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조_2

by 장준

성긴 눈이 바닥에 엉겨서 빙판길이 되었다. 신씨는 저녁 새 눈이 내리다 비도 떨어졌나보다 으레 짐작했다. 이래서는 장사하긴 글렀다며 혼잣말로 성을 내면서도 새벽바람이 스며들지 않게 옷을 꽁꽁 동여맸다. 신씨가 자신의 가게 앞에 겨우 도착했을 때, 광주집이 눈을 쓸고 있었다.


“뭣 한다고 남의 집 앞 가게를 쓸어준대요. 별일이 다 있소.”

“뭣 한다고 쓸기는! 내 땅이니 쓸지. 사람도 오게 하려면 먼저 길을 만들어놓아야 하는 법이야. 이런 추운 날엔 손님을 모셔 와도 모자랄 판인데 정성을 다해야지.”


광주집의 ‘내 땅’이라는 말이 신씨에게 여간 짜증이 났는지 성을 버럭 냈다.

“옘병. 여기가 왜 네 땅이야? 내 땅이지. 제 집 앞이나 쓸어 재낄 것이지 새벽 댓바람부터 재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어.”

“이보소. 왜 이리 성을 내. 같은 마을 사람이니까 내 땅이라 했지. 관점의 차이인거지, 무슨 화를 그리 내는가?”

“내가 없는 화를 냈소? 제 달라는 돈 값 준다 할 때는 주지도 않더니 이빨 빠지고, 척추 틀어지고, 뼈에 구멍 숭숭 나서 아파 죽을 때 되니까 겨우 정신 차리나 했더니만 제 땅은 무슨. 정신 넋 빠진 소리를 하고 있어!”

“이보시오! 사람 말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신씨는 광주집이 눈을 쓸어줬지만, 정당히 값을 치룬 땅이 아직도 제 것이라는 생각이 여간 괘씸했다. 저 자글자글 주름진 얼굴로 웃으며 넉살좋은 소리나 하는 게 꼴도 보기 싫어져버렸지만, 눈길을 쓸어준 것은 값을 치루어야 한다 생각했다.

“차 한 잔 마시고 그냥 가. 꼴 뵈기 싫으니까.”

“아이. 그러면 나머지 눈은 누가 쓴다고.”

“내 알아서 쓸든 잡수든 알아서 할 테니 좀 가쇼! 호의도 원할 때 해주어야 감사한 것이요.”

“그럼 나는 따듯한 커피 하나 주시오. 설탕 딱 반절만 타가지고.”


신씨는 설탕 같은 소리 한다는 말이 입 밖으로 새어나왔지만 계산은 똑바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 양반이 가게 앞 한번 쓸어준 걸로 생색내는 건 사양이기 때문이었다. 신씨는 가게에서 생강차를 펄펄 끓는 물에 섞어 잔에 따를 동안 광주집은 다리를 꼬고 여유롭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아니! 내 커피는 어디가고 차를 준대?”


알싸한 생강이 씹히자, 광주집은 능글맞게 핀잔을 주었다.

“이것보소. 이 생강이라는 것은 자고로 끓일 때 뭉글하게 설탕이랑 섞어 넣을 때 뭉글하게 끓어야 하는 거요. 딱 거슬리는 거 하나 씹히는 순간 그 때부터 여긴 아니다 하며 오지를 않는 거요! 강천사 스님은 여기에 통계피를 넣고 밤새 내내 끓인다고 안합니까.”

“그럼 강천사인지, 강악마인지 거기 가서 먹지는 왜 여기서 훈수요?”


신씨의 핀잔에 짐짓 광주집은 말을 머금다가 이내 “거긴 인제 안가”라고 혼잣말로 되뇌었다.

“가긴 왜 안가? 토요일 땡 하면 맨날 가더니만?”

“아 글쎄 안 간다니까. 갔는데 재수 옴 붙은 소릴 하잖아.”


신씨는 내심 궁금하면서도 별일이라 여겼다. 광주집이 기분이 픽 상해버린 듯 말을 씹는 걸 보니 보통 말은 아니겠거니 넘겨짚었다.

“거 스님이 한소리 했소?”

“아이 말 안한다니까. 쓸데없는 없는 소리 말어! 나 갈라니까.” 그리고는 광주집은 문을 쾅 닫고 나선 것이었다. 광주집이 나서고도 신씨는 이빨 빠진 찻잔에 고구마를 살포시 담았다.


“쓰잘데기 없는 게 어딨어? 다 쓰기 나름 인거지. 쓰는 방법을 찾으면 다 찾는거야.”


혼자서 궁시렁대던 신씨는 이내 자신의 결과물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감탄을 자아냈다.

“야! 너 참 이쁘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손재주 하나는 참말로 기가 막히다니까!”


찻잔은 금이 간 일본식 도기에 종이꽃을 접착제로 얼기설기 붙였던 것이다. 신씨가 결혼할 때 혼수로 받은 고급 찻잔 중 하나였다. 정씨가 준 튼실한 고구마를 보며 그릇에 딱 들어맞겠거니 싶었다.


“다른 건 몰라도 너는 예쁜 말, 고운 말 들으며 잘 자라라. 손님도 많이 불러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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