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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lmarenvento Dec 05. 2017

용기

어린 날의 나는 겁이 없는 게 용기라고 생각했다. 일말의 두려움이나 주저함이 섞이면 용기가 아니라고 믿었다. 그래서인지 겁이 난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무섭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던 순간들은 열 손가락으로도 모자라다. 그때에 나는 겁이 많았다. 나는 여전히 겁이 많다. 다만 달라진 게 하나 있다. 두렵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이제는 겁이 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배웠다. 겁이 나도 용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니. 두려워서 용기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어린 날의 나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용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제한했다. 용기 없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자란 나는 두려움에 내딛는 한 걸음이 용기라고 믿는다. 두려움이 없는 것은 용기가 아니다. 그저 일상의 다른 이름이다. 용기란 두려움을 마주하고 두려움을 인정하고 두려움을 향해 나아가는 그 순간이다. 그래서 기쁘다. 겁이 많아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다.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아졌다.


물이 무섭지만 수영을 좋아한다. 운전이 서툴지만 수동운전을 한다. 외롭지만 외국생활을 했다. 힘들지만 배낭 메고 여러 나라를 다녔다. 그리고 여전히 어색하지만 누군가의 공감을 위해 글을 쓴다. 어느 것 하나 두렵지 않은 것이 없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나는 오늘도 용기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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