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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디지만 우아하게 Mar 05. 2016

보리차가 가라앉는 시간

땅거미가 질 무렵 걷는 길이 좋습니다.

주광등 불빛 아래 불쑥 찾아오는 차분함과 낭만.


어린 시절, 어머니가 끓여주시는 보리차 향이 집 안 가득했습니다. '삐' 소리가 나면 얼른 달려가 주전자 불을 줄이고 때론 뚜껑을 살짝 열어두는 그 번거로움이 좋았습니다. 우리가 발을 '동동' 구르듯 이리저리 '둥둥' 떠다니던 보리알이 사그라든 불을 따라 바닥으로 하나 둘 모이는 그 차분함이 무척 좋았습니다.


여행에서 사진을 찍으면 아름다운 자연과 맑아진 마음 덕분에 마치 사진작가가 된 듯한 기분이 들곤 합니다. 근심 하나. 욕심 하나. 걱정 하나. 그렇게 마음의 보리알이 하나 둘 가라앉는 시간, 길을 걷는 나는 시인이 됩니다. 다행히 어느 작가의 말처럼 사색(思索)을 많이 해서 얼굴이 사색(死色)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사색(思索)을 이해하기엔 삶의 경험이 미천하거나 따뜻한 주광불빛이 창백한 얼굴빛을 가려준 탓이겠지요.


보리차가 가라앉는 시간.

나의 낭만이자 그리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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