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멧새 둥지 속 뻐꾸기
*친족성폭행 트라우마와 관련된 이야기니 감상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맞벌이 부모의 가정에서 오빠 진일의 손아귀에 홀로 떨어지게 된 민희는 그의 첫 번째 희생양이 되었다. 알이었던 뻐꾸기가 멧새의 둥지에서 알을 개고 태어나자마자 멧새 알을 둥지 밖으로 떨어트리는 것처럼 그의 DNA가 그 일을 만들었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타고난 나쁜 피. 소시오패스인 아버지의 태생. 아니라면 누군가에게 그런 교육을 받아 학습이 있어야 가능했을 텐데, 그런 짓에 대해 알려줄 수 있을 만큼의 관심이 있지 않았다. 시대가 시대라 인터넷도 시청각 자료도 없었다. 고작해야 선데이 서울의 연예인의 수영복 차림이었으려나.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 잡지를 갖고 있었음에도 모두가 동생들을 추행하지 않듯이 그냥 그는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오로지 그는 나쁜 피를 갖고 본능에 이끄는 대로 하나뿐인 여동생을 유린하며 놀았다. 첫 번째 희생양이 된 민희도 당시 너무 어렸기에 놀이를 핑계 삼아 오빠의 손이 간지럼을 태워주는 것으로 시작한 신체접촉에 대해 미처 불쾌함을 인지할 수 없었다. 아니, 어린아이가 미처 알아차릴 수 없도록 진일은 교묘히 상황을 만들었고 인형처럼 가지고 놀았다.
'이건 놀이야. 우리끼리 비밀이야. 부모님께 말하면 안 돼'
진일은 항상 성추행을 끝나기 직전엔 그런 말을 덧붙였다. 입단 속이었다. 맞벌이 부모의 육아 공백 속에 놓인 어린양과 같은 여동생. 민희는 겨우 다섯 살이었고 진일은 열 살이 넘었다. 어린 여동생을 보육을 떠맡고도 학급 1등을 놓치지 않는 장남이다 보니 부모는 그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니, 사실은 모른척하고 있었다. 바로 코 앞에서 놀이를 틈 타 연약한 아이의 몸을 희롱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부모는 놀이가 격해진 것이라 여기고 민희의 웃음소리 속에 섞인 비명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 사이에도 아버지는 밖에서 여자를 만들었고 그 일로 쉴 새 없이 부부 싸움이 매일 같이 일어났다. 고집 있게 그 집에서 시어머니 노릇을 하던 노인을 촌구석으로 좇아 버린 바로 그 부부 싸움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고작 여섯을 먹은 민희도 글보다 눈치를 배워 버렸다. 말을 해도 바뀌는 것이 없다는 것을. 오히려 소리 지르지 않고, 그 일 외엔 한글과 곱하기를 가르쳐주고 다정하게 놀아주는 오빠가 더 나아 보였다. 오빠는 그렇게 엄마의 첫 번째 소중한 아이를 망가뜨렸다. 간지러움을 태우는 것, 목마를 태워주는 척, 세발자전거 뒤에 태워 준다고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가 놀이터 으슥한 곳에서 안고 집적거리고 서슴없이 몸의 소중한 곳을 더듬고 유린했다. 가슴을 더듬고 꼬집고 반응을 보면서 더 은밀한 곳을 더듬고 쑤시고 괴롭혔다. 조금이라도 싫어하는 모습이 보이면 바로 간지럼을 태우는 척, 태도를 돌변하여 자신이 한 것은 그저 놀이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아랫입술을 내밀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놀이와 추행의 경계가 모호한 나이대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학습하면 바뀔 수 있을 거라고? 그렇다면 3년 후에도 나 역시 똑같은 방법으로 그 짐승에게 10년 넘게 성추행당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오히려 거듭된 학습을 통해 진일은 어떻게 하면 더 쉽게 자신의 성추행이 무마될 수 있는지 학습했다.
진일의 시간이 흐를수록 성추행은 점점 에스컬레이트되고 대담해졌다. 나와 다섯 살 차이가 나는 남동생까지 태어난 이후 까지도. 왜 아니겠는가. 우리는 여전히 방치되어 있었는데. 범죄는 늘 그렇듯 모두가 방심한 사이 일어났다. 숨바꼭질을 하자고 하고는 침대 아래에 먼저 숨은 내 뒤를 쫓아 들어와 기묘한 눈빛을 하고 나를 덮쳤다. 하얀색 철제 프레임의 침대아래, 핑크색 줄무늬가 예뻤던 침대보 프릴을 들추고 들어오던 진일이 아직도 침대 위엔 언니가, 방 서랍장 뒤편에 동생이 우리를 찾으러 다니는 상황에서 진일은 눈꺼풀 하나 깜박이지 않고 내가 입고 있는 상의 들췄다. 그리고 마치 이것도 놀이인 것 마냥 소리를 내면 들킨다는 것을 강조하며 입술을 세로 눌렀던 손가락으로 반 나체 상태로 만든 후 덮쳤다. 그는 천천히 느리고 매우 나쁘게 내 몸을 핥았다. 정확하게 내 왼쪽 유두를 핥고 다른 손으로 오른쪽 유두를 집적거렸다. 나는 그것이 어떤 행위였다는 것을 알기엔 너무 어렸다. 그저 미끄덩한 그것이 아래에 나의 몸을 타고 오르고 내리는 소름 끼치는 그아 손가락이, 뱀이 온몸을 타고 오르는 듯한 불쾌한 그 행위가 제발 빨리 끝나길 속으로 빌면서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반항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엔 계속 그랬듯이 언젠가 끝이 나니, 조금이라도 빨리 치워주길 기도하는 것뿐이다. 그것이 시간이 흐르고 흐른 뒤에 내 인생 전반을 좀먹는 줄 몰랐다. 알았더라도 열 살 넘게 차이나는 남자를 뿌리칠 수도 달리 어떤 방법이 없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왜냐면 완벽한 성적표와 깍듯하게 차린 예의, 좀처럼 속내를 보여주지 않는 평정심으로 동네에서 어린 동생을 챙기는 착한 오빠로 행세하고, 그 평판은 이내 부모님의 귀로 들어와 이내 집안의 자랑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주변의 인정이 무엇보다 살아가는 데 중요하다는 것을 안 진일은 더욱더 교묘해졌다. 진화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진일은 중학교 때 학교에서 치러진 IQ테스트* 측정 결과에서(*당시엔 모두가 했다) IQ 150을 넘어 놀란 학교 담임이 부모님을 호출하기도 했다. '진일이는 천재예요. 얘는 당장 영재고 보내세요, 미래에 노벨 물리학상을 탈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나르시시스트인 엄마는 너무나 기뻐 당시 몇 백만 원을 들여 컴퓨터를 사주면서 과학에 흥미를 보이는 그의 미래를 멋대로 꿈꿨다. 중요한 것은 진일은 꿈이라는 것을 꾸지 않는다. 소시오패스는 오로지 미래를 설계할 뿐이다. 천재라는 담임의 말은 맞기도 했다. 인터넷이라는 것이 생기기도 전이라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갤러그와 같은 게임뿐이었으나, 이미 컴퓨터언어를 이해해 중학생인 그는 자체 게임을 만들기도 했다. 엄마는 진일이 서울대를 가서 물리학자가 되고 언젠가 노벨상을 받으리라 꿈꿨다. 엄마의 판단은 틀렸다.
'넌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
그의 방에서 목마를 태운 상태에서 간지럼을 태우다 바지 속으로 파고들어 차가운 손가락으로 한참을 내 밑을 주물럭 거리다 내가 그를 밀어내자 그는 나를 비웃으며 항상 저렇게 말했다. 아니라고 나는 엄마와 아빠의 자식이 맞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두 눈이 광기로 빛났다. 내가 스스로 인정하고 결국에 '난 이 집 아이가 아니야'하고 설움에 울음을 터트릴 때까지 진일은 그 큰 눈을 한 번도 깜박이지 않고 쳐다만 봤다. 검은색 유리알 같은 그의 눈. 조금 전까지 복막이 터질 듯 웃음소리를 내던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차가운 그 무기질의 눈동자. 내 몸 위를 뱀처럼 기어 다니던 그의 손가락처럼 차갑디 차가운 그 눈빛. 감정이라고는 담겨있지 않은 그 눈빛은 늘 서늘한 무언가를 품고 나를 보고 있었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그저 먹이를 노리는 뱀의 눈빛에서 우리가 뭘 찾을 수 있겠는가. 오로지 파괴하고자 하는 본능 밖에 없었다.
반면 나의 언니 민희는 예민한 성정을 타고났으나 아주 어렸던 시절부터 고성에 거칠고 난폭한 단어가 오가는 가정환경에 노출이 되면서 절로 말수가 줄어들었다. 민희가 집에서 입을 뗄 때는 오로지 밥을 먹을 때뿐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아버지는 민희가 마론 인형을 껴안은 채 밥을 먹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먹던 밥상을 집어던지고 제 자식의 품에 인형을 빼앗아 작은 머리통을 부서질 듯 후드려 갈긴 후에는 식욕조차 줄어들 정도로 조잘대는 법이 없었다. 엄마는 지금도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느닷없이 나에게 마치 방금 섬광처럼 기억나는 것처럼 말하곤 한다.
'그거 기억하니? 마론 인형 대가리가 날아갈 정도로 아빠가 민희 머리를 내리 쳤던 거.'
'아니.'
고작 서너 살의 일을 어떻게 기억하냐고 덧붙이며 부정했지만, 그것은 결코 잊을 수가 없는 종류의 학대였다. 때문에 모른다고 대답한다. 그 학대의 현장에서 피해자였던 나도, 엄마도 잊고 싶었기 때문에. 그러나 그럴수록 어떤 기억들은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인간의 뇌세포는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이 너무나 적고 단순해서 불행과 행복의 기억 중에 더 강렬한 하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결국은 하나는 이 학대의 기억 때문에 행복했던 수백 개 추억을 반납한 셈이다. 그렇게 분노는 인간을 집어삼킨다.
여전히 나는 눈을 감으면 그날로 돌아갈 수 있다. 아버지가 화내던 장소, 온도, 습도, 밥상 위에 앉은 채 마치 미운 일곱 살처럼 숨길 수 없는 분노를 품고 고구마색으로 천천히 변하던 얼굴. 종내엔 폭발된 분노로 그의 손에 날아간 뜨거운 된장국을 뒤집어쓴 싱크대 앞에 선 망연자실 하지만 마주 앉은 우리를 안심시키기 위해 억지로 입술을 끌어올리던 엄마의 모습도.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지만 너무나 잊고 싶다. 그래서 냉정하게 말했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처연한 기억으로 딸이 살아가고 있는 것을 엄마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아버지보다 더 많은 돈을 벌면서도 '너는 뭐 하느라 빨빨거리며 밖을 싸다니냐' '화냥질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비난받는 엄마를 기억하지 못한다. 저녁 6시인 남편 퇴근 시간을 맞춰 저녁밥을 차리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 일터로 나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기억하지 못한다. 밥상 위에 밥, 국, 찌개, 생선구이를 다 차린 후 자신을 부르지 않고 미처 국을 빼놓고 올렸다는 '죄'로 밥상에 불러 앉혔다는 핑계로 밥상을 엎어버린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나와 두 살 터울인 민희가 인형을 안고 발을 동동 거리며 밥을 먹었다는 이유로, 젓가락질을 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안고 있던 마론 인형을 뺏어 인형대가리가 날아갈 때까지 머리를 얻어맞던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것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은 아버지는 당신의 숟가락으로 내내 그 여린 아이의 머리통을 갈겼던 것을 그때마다 엄마의 처연한 그 미소를, 힘없이 아버지를 말리던 엄마를 내가 겪은 치욕을 결코 난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나는 멍청하게 모른 척 현실을 외면했고 언니 역시, 아무런 말도 반항도 못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친족 성추행 피해자들 대부분이 그렇듯 집에서 첫 번째 희생자는 엄마다. 가정폭력 앞에 한 없이 찌그러지는 엄마를 보며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무슨 짓을 해도 여기서 벗어나거나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지독하게 냉정해진다. 그렇게 나는 그때 피해자인 나를 스스로 보호하는 것을 포기한 셈이다. 엄마가 그렇게 당하는 것을 봤기 때문에. 엄마가 물을 때마다 끝내 모른 척하는 이유는 그렇게 아내로 조용히 살아가길 선택한 엄마의 모습을 내가 기억한다고 말하는 순간, 나도 엄마도 더 비참해질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그날의 기억을 모른 척하고 있다. 다만 그것은 알고 있다. 짐승은 짐승을 잉태하듯, 소시오패스도 소시오패스를 낳는다는 것을.
그리고 뻐꾸기는 멧새의 원래 알을 모두 파괴하고 나서야 그 둥지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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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인사드립니다. <엄.두.말>을 쓰고 있는 아이롭 입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일이라 쓰면서 되새기는 것도 무척 힘들긴 하지만,
몇 번의 좌절 끝에 가장 어려운 부분을 써서 발행하는데 다행히 성공했네요.
퇴고도 하지 않고 한번에 쓰고 한번에 발행하는 쌩 아마추어지만 앞으로 더 노력해 보겠습니다.
매번 읽어주시고 라이킷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