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한 남자와 두 번째 이혼을 말했다

6. 붉은 밤

by IlOB

*자살과 관련된 트라우마 에피소드입니다. 감상에 주의 부탁드립니다.


엄마와 나는 3개월에 한 번 정도 전화로 통화한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번 정도 만나는데 추석이나 설과 같은 명절에 찾아뵙는 그런 것은 아니고 엄마가 가끔 서울에 오시면 그러니까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내가 사는 곳 근처에 올라와 겨우 만나는 것이다. 당연히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엄마의 성향상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랐다. 아버지와 엄마의 격렬한 싸움 끝엔 항상 주변 사람이 갈려 나갔고 엄마 주변의 인물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내가 성인이 된 이후에 그 감정쓰레기통이라는 역할이 나에게 주어졌다. 그걸 대략 수십 년 넘게 했다. 마치 셋째 딸로 태어난 나의 의무에 포함이라도 된 것처럼 나는 부모님을 이해하고 포용하고 무조건적으로 믿었다.


그러나 나의 믿음과는 관계없이 초등학생인 나조차 '왜 헤어지지 않는 걸까'라고 의문을 가질 정도로 두 분의 사이는 가까이서 봐도 멀리서 봐도 문제가 매우 많았다. 엄마는 항상 일방적으로 아버지의 애정 갈구하는 편이었지만 아버지는 그런 엄마를 그리 필요치 않았다. 오히려 귀찮아하는 편이었고 다소 거칠게 표현했다. 그에 따라 엄마는 격렬하게 매일 감정이 바뀌는 등 불안한 심리 상태를 보였다. 그건 다혈질이라는 말로는 차마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고 지금에서야 그게 조울증이라고 알게 되었을 뿐이다.


그런 엄마의 성격과 반대로 아버지는 자기감정에 대해 쉽게 꺼내놓지 않았다. 자식들에겐 무심했고 오로지 밖에 대외적인 사회생활에서만 숨을 쉬는 것처럼 쉴 새 없는 술자리와 더불어 도박을 했다. (물론 아버진 그게 도박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평일은 항상 그런 식으로 시간을 소비하고 주말이면 집으로 '아빠 있니?'하고 전화가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 그렇게 온다 간다 소식도 없이 집을 비우는 일에 지친 엄마가 전화를 하다 하다 지쳐 나를 시켜 '네 아빠한테 전화해 봐라'라고 하셨다. 시키는 대로 전화를 걸어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통화가 되어 '언제 들어오세요?'하고 물으면 아버지는 혀를 차며 '네 엄마한테 전화하지 말라케라'라는 말로 끊었다. 그렇게 늘 나의 역할은 메신저였다. '네 아빠'와 '네 엄마'의 사이. 나는 항상 제삼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두 분의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나는 마치 각각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세포 조각처럼 불리고 있었다.


'우리'라는 개념은 희미해져만 가고 부모님이란 표현조차 애매해지고 늘 같은 이유로 싸우고 대충 넘어갔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밥상이 날아가고 잘잘못을 따지지도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아버지에게 다시 밥상을 차려줬다. 엄마는 모든 게 해결된 양 웃으며 찌개를 내오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생선을 구웠는데 그때마다 아버지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밥상에 앉아 엄마가 발라주는 조기살을 얹은 밥을 먹었다. 물론 아빠는 하지 말라고 말은 하지만 늘 받아먹는 것은 뿌리치지 않았다. 그것이 마치 승리의 한 조각인 양 누구에게도 나눠주지 않고 늘 생선 한 마리를 온전히 발라 먹는 모습에 나는 기묘한 공포를 느꼈다. 생선의 눈알까지 오독오독 씹어먹는 그 모습을 지금도 생각하면 구역질이 올라온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는 그런 날이었다. 내가 열두 살, 악몽에 한참 빠져있던 밤이었다. 여지없이 또 엄마가 나를 버렸고, 나만 두고 가족이 떠나가는 꿈 속에서 허우적 대다 나를 깨운 건 커다랗고 단단한 어떤 것이 부서지는 굉음이었다. 놀란 내가 일어났을 때 곁에서 주무시던 할머니는 이미 일어나 거실에서 초조한 걸음을 종종거리시고 계셨다. 눈을 비비며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던 내가 할머니를 부르려는 사이 굳게 닫힌 안방 안쪽에서는 다시 엄청난 굉음과 괴성이 들렸다. 마치 전쟁이라도 난 것 같은 파열음에 나는 좀 전까지 꾸던 꿈의 연장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지며 현실 속 공포와 맞닥뜨렸다. 이것도 꿈인가? 닫힌 문 앞까지 달려가 문짝이 진동이 전달될 정도로 엄청난 파열음이 계속 들려왔다. 누군가의 비명과 누군가의 고함이 계속되고 뭔가 부서지고 굴러가는 비명소리는 이것이야말로 악몽보다 더한 현실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난 잠긴 문손잡이를 매달려 문을 열라고 울었다. 그러나 내 울음은 아무것도 아닌 듯 안에선 계속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고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 우리 집으로 몰려들어 누구 엄마, 누구 아빠 하며 문을 두드렸지만 잠긴 문은 열리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와 동네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내내 엄마, 아빠를 부르짖으며 울었다. 그동안의 악몽은 마치 오늘을 위한 거대한 예고편이었던 것처럼 울었다. 더는 나올 비명도 없을 것 같은 순간 다시 커다란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나며 순식간에 조용해지면서 갑자기 문이 열렸다.


다 늘어난 러닝셔츠의 속옷 차림의 아버지는 매우 지쳐 보였고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씩씩 거리는 그 숨소리만이 무언가 벌어진 직후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는데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뒷목이 서늘한 땀이 내리고 오금이 저렸다.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눈으로 문 안쪽을 보자 엄마의 자랑인 커다란 거울 자개장이 넘어져 거울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고 시뻘건 피웅덩이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엄마가 쓰러져있었다. 묻지 않아도 알았다. 그게 누구의 피인지. 죽는 날까지 나는 그 장면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엄마의 한쪽 손목에서 흘러나온 피는 방안을 흥건히 적시던 그 모습을. 내 모든 악몽이 현실이 된 그 순간에 나는 고작 엄마, 엄마하고 주저앉아 울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작 열두 살인 나를 떼놓고 쓰러진 엄마를 등지고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씩씩 숨을 내쉬던 아버지를 기억한다. 쓰러진 엄마에게 동네 분들이 달려와서 급한 대로 수건으로 엄마의 왼손을 감고 어느 아저씨의 등에 업혀 집밖으로 실려나간 죽음의 가까워 축 늘어진 엄마의 등을. 그리고 동네사람들의 성화에도 뒤따라 응급차에 타지 않고 '내버려 두소'라며 버티던 시뻘건 아버지의 얼굴을 여전히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있다. 나에겐 이유는 궁금한 것이 아니었다. 엄마가 부부싸움 끝에 자살을 시도했다는 것은 우리 모두와 세상을 등져버릴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내내 악몽에서 보기만 했던 상황이 눈앞에 현실이 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우는 나를 달래지도 않고 자기 새끼를 낳아준 여자가 옆에서 피 흘리며 죽어 가는데 살릴 의지조차 없이, 주변에 몰려든 동네사람들에게 마치 쓰레기를 던지듯 사람을 가져가라고 내어준 사람이 내 아버지라는 것은 어린 내가 감당하기에 어렵다. 아니 지금의 나도 이해할 수 없는데 당시 열두 살에겐 어땠을까. 당연하게도 나는 엄마가 죽는다는 생각에 반쯤 미쳐가고 있었다. 오랜 시간 악몽에 시달린 당연한 결론이었는데 할머니는 '네 엄마 안 죽는다'며 피칠갑이 된 안방을 닦았다. 안방으로는 누구도 못 들어가게 했지만 집안은 이미 죽음의 공포와 냄새로 가득했다. 엄마가 한쪽 손목에 허연 붕대를 감고 돌아온 날은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기분에 휩싸였다. 내가 뭘 할 수 있겠는가, 그저 아픈 엄마가 안타까워 동정하며 울었다.


'엄마 괜찮아. 안 죽어.'


그렇게 말하고도 엄마는 며칠을 힘없이 누워있었다. 시퍼렇던 엄마의 안색을 쓰다듬으며 엄마의 옆자리에서 소독약 냄새의 날카로움에 베여 눈물 흘리고만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채 풀지 않은 붕대 감은 팔로 저녁 밥상을 차렸다. 마치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엄마의 안에서 무언가 사라진 것처럼 삐걱삐걱 밥을 지었다.


엄마도 나도 괜찮지 않았지만 엄마가 그렇게 하기로 한 이상 나는 어떤 결정권이 없었다. 죽을 작정으로 손목을 긋고도 꿰매고 돌아와선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척 부엌에 서 서 아버지를 위한 밥을 지으려 서 있는 낯익고도 낯선 모습이 험한 세상에서도 당당했던 캔디 같던 엄마와 전혀 다른 사람인 거 같아 나는 더 묻지 않았다. 그날 무언가 엄마의 안에서 사라진 것만 확실했다. 그리고 나도 전부 깨져 버렸다. 학교에서 배운 옳다고 믿었던 것, 정의롭다고 믿었던 것 모두가 산산이 부서졌다.


아버지 탓이 아니었어도 죽어가는 엄마를 내버려 둔 것은 아버지의 잘못이었지만 아버지는 벌 받지 않았다. 가장이기에 이 가족을 보호해야 할 사람이라 믿고 존경해 왔으나 당신은 내 믿음을 산산이 부스고 유린했다. 당신에게는 아내와 자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아버지 자신뿐이다. 아무리 그 자리에서 어떤 비난의 말과 돌팔매를 당했어도 당신은 아내이자 당신의 아이를 셋이나 낳아준 어머니를 보호했어야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내 아버지인 것이 나를 절망케 했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조차 나에게 저주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거울은 비친 것 밖에 조형하지 못하는 것인데, 나에게 주어진 것은 매일이 지옥이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더라도 언젠가 변하겠지, 내가 죽어도 무덤을 향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지도 몰라. 나는 엄마의 딸이니까. 결국 그런 남자를 고르고 사랑이란 감정에 취해 가족도 모두를 저버리고 결혼해서 이 지옥을 떠날 수도 있어. 그리고 다시 내 손으로 새로운 지옥을 만들겠지. 그게 내 남은 인생의 설계라면 그전에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나을 수도 있을 거야. 나와 같은 피해자를 만들기 전에. 어쩜 이렇게 상처받기 위해 태어난 인생도 있을까. 나는 내가 너무 불쌍했지만, 솔직히 그 이상으로 엄마가 불쌍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착한 딸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 결심이 내가 '착한 아이 콤플렉스'와 엄마의 '감정쓰레기통'이 되는 직통이었던 것을 몰랐다. 그때 나는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나 자신에게는 절대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때 이후로 엄마는 또래보다 성숙한 나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나는 과하게 반응하고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듯 행동했다. 거기서 내 쓰임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엄마의 끝없는 이야기를 듣고 달래고 또 달래는 데 내 인생 대부분을 썼다. 그 붉은 밤의 이후에 계속 나는 엄마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엄마도 그걸 아는지 내가 엄마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나를 방에 가두고 파리채가 부서질 때까지 종아리를 치고 칼을 가져와 던지며 같이 죽자고 했다. 나는 울면서 그런 얘기를 들으며 잘못했다고 비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과연 그렇게 잘못을 했던가. 나는 그저 학원을 하루 빼먹었을 뿐인데. 엄마에게 죽는다는 것은 무섭지 않았다. 엄마가 죽는 것이 무서울 뿐이었다. 지금에야 엄마가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뭔지 알면서 나에게 계속 그렇게 자살하겠다고 한 것일까, 아니 대체 왜 아버지가 아니라 나에게 매일 그랬을까 의문이 들지만, 그땐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엄마의 절망과 가스라이팅에 심화된 나는 매일같이 눈감기 전 다음날 눈 뜨지 않기를 기도할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최악의 십 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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