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문집

낡은 사진

낡은 기억

ㄴ낡은 사진은 오래된 사진과는 사뭇 다르다. 낡은 기억은 흐릿한 기억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낡았다는 것은 겹겹이 쌓인 그날의 분위기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바랜 색과 내음이다. 내 주변에는 낡은 무언가가 제법 많다. 먼저 내가 낡았다. 지금도 낡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언 10년 동안 내 곁을 지켜준 책과 몇 장의 사진이 있다. 물론 배낭과 손수건들도 유년기를 훌쩍 지났다.


낡은 물건이 있다는 건 뭐랄까 흩어진 기억의 조각을 간직하는 우직함이라고 할까. 추억을 먹고사는 송충이여도 좋다. 색 바랜 기억을 되뇌는 소의 되새김질이라도 괜찮다. 망각이 축복이라면 기억은 글쎄, 망각보다는 한 뼘 더 자란 기쁨이 아닐까. 기억이 없으면 망각도 없을 테고 망각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할 테니. 어쨌든 무언가를 기억한다는 건 좋은 일이 분명하다.


오늘의 내 모습이 좋은 색과 내음을 담은 사진 속 낡은 이름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그걸로 충분하다. 오래된 사진이 아닌, 내 삶의 온기와 생동하는 감정이 고스란히 바랜 그런 낡은 기억이면 좋겠다. 그날의 분위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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