리는 예수전도단의 찬양을 많이 부른다. 그래서 처음 강의 주제를 들었을 때 찬양에 대해 말씀하실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강사님도 10여 년 이상 예수전도단 화요모임 찬양인도자로 섬겼다고 하셨다. 하지만 간사님은 비단 찬양에만 국한되지 않고 보다 본질적인 예배에 대해 말씀하셨다.


첫째, 예배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당연한 듯 보이는 말이지만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솔로몬 왕 사후 왕국이 분열되었을 당시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도 예배를 드렸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이 누구시며 제사가 무엇인지 가르쳐야 할 제사장들을 모두 추방하고 레위인이 아닌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다. 그 결과 성경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배했다고 고발한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해 망했다.


둘째, 예배는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베드로와 가롯유다가 있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심지어 저주까지 하는 엄청난 실패를 경험했다. 가롯유다도 돈을 받고 예수님을 팔았다. 둘 다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 하지만 베드로는 다시 주님께 돌아온 반면 가롯유다는 그러지 못했다. 베드로의 죄가 가롯유다의 죄보다 가벼워서였을까? 아니다. 베드로는 죄를 짓고 넘어졌지만 정죄하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용서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에 힘입어 다시 일어섰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되시며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 부르셨다.


마지막으로 예배는 삶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의 헬라어 원어의 뜻은 길들여지지 말라는 의미라고 한다. 성경에 나오는 첫 예배는 가인과 아벨의 제사다.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고 아벨의 제사를 기뻐하셨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을까?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창 4:4-5)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만 받으신 것이 아니라 아벨을 받으셨다. 아벨의 삶을 받으신 것이다. 반대로 가인의 삶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제물이 아니라 제물을 드리는 예배자의 삶을 받으신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은 예배여야 하고 우리는 삶으로 예배드려야 한다.


예배는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것이라는 간사님의 말씀에 여운이 남는다. 백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바치러 가는 길을 아브라함은 예배라고 말했다.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창 22:5). 당시 아브라함에게 이삭보다 소중한 것이 있었을까? 그의 예배는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오늘 나의 예배는 어떠한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부디 이 마음이 그저 스쳐가는 반성과 성찰로만 끝나지 않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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