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감자, 쇼핑, 그리고 DNA

당연한 것의 당연하지 않은 기적

by 여행하는 그리니

엄마가 새로 샀는데 불편하다며 안 입는 속옷 두벌과 과일, 파프리카, 식혜, 뻥뛰기, 감자를 잔뜩 사오셨다. 그리고 홍감자라는 것을 쪄주셨다. 너무 맛있어서 한자리에서 5개나 먹어버렸다. 쫀득쫀득하고 고소하고, 달짝지근한게 너무 맛있었다. 엄마는 내일 저녁으로 먹으라고 하시면서 또 지리산 감자 10kg짜리를 카카오스토리로 28000원에 샀는데 너무 맛있다며 나보고도 시키라고 하셨다. 나는 '오, 맛있다.'를 연발하며 또 엄마의 지시에 '오, 시켜야겠다'를 또 연발하며 맛있게 홍감자를 해치웠다.


엄마가 가져온 속옷은 너무 편해서 '야호'를 외쳤다. 그 속옷을 입고, 엄마가 또 저번에 안입는다고 준 블라우스에 청바지에, 또 너무 작다며 준 샌들에, 또 잘 안쓴다며 준 가방을 둘러메고, 아울렛 쇼핑을 갔다. 엄마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다 내가 준거네. 블라우스에, 청바지에, 샌들에, 가방에 속옷까지." 라며 나를 놀렸다. 그래서 나는 한술 더떠서 엄마에게 대답했다.

"이 몸이 다 엄마가 준거잖아. 머리카락, 얼굴, 팔, 다리, 손, 발, DNA 자체가."

그리고 엄마와 나는 자지러지듯 크게 웃었다.


그리고 엄마와 나는 아울렛 쇼핑을 오랜만에 즐겼다. 엄마는 바지와 반팔 블랙 니트를 샀고 나는 꽃무늬 스퀘어넥 블라우스(2만 원)와 블랙 원피스(7만 9천 원)와 화이트 반팔 니트(1만 5천 원)를 샀다. 셋 다 마음에 쏙 들었다. 역시 쇼핑은 엄마와 해야 제맛이다.

탈의실에서 엄마와 수다를 떨며(주로 옷에 대한 이야기) 옷을 갈아입는 순간, 그 순간이 갑자기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그 순간 갑자기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했다. 아무렇지 않게 이렇게 옷을 갈아입고, 새 옷을 사고, 엄마와 쇼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아, 내가 살아있구나. 우리 엄마도 이렇게 살아서 이야기하고 있구나.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한 일상이었는데, 깊이 그 순간에 존재하니 그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행복했다. 그리고 내가 살아있음에, 사랑하는 엄마가 살아계심에 말할 수 없이 행복하고 감사했다.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한 일상의 순간들도 아주 깊이 그 속에 존재하면 당연하지 않은 것, 낯선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항상 주변에 있는 것, 내가 원래 갖고 있는 것,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주어지는 것에는 감사함과 행복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까지고 그것이 항상 당연하게 주어질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고 영원한 것은 없다.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주어지는 것, 당연하게 존재해서 그 소중함을 모르는 것은 온전히 그것과 함께 하며 깨어있는 순간, 매우 낯설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 당연하고 익숙한 순간이 실제로는 '당연한 것의 당연하지 않은 기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지금 숨 쉬고 있는 공기, 건강한 신체, 굶지 않고 먹을 수 있음, 건강한 가족,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있음,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


당연한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온전히 그 순간에 존재하면, 그것들이 얼마나 기적 같은 아름다운 순간인지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