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찾아 행복으로

일상생활에서의 돌아봄

by 장준

다음예시를 읽어보라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타를타고 끌고나온 엄마가 있다. 엄마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잠깐 자신에게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그 사이에 차에 기어를 바꾸지 않아 자동차는 경사를 타고 미끄러져 유모차를 치었다. 아이 엄마는 놀라 유모차로 달려가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숨이 서서히 멎으며 엄마의 품에서 죽어갔다. 이후 아이의 엄마는 자신이 자동차를 경사로에 둔 것, 아이를 한눈팔고 전화를 한것, 기어를 바꾸지 않은 것 등을 스스로 자책했고 이런 일을 일어나게 한 하늘을 원망했다.


당신은 무슨 생각이 드는가? 인생에 있어서 이리도 불합리하고 끔찍한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삶을 살아가며 우리는 부조리하고 정당하지 못한 일을 수도 없이 겪는다. 그 속에서 우리는 분노하고, 억울해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삶은 아담과 이브가 사는 에덴동산이 아니다. 불공평한 일이 세상에 만연하며 정말이도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곤 한다. 어찌보면 삶은 드라마와 같다.



나는 원체 기분이 좋아졌다가 빙글빙글 탈진하며 우울을 겪는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다. 삶의 행복감을 느낄때에는 구름 위에서 춤을 추는듯이 행복 했지만 우울감을 느낄때에는 젖은 티셔츠를 입고 사는 것처럼 축 쳐지는 비극을 맛보았다. 이것은 내 정신상태를 믹서기 속의 주스처럼 나를 흔들어놓았고 나는 혼미한 인생을 살아갔다.


강박증 또한 나에게 있어서 참으로 고된 일이었다. 내 뜻대로 모든것은 나의 계획대로 굴러가야 하는 것만 같았다. 내 기분은 내 의지대로 할 수 없으니 적어도 내 손에 닿는 것은 내가 꿈꾸며 그리는 대로 완벽한 이상적인 모습을 가지기를 바랬다. 허나 실제로 나는 완벽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울했다.


이것이 가진 의미들이 다 무엇이고 이런 비참한 병들이 무엇일까? 나는 눈물속에 시야가 흐려져 앞을 보지 못하듯, 이것들이 가진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했다. 아버지가 물려준 양극성장애, 어머니에게 배운 강박증 참으로 좋은 것만 물려받은 훌륭한 걸작이 따로 없었다.


처음에는 나를 탓했고 두번째로는 부모를 탓했다.


내가 더 잘난 인간이였다면 좋았을텐데라며 나를 나무랐다.


부모가 더 잘난 인간이였다면 좋았을 텐데라며 부모를 나무랐다.



어느 날 문득 나는 모든것에는 이면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A면의 카세트 테이프가 있다면 또한 B면이 존재한다.


나는 양극성장애를 가지고 최고의 쾌락을 누리며 춤을 추듯 살아가는 운명이다. 정처없이 떠돌며 나비처럼 꽃에 앉았다가 원하면 날아가는 그런 삶이다. 그런 삶은 즐거울 지언정 무게가 없다. 계획이나 창의성은 매우 뛰어나지만 무엇하나 제대로 이루는 게 없다. 삶이 실패하면 실패한대로 무너져버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런 내게 강박을 주셨다. 나비처럼 나돌다가 소름돋게 무언가를 해내는 미친개의 본능. 세상을 정처없이 떠돌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탐색하다가 꽃을 발견하면은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내리꽂는 식칼과 같은 날카로움을 선사한 것이다. 아버지에 행복을 누리는 기쁨과, 어머니의 성공을 향한 열망을 나는 아름답게 배운 것이다.


모든 것의 이면에는 단점 또는 강점이 있다고 믿는다. 강점은 단점이 되기 마련이고 반대로 단점은 강점이 된다.


우울증을 예시로 들어보자 우울증은 늪에 빠진 것마냥 축 쳐진 인생을 사는것과 같아 보인다. 우울증의 사람들은 생각이 너무나도 깊다. 반대로 말하면, 생각이 참으로 사려깊은 인간들이라는 것이다. 인간을 비단결처럼 이해하고 너무나 섬세한 인간들이라 우울의 바다에 혼자 내던져진 것이다. 우울증은 기분이 가라앉거나 무능한 것이 아니다. 그저 너무나 세심한 부류의 사람인 것이다.


세심함은 세상을 따듯하게 감싸는 보자기가 된다.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타인의 말 토씨하나 놓치지 않는 정말이지 끔찍이도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된다. 당신들은 우울증의 환자가 당신이 말한 단어 하나하나를 모두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랄지도 모른다. 이들은 배려깊고 크림처럼 부드럽다. 더욱 세상을 풍부하고 아름답게 만든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일들은 의미를 찾아 떠나는 여행일 지도 모른다. 세상 하나하나 억울한 일과 속상한 일에도 꼬리표를 붙이며 자신의 결점이 결국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일 뿐이다. 사람은 본디 아름답게 태어나 모두와 어우러지게 된다. 사람이 약점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다른 이와 어우러진 삶을 살도록 하게 만든 하늘의 뜻이 아닐까 싶다. 그 속에서 우리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맨 위의 예시에서 아이의 엄마또한 의미를 찾았다. 참으로 끔찍한 일을 겪었지만 아이가 마지막 순간에 따듯한 어머니의 품에서 끝을 맺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에 의미를 찾았다. 아이가 자신에게 태어나 자신의 품속에서 안식을 가질 수 있는 기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당신의 약점은 무엇인가? 당신또한 약점을 분명히 가지고 있을 터이다. 그 약점이 가진 강점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라. 세상의 모든 이치는 음침하고 비참하고 어두운 마이너스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게 아닌 따듯하고 양지의 방향인 플러스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나의 삶또한 잠깐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것일 뿐, 평생을 망망대해의 바다에 잠식해 있도록 태어난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방황하는 이들 모두가 잘못된 길에 들어선 것은 아니다


나의 삶. 나의 행복을 찾아 행복을 향해 날아가는 한마리의 나비가 되리라. 나의 과거는 모두 아물고 지우개로 벅벅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이를 보듬어줄 이를 찾아 나서는 발걸음을 만들도록 노력하리라. 나는 이렇게 태어났고 이렇게 살아갈 운명임이 분명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자신만의 길을 찾을 수 있기를 기원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