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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그 시대, 가부장의 현신으로 밖에서 매월 일정 금액이상을 벌어 집에 던지듯 주고 공무원으로 댈 수 있는 모든 핑계를 사용하여 밖으로 나돌았다. 아버지라는 명칭이 아까운 남자였다. 여자, 도박, 술. 당신의 우선순위에 가정은 없었고 혼외자식은 방치되었다. 그 어떤 핑계를 가지고 와도 그는 가정에 최선을 다해 소홀했다. 사실 '남자'라는 대명사조차 아까운 사람이었다. 세상 어떤 남자가 갓 스물을 넘긴 여자친구에게 갑자기 국민학생은 훌쩍 넘은 아이의 엄마로 반강제로 살게 하겠는가. 그가 가장 잘하는 일은 '회피'다. 사실 집안의 장손을 위해 씨받이로 들어온 첩에게서 태어나면서 두 명의 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그는 집안의 정실부인인 본처를 '어머니'로 부르고 첩인 자신의 친모를 '엄마'라고 불렀다. 이 '엄마'라는 호칭은 아버지 나이가 여든이 넘어서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불편할 만큼 불편한 가부장 집안에서 아버지는 후처의 소생이라는 주변의 깔보는 시선을 맞서긴커녕 회피하기 급급했다. 당시 경상도 촌부 집안에서 익숙한 일이었다. 놀림이 계속되면 어느 순간 체념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냥 그렇게 그 시대의 촌부로 아버지는 자랐다. '어머니'는 그에게 '네가 누구의 아들이건 중요하지 않다. 주변의 시선은 신경 쓰지 마라. 너는 이 집안의 3대 독자로 대를 이어가야 한다.'는 사명감만 던져줬다. '그러기 위해선 나머지는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라고. 그래서였을까? 아버지는 세상에 자신의 '엄마'와 같은 여자를 여러 명 만드는 데 온 힘을 다했다. 오로지 핏줄, 제사를 지내 줄 고추를 위해 씨를 뿌리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 세상엔 오직 그것만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사는 동물은 짐승뿐이었으나 간혹 인간에도 부정하게 섞여있는 것이다. 그는 일단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 나면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 증거로 7년 넘게 방치된 나의 가해자 이자 오빠 첫째 진일이 그러했고, 결혼 후 내 엄마와의 사이에 첫 번째로 태어난 딸이자 나의 언니인 민희 역시 그의 온건한 방치 속에 내던져졌다. 온정이 대물림되듯, 방치도 대물림되는 법이었다. 그리고 짐승은 인간을 학습할 수 없는 법이다.
때문에 하루아침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이십 대의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해야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엄마는 능력이 있었다. 어린 시절, 남다른 외형으로 양공주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자랐다. 다른 점은 주변의 질투를 먹고 오히려 양분으로 삼고 시기를 엎신 여김으로 되갚고, 능력을 뽐내는 데 망설임이 없었으며, 막내를 예뻐하시던 당신의 아버지의 총애를 발판으로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가치관이 박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외모만큼 사회성도 출중했다. 여자는 초등학교만 나오면 된다는 시대에 태어나 주변의 반대를 물리치고 오롯이 제 힘으로 고등학교를 졸업 후 남자들이 드글거리는 직장에서 담배 심부름과 커피 심부름, 스타킹 심부름을 해낸 당찬 여성이었다. 당시 70년대, 당시 여성으로 거친 직장 생활도 당차게 주도하며 여의도에 아파트 하나를 자가로 가지고 있던 성공한 여성. 그러나 그녀는 오빠의 친구였던 남자,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지금에서 얘기하는 데이트폭력을 당했다. 어리숙한 그녀는 자신보다 8살 많은 오빠 친구에게 강간과 같은 하룻방을 당했고 혼전순결주의였던 시대에 피해자로서 결혼에 이르게 되어 버렸다. 모든 것이 순식간이었고 잘못되어 간다는 것을 그녀는 인정할 수 없었고 뒤돌아 볼 수 없었다. 그때의 하룻밤의 결과로 이미 아이가 생겼으니까. 지금과 달리 당시엔 성폭행범을 고소하면 판사가 피해자에게 가해자와 결혼을 하여 일을 무마시키는 비이성의 시대였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파악한 엄마의 오빠(나의 외삼촌)는 전후를 알고 아버지의 아구창이 날렸다. 그것을 아버지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그를 원망하고 있다. 그냥 아구창만 날린 것이 아니었다. 장충동 체육관 근처 으슥한 골목에서 결혼해서 책임지겠다고 지껄이는 아버지를 죽지 않을 만큼 패며 결혼을 반대했다. 자빠뜨린 자신이 무슨 죄냐고, 다리 벌린 년의 잘못이라며 늘 배를 내미는 그 모습은 전형적인 소시오패스 가해자의 면모였다. 엄마는 그의 바닥을 보고도 자신의 하룻밤을 사랑이라 자신을 속이고 사실을 은폐하기로 했다. 왜? 사랑이 아니라고 하면 자신이 강간의 피해자인 것을 인정해야 하니까. 나르시시스트인 그녀는 현실을 뒤틀어서라도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남보다 뛰어난 미모, 능력자인 내가 저딴 남자에게 강간을 당했단 사실이. 사랑이 아니라 그저 씨받이라는 현실이 그녀는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어 현실을 부정하고 '사랑'이라는 포장지로 왜곡시켰다. 사랑만 받고 자라고 인정만 받고 살아온 그녀로서 최선의 선택이었다. 아니 그렇게 믿어야만 했다.
모두가 눈을 돌린 깜깜한 가정에도 밥상을 차려지고 온돌에 불은 올라갔으며 아이들은 보살핌을 받았다. 가장의 방치 속에서도 가정은 꾸려진 셈이다. 시어머니까지 포함한 다섯 식구는 제때 따뜻한 밥과 분유를 먹었다. 심지어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애비의 저녁도 늘 갓 지은 밥으로 밥상 위에 올라가야 했으며, 간혹 들어와서도 국이 없다, 찌개가 없다며 수저를 패댕기 치기 일쑤였기에 엄마는 항상 6첩 반상으로 차려야 했고 그것은 고스란히 부담이 되었다. 거기에 기저귀값과 병원비, 학교 육성회비와 급식비, 밀린 집의 월세와 공과금들은 아버지가 벌어오는 9급 공무원 월급(의 일부)으로는 충당이 어려웠다. 그러자 엄마는 자신이 갖고 있었던 여의도 시범아파트를 과감히 팔아 가족이 나들이 갈 때 탈 르망 한 대를 샀고, 나머지는 아버지의 양복과 밥그릇과 쌀과 부식을 샀다. 투자였다.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현재 그 아파트는 당시의 280배 넘는 가격으로도 올랐지만 매분, 매 초마다 계속 오르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면 그들이 사실은 왕족보다 비싼 몸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엄마는 여의도 아파트 한 채를 희생해서 자신이 이 가정을 성공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결혼 전, 생긴 아이를 소파술로 보내는 희생을 하고 남편이 밖에서 낳아온 아이를 호적에 자신이 낳은 양 친자로 올리며 언젠가 이 모든 것을 그에게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것이 자신의 행복한 미래라 여겼다. 비록 남편이 가정에 소홀해도 그의 자식을 자신의 자식처럼 키워 성공시킨 모습을 보여주면 지금 자신이 흘리는 피눈물과 땀을, 그가 알아주고 고맙다고 말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소시오패스와 나르시시스트가 꾸린 가정에도 미래가 부풀어 있었다.
소시오패스와 나르시시스트가 꾸린 가정도 남과 다를 것이 없이 돌아갔으나 그 안에서 조금씩 틈이 생기고 있었다. 엄마는 당신의 첫 아이인 민희를 품에서 내려놓고 싶지 않았고 진일은 곁눈으로 암마가 가진 다른 크기의 애정을 눈치챘다. 엄마도 민희에게 다정히 젖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모습을 거듭 곁눈질하는 진일을 눈치챘지만 모른 척, 방에 혼자 두고 학교 선생님이 내 준 숙제를 다 하기 전까지는 밖에 나와선 안된다고 다그치고 민희를 안고 나가곤 했다. 애비가 낳아온 아들을 홀대할까 같이 살고 있던 시어머니는 그런 엄마를 구박하며 첫째 손주의 편을 들고 아버지에게 고자질하여 사이를 이간질시켰다. 내내 이어지는 시집살이에 엄마는 점차 초췌해져 갔다. 24시간 중 4시간 이상 자지 않고 일하며 돈을 벌고 막노동에 가까운 사회생활을 견뎠다. 공주처럼 자라 남의 눈치와 비위를 맞추며 편하게 돈을 벌었던 그녀는 더 많은 식구를 자신의 수준에 맞게 건사하며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있던 자신의 감시하는 시어머니에게 보란 듯이 좋은 옷, 따뜻한 밥, 튼튼한 집을 들이밀었다. 무려 칠 년간을 그렇게 악착같이 보여주자 결국 안심이 된 건 지 시어머니도 백기를 들고 감시를 관두고 동네 사람들과 산과 들로 나들이를 떠나고 종내는 촌부의 삶이 시작된 그 시골로 내려가 버렸다.
모두의 눈이 밖으로 나가버리고 집에는 진일과 민희만 남게 되자 드디어 은밀한 그의 계획은 시작되고 말았다. 말했던가. 짐승은 대물림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