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편지 - 비합리적 신념
2021.11.24
To.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가에게
아가야! 오늘 하루의 기분은 어떻니?
나는 오늘은 복잡미묘한 기분이 드는구나.
세상을 살다보면 오만가지 감정을 느끼곤 하는데 어떨때는 명료하게 색채가 느껴지기도 해.
때로는 어떤 색깔인지 오묘한 감정이 사람의 생각을 어지럽히곤 한단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감정을 양가감정이라고 표현하더구나.
일반적인 아동의 경우에는 상반되는 두 가지 감정을 절대로 처리할 수 없단다.
무언가를 '절대로'라고 단언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표현한단다.
엘리스라는 심리학자는 이러한 생각을 '비합리적 신념'이라고 말하기도 한단다. 이름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연상시키게 하는구나!
비합리적인 것은 나쁠때도 있지만, 좋을때도 있단다.
아빠가 이렇게 아동에 대하여 단언하는 이유는 아이들을 만나며 느꼈던 생각이 있기 때문이야.
많은 유치원 아이들이 만화영화 중에서 악당이 나오는 전형적인 소년만화를 좋아하지? 커다란 로봇을 타고있는 영웅이 있거나, 검은 망토를 휘두른 악당이 비웃음을 킬킬거리는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을거야.
아이들은 악당의 농간에 분노하며 영웅이 된 자신을 상상하곤 한단다. 또는 영웅의 편에 서서 자신이 도와주고 싶다고 표현하기도 해.
아이들은 복잡미묘한 것을 싫어하는 것 같아.
예를 들어 뭐가 있을까?
달콤씁쓸함. (Bittersweet이라고 영미권에서 표현하는데, 단순히 맛을 표현할 때 뿐만 아니라 고통스럽지만 즐거운 감정을 표현할 때 쓰곤 한단다.)
애증의 관계. (어른이 된다면 이런 애증의 관계인 사람들이 많아질거란다.)
불타는 얼음. (네가 커서 과학을 공부하게 된다면 내가 말하는 얼음은 물이 아닌 다른 물질인 것을 알 수 있을 거란다.)
그리고 너와 나. 이 둘을 어우르는 우리라는 말도 추가하고 싶구나.
만약 이 모든 예시가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면 그냥 무시해주려무나.
아이들은 복잡한 감정을 해결하기 위해 매우 간단한 규칙을 사용한단다.
바로 착한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두 가지로 사람을 나누어버린단다.
좋아 보인다면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고 믿으며 자신과 가까이 하려고 노력할 거란다.
반대로 나쁜 사람 같다면 악당처럼 대하며 적대시 하거나 도망치려 할거야.
이분법적인 태도는 삶을 살기 쉽게 만들지만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에 이런 모습을 성숙한 모습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단다. 그 이유는 세상의 모든 것에 절대적인 것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말이 생각보다 어렵게 다가올 것 같구나. 세상 모든 이치를 간단히 답을 내리기 어렵다고 간단히 표현해도 좋을 듯 하구나.
세상을 내가 바라는 대로 살아가길 원하는 사람이 참 많단다. 하지만 우리는 신이 아니잖니?
우리는 살아가면서 현실과 타협해야 할 때가 종종 생기곤 한단다.
이럴 때 나와 타인 사이에서 적절한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데 앞서 말한 비합리적 신념이 타인을 무시하게 만든단다. 그런 행동은 당하는 입장에선 불쾌하고 고지식하게 느껴진단다.
이 말이 "비합리적 신념은 나쁜 생각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너의 판단은 항상 너에게 달려 있단다 아가야.
세상이 너를 선택할 때도 있지만 반대로 네가 세상에 존재하며 선택해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사랑하는 아가야. 어제는 너무나도 마음아픈 하루를 보냈단다.
데리고 온 고양이 두마리로 인해 가족들 사이에서 다툼이 있었는데 사소한 말 한마디부터 작은 행동까지 내가 괜히 고양이를 데리고 온 것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거든.
고양이를 데리고 온 것은 나의 선택이였지만, 그렇다고 가족이 이렇게나 힘들어 할 줄 몰랐단다. 그래서 방에 들어가 울고 있었는데 형이 나를 달래주며 이야기를 꺼내주었단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형이 항상 나를 도와주었던 것이 기억난다. 형은 책임감이 있고 듬직한 모습으로 기억에 남아있어. 지금은 상당히 다른 이미지이지만, 그래도 좋은 모습으로 느껴진단다.
어제 나의 어머니와 형,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언쟁이 높아지자 눈물이 나더구나.
형이 나를 대신해서 말을 꺼내주는게 그렇게 감사하고 고맙더구나.
이야기는 잘 마무리 되었단다. 다만 가족들에게 나의 마음을 미처 말하지 못했단다.
아가야. 가족사이에서 어떠한 것을 은연중에 숨긴다면 그것은 드러나지 않을 지언정 좋지 못하단다.
일정 부분 숨기는 비밀은 있어도 그 비밀이 썩어문드러지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된단다.
이것은 비단 가족이 아닌 친한 친구, 애인, 그리고 미래의 너의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일이란다.
가족에게 항상 솔직할 필요는 없지만 세상에서 가장 가까워야 할 존재인 가족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은 참 모순된 일이면서도 동시에 가슴아픈 일이란다. 네가 가족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솔직함은 언제나 서로의 관계를 맑게 해주는 도구가 되곤 한단다.
나쁜 감정이라 한들 그것을 숨길 필요가 없단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들 해. 다툼 후에 더욱 끈끈해질 수 있고, 더 나빠질 수도 있겠지. 마치 진흙탕 싸움을 하고 온 몸이 얼룩투성이가 된 것처럼 말이야!
좋은 것은 드러내고 나쁜 것은 배척하는 행동이 항상 옳은 일이 될 수는 없단다.
그것을 어떻게 마무리하느냐는 온전히 당사자에게 달려있단다.
시작이 좋으면 끝이 좋다고들 하지않더니? 반대로 나는 끝이 좋으면 시작도 좋아질 수 있다고 말해보고 싶구나.
세상에 아픈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아픈 일이 하도 반복되어 익숙해졌다고 표현하지만 그 말은 거짓말인 것을 나는 알고 있단다.
고통은 언제나 상처에 소금물을 뿌린 듯 쓰라리곤 해.
아픔이 익숙해졌다고 혹자가 말하면, "익숙해지고 싶다"라고 해석해도 좋을 것 같다.
우리가 아픈 것을 싫어하는 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는 것 만큼 끔찍한 일은 없단다.
내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아픔, 슬픔, 고통들에 점수를 매길 수는 없지만 나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참 힘든 인생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곤 한단다.
아가야, 네가 항상 행복할 수는 없지만 내가 겪은 아픔을 너는 겪지 않았으면 한다. 실수는 언제나 존재한단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메꾸느냐가 관건이 되곤 해.
네가 방황하며 길을 잃어버렸을지라도 그것이 네가 틀린 길을 가는 것임을 뜻하는 것이 아니란다.
삶이 혼란스럽다면 잠깐 멈춰보렴. 그렇다면 주변의 상황이 보일 때도 있단다. 어쩌면 안개처럼 자욱히 한치 앞도 안 보일수도 있겠지? 그럴때면 친구를 불러보렴! 같이 길을 헤쳐나갈 수 있는 동행자가 있는 일은 참 기쁜일이면서 감사한 일이란다.
이 말이 너라는 사람을 타인에게 던지라는 말은 아니란다. 너의 아픔이 너가 될 수는 없단다.
말이 조금 어렵구나. 나를 예시로 들어보면 어떨까 싶구나.
나는 지금 우울하지만 우울함이 나를 대표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단다. 잠깐 마음속에 우울함이 머무르는 것일 뿐이지, 우울함이 나를 잡아먹게 두진 않을거야.
우울하다고 해서 타인에게 울며 매달리며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지 않겠니? 너의 친구, 반려자, 가족에게 고통을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좋아. 그렇다고 해서 너의 책임을 타인에게 넘기지 말으렴. 힘들면 어깨를 빌릴 수는 있지만 업어달라고 하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거든. 책임을 넘겨받은 당사자는 죽어나간단다.
책임은 흔히 역할에서 나온단다.
역할은 우리가 Persona라고 표현한단다. 한국에서는 페르소나라고 말하곤 해. Persona는 '가면'이라는 뜻에서 비롯되었단다. 책임은 가면을 쓰는 일이라고 생각을 해보면 그럴듯하지 않니?
이것에 어원에 대해서 말이 많지만 개인적으로 인상 깊은 것은 "Person(사람)+A(대문자)"라고 해석하는 것이야. A는 보통 영미권에서 무언가 처음 시작하는 것을 뜻할 때 많이들 말을 한단다. 한국에서 모음이 '기역(ㄱ)'으로 시작하는 것처럼 영어는 A로 시작하잖니? 그리고 Z로 끝나지.
그래서 "A to Z (A에서 Z까지)"라는 표현은 흔히 "모든 것이 다 있다"정도로 표현하곤 한단다.
Persona를 이러한 맥락에서 표현하자면 "사람이 말을 시작하기만 하면 가면을 쓴다" 고 할 수 있어. 반대로 생각하면 "말을 하면 그 순간부터 역할이 생긴다"고 볼 수 있지.
아가야.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가면을 써야할 때가 온단다. 하지만 그 가면이 너의 얼굴에 늘러붙도록 두지 말으려무나.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면을 벗어 너의 모습을 보여줄 때가 필요해.
때로는 낯선이에게 가면으로 너의 모습을 감춰야 할 때가 있어.
가면을 잘 만들어 적절히 번갈아 쓰는 사람만큼 사회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없단다.
너는 어떤 가면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하구나.
나중에 꼭 알려주렴!
From. 조금은 울적한 가면을 쓰고 있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