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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림줄

다림줄은 공사현장에서 쓰이는 도구라고 한다. 건물을 지을 때 벽이나 기둥의 수직을 확인하기 위해 추를 매단 줄이다. 처음 벽돌을 쌓기 전에 기준을 잡을 때도 필요하지만 중간중간 건물을 제대로 쌓고 있는지 확인해야 하니 정말 중요한 도구이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 보도블록을 쌓을 때 양쪽 수평을 팽팽하게 맞춘 줄을 세워두고 작업했던 기억이 난다.


성경에도 다림줄이 나온다.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다림줄을 가지고 쌓은 담 곁에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셨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다림줄이니이다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두고 다시는 용서하지 아니하리니(암 7:7-8)


하나님의 다림줄이 있다. 줄을 잡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대상은 이스라엘 백성이다. 벽돌이 수직으로 쌓여 있는지, 즉 그 원래 목적대로 지어졌는지 확인하듯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다림줄로 측량하신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다시는 용서하지 아니하니니'.


무서운 말씀이지만 김형석 간사님은 다림줄을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정의하셨다. 벽돌이 잘 쌓여서 더 견고하고 멋진 건물로 만들기 위해 다림줄을 사용하듯 하나님도 우리를 벌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사랑하시기에 그분의 다림줄을 들고 우리를 찾아오신다. 다만 기준 없는 사랑은 잘못 쌓인 벽돌처럼 위태롭고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기에 그분의 진리로 우리를 바로 세우신다.


그래서인지 내적치유에 다림줄 강의를 많이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내적치유를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사랑의 부재로 시작된 거짓된 두려움이 만들어낸 우리 안의 공격성과 방어성이 우리 안에 많은 상처와 아픔, 실수와 관계의 실패를 만들어내는 일련의 과정을 배우면서 진정한 회복은 비단 과거의 아픔에 찾아가 눈물 흘리며 위로하고 용서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의 다림줄로 다시금 지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강의 시간에 감정을 쏟아내며 눈물을 흘리거나 지적인 깨달음의 순간이 있진 않았다. 하지만 강의는 많은 여운을 남겼다. 내 안에 나를 둘러친 많은 가면과 벽과 울타리가 겹겹이 쌓여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진실되게 살아왔노라 생각했던 지난날의 허물과 거짓된 모습을 인정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이번 BEDTS(독수리예수제자훈련학교)를 통해 그 모든 장벽들이 발견되고 인정되고 깨어지고 회복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하나님의 다림줄이 아픔의 시간을 넘어 다시금 나를 새롭게 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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