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또 까마귀가 꺽꺽대었다. 나는 땅바닥을 내려다보았지만 신씨는 여간 거슬리는지 또 지랄이 시작됬다며 욕지거리를 읊조렸다. 정씨는 욕설에 섬뜩 놀라 쳐다보았다. 신씨는 개의치 않고 신랄한 욕을 하며 따던 마늘 꼭지를 가지런히 넓은 바구니에 던져 넣었다.
“세상 촌구석에 바쁜 사람은 나 혼자지? 일거리는 벌려놓고 도망가면 그만이야.”
신씨는 벼려진 칼을 계속 놀리는 것도 이제 지겨운지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정씨는 광주집도 많이 아플 것 이라며 애 달래듯 말했지만 오히려 신씨가 눈을 부라리며 목청을 높였다.
“아프긴 뭐가 아파? 또 저 쪽 가서 술 퍼먹고 있겠지. 내가 제 하수인인 줄 알아. 옘병. 제까짓 게 일은 벌리는 대로 벌려놓고. 손 놓고 나 몰라라 하면 세상만사 장땡인줄 알아요. 누구는 여기서 새빠지게 고생하고 있고만 어디 가서 헛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원! 손아귀 힘도 안 좋은 마당에 칼질이란 칼질은 시켜놓고 제 아프다고 징징대면 그만인 줄 알아?”
신씨는 성마른 소리를 내뱉지만 꿋꿋이 손을 놀렸다. 해야 할 일이 태산이었다. 갑작스레 눈이 산등성이를 덮어버렸으니 일감이 늘었다. 늦게 열린 감을 따서 곶감을 만들고, 곶감자리를 꿰차고 있는 마늘을 치워버려야 했다.
어디서 감을 가져온 광주집이 일의 발단이었다. 세 번, 네 번 마을을 쏘다니며 감을 바구니 채로 잔뜩 담아오더니 정씨에게 맡기고는 마을 앞 눈을 치운다고 홀랑 가버린 것이었다.
정씨는 조용히 감을 곱게 깎아 비닐 위에 올려놓았다.
“깎다보면 금방이여. 이런 감도 두면 금방 썩어버려. 따고 바로 먹든지 깎아버려야 해. 또 곶감 해놓으면 먹기도 잘 먹잖아.”
“먹기는 또 잘 처먹지. 먹는 입, 씨불거리는 입 따로 있어.”
“그래도 재주가 좋아. 성격이 둥글어서 사람들이랑 잘 어울리니까 말이야. 낯가리면 그런 것도 못해. 그런 것도 해본 사람이 더 잘해.”
“장사꾼 똥은 똥개도 안 본다더라. 낯 뻔뻔하게 무슨 소리를 하는지 본인도 모를 게야!”
“그래도 사람은 좋잖아.”
신씨는 목장갑을 끼고도 침투하는 마늘의 진액이 따가웠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날선 말들을 계속 내뱉기 시작했다.
“변하긴 뭐가 변해. 제 죽는단 말에 정신 차린 거지 뭐.”
“그런 무서운 말 좀 하지 좀 말아! 그럴 때마다 소름이 쫙 돋으니께.”
정씨는 처음으로 큰소리를 냈다.
광주집은 몇 년 전부터 몸이 떨리고 살이 빠져 몸이 앙상해지더니 꼭 폐병 앓는 환자처럼 콜록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근처 병원을 오가며 들어도 항생제 한 봉지씩 받을 뿐 나아지지 않았다. 주말마다 무당에게 찾아가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장사 속만 채우던 것이 제 마음에 걸렸는지 그 때부터 주변에 선물을 퍼주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평생을 돈 계산만 하던 사람의 갑작스런 호의는 꽤 어색했던 것이었다. 그 호의란 것은 어떨 때는 부담스럽게 만들기 그지없었다.
첫 번째 광주집이 보인 호의는 신씨에게 땅을 팔아버린 것이었다. 신씨는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신의 별장을 짓고 싶었는데, 딱 광주집이 가지고 있던 땅덩어리 한 자리가 마음에 퍽 들었다. 광주집은 “그 땅은 프리미엄세가 붙는 명품 자리”라며 일 억 넘는 터무니없는 값을 불렀다. 신씨에겐 그 땅이 마음에 드는 것은 사실이나, 헐값에 사서 5년 넘게 팔리지 않는 묵은 땅이었기에 광주집을 곱게 보지 않았다. 하지만 신씨에게 오천 오백만원 언저리에 팔아넘기며 “내 덕을 보았다”며 말하곤 했다. 신씨는 그런 광주집의 거들먹거림이 여간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속으로 광주집의 머리를 쥐어박는 상상을 하곤 했다.
신씨는 이상하게 헤실거리는 광주집의 그 면상을 볼 때마다 부아가 치밀었다. 세상살이 재밌는 일이 그리도 많을까 싶으면서도, 신씨는 광주집이 재수 없는 인간이라 여겼다. 유일하게 광주집이 잘했다 여긴 것은 땅을 팔아버린 것이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한 일이었다. 환갑 넘도록 장사만 했던 그 양반이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저렇게 쏘다니는 것일까? 정씨는 “무당한테 무슨 중한 말을 들은 것 같다” 정도로만 넌지시 언급했다.
곧 죽어도 주판 두들기며 쓰러질 양반이 정말 골병이 무서워 그랬던 걸까? 신씨는 괜한 병자를 씹어대는 것 같아 께름직하면서도 '그 인간이 그럴 리 없다'는 말이 자꾸만 제 입에 달라붙었다.
정씨는 혼자 말을 곱씹는 신씨를 그저 말없이 바라보았다. “이따 팥 불려놓았으니까, 죽이나 끓여먹지. 앙금도 다 해놨으니 넣고 끓이면 끝이여.”
“참 부지런도 하다. 새벽 꼭두각시에 일어나서 팥 불리랴 밥 하랴 너 같은 현모양처가 없어.”
“새벽 꼭두각시가 아니라 꼭두새벽이어라. 살다 그런 말은 첨 듣소.”
신씨는 자신의 실수가 부끄러운지 소리를 꽥 질렀다.
“아이참! 넌 이해를 했으면 그냥 넘기지 꼭 남의 허물을 그리 짚으면 쓰겠냐.”
정씨는 희끄무레 웃는 듯하다가, 껍질 벗은 둥근 감들을 유심히 보는 것이었다.
“참 예쁘게도 깎였다. 꼭 한입 먹어 달라 하는 것 같아.”
머지않아 비틀어진 감나무에 눈송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른 가지에 앉을 곳이 없어 눈은 쌓이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산등성이 뾰루지처럼 집을 지은 주민들은 꼴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듯 보이나, 서로 제 집 앞의 눈을 치우기 바빴다.
광주집은 누가 오지 않을 길이지만 산의 숨통을 열어주려는 듯 열심히 제설에 몰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