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편지 - 생명의 소중함

2021.11.23

by 장준

To. 세상에서 가장 예쁜 아가에게


아가야! 오늘은 정말 즐거운 하루를 보냈단다.

앞서서 요즘 많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했잖니?

내가 반려묘를 키우면서 자기관리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던 와중에 인연이 닿아 고양이를 데려오게 되었단다.


의도치 않았지만, 원래는 한 마리만 키우려고 했어. 하지만 분양하시는 분께서 간절히 부탁하셔서 한 마리를 더 데리고 왔단다.


하나는 양쪽 눈 색깔이 다른 하얀 고양이야. 3년이 넘게 살았다고 하더구나.

다른 하나는 치즈 색깔의 고양이야. 2년 정도 살았다고 하더구나.


지리산은 12월이 되지도 않았는데 눈이 내리고 있어. 하얗게 산이 물들었는데 거기에 알맞는 예쁜 고양이가 나를 찾아온 것만 같아 기분이 들뜨구나.


마음 한 켠에는 가슴이 무거운 기분이 든단다. 한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 사사로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일거야. 하얀 고양이가 차에서 먹은 것을 전부 게워냈는데 깜짝 놀라기도 하고 당황스러워서 어떻게 해야할지 머리가 하얘지더구나. 투명한 침을 질질 흘리더니 거품을 물고 토를 하기 시작했어. 바보같게도, 사람도 멀미를 하는데 고양이가 멀미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내 잘못이 큰 것 같았어. 그래서 마음이 아팠단다. 고양이와의 첫 만남이 좋게 시작하지 않은 것이 내가 꼭 동물을 키울 자격이 없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서 불안해지기 까지 했어.


치즈색깔 고양이(치즈라고 부르도록 할께)는 사납게 울어대더니 하얀 고양이(눈덩이라고 부를게)에게 달려들더구나. 둘 다 암컷이었는데 할퀴고 하악 소리를 내며 털을 물어뜯었어.

눈덩이는 피하려고만 했지 물려고 달려들지는 않았어. 눈이 지쳐보이긴 했는데, 단순히 차에서 구토를 한 이유뿐만 아니라 이전 가정에서 치즈한테 시달렸나봐. 학대당한 생명체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그 고통이 눈빛으로 느껴지거든.

저녁내내 치즈가 얼마나 눈치를 주던지 눈덩이는 꼼짝도 못하고 바닥에 오줌을 지려버렸더구나. 고양이는 원래 본능적으로 대소변을 가릴 줄 아는 동물인데, 폭력적인 상황이 본능을 찍어누르는 모양새였어. 폭력이란 것이 이런 형태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정말 부끄러운 말이지만, 치즈가 너무 얄미웠단다. 애초에 내가 계획하고 데려오려는 고양이가 아니었다는 점이 더 얄밉게 만들었어. 그 분께서 치즈를 데려가라고 애원하시는 이유를 알 것만 같더구나. 사람을 물고 할퀴는 야생성이 강한 동물인게 분명해.


그래도 괜찮은 해결책을 찾았단다!

방을 나눠서 우리 형 방에 치즈를 두고, 눈덩이를 나랑 같이 지내기로 했어. 치즈가 미워서 형 방에 떠넘기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것보다 큰 이유는 바로 학대받은 동물은 더욱 관리를 해주어야 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야.

이것은 꽤나 잘 먹히는 전략 같아보여. 지금 글을 쓰는 와중에도 치즈도, 눈덩이도 나한테 친근하게 굴며 골골거리는데 너무 사랑스럽게 느껴지는구나. 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마음의 짐을 안겨준 것 같아.


내가 입양을 하기로 한 동물이면 내가 책임을 져야 할 텐데, 같은 가족 구성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만 같아 무섭단다. 우리 형이 고양이를 싫어할텐데 미안한 마음도 있고, 후회되는 마음도 있단다.

하지만 마음과 생각, 그리고 행동은 별개의 문제란다. 이것을 잊지 말려무나.


마음은 불안하고 떨리더라도 생각을 본능과 다르게 만들 수 있고, 거기에서 행동이 빚어지는 경우가 있단다. 순서는 항상 같지는 않지만 나의 경우에는 대부분 그랬던 것 같구나.


내 삶에 생명이 엮이는 일은 참 무겁지만 보람찬 일인 것 같아. 동물이든 사람이든 말이지. 엄연히 말하면 사람은 동물에 속하지만 말이야.

인생에 의미를 더해줄 생명이 생기는 일은 소중하면서도 중요한 일이란다.

동물을 넘어서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러지 않을까?


사람은 인간관계를 위해서 살고, 때로는 죽기도 한단다. 그 속에서 자신을 알아가며 타인을 보고 생생히 살아있음을 느낀단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을거야.


아가야, 너가 어떠한 삶을 살아갈 지 모르지만 너의 인생에 다양한 생명들이 얽히고 섥힌 멋진 이야기가 되기를 바라마.


From. 너의 삶이 힘들지라도 행복하길 바라는 너의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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