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큐를 통해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나의 오랜 고민과 그 고민을 해결하고 싶다는 욕망에 대한 것이었다. 나의 오랜 고민은 회사와 집만 오가며 자아가 고정되어버린 스스로에 대한 회의감이었다. 하루의 3분의 1은 잠을 자고 하루의 3분의 1은 일을 하며 나머지 3분의 1은 생존과 생활에 필요한 일들, 그리고 중요하지는 않지만 그저 그런 일들, 단기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일들을 하며 보내는 삶. 그런 삶을 앞으로 20~30년 더 보내고, 인생을 모험하고 도전해보지 못한 채 무기력한 노인이 된 모습을 생각하면 너무나 답답하고 우울해졌다. 퇴근하고 무언가를 배우거나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는 것도 해보았지만 그 갈증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단기적인 배움이나 일회성 체험에 그친 후에는 다시 원래의 자아로 되돌아온다. 퇴근하면 넷플릭스나 TV 드라마, 유튜브를 본다. 또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다. 모두 누군가가 만든 창작물을 보거나 읽거나 경험하는 소비형 체험이다. 물론 그런 경험들도 의미있고 즐겁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갈증과 욕망이 계속 내 마음 속에 쌓여가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무언가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누군가가 만든 것을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주체가 되어 판을 짜고, 그 판안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 것이 아닐까? 구경만 하는 삶이 아니라 창조하는 삶을 살고 싶다. 무언가를 만들고, 행동하고, 도전하고, 실험하고, 계획하고,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싶다. 누군가의 창작물을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스스로 무언가를 만드는 창조 행위를 예술이라고 부른다면 나는 일상을 예술로 만들고, 삶 전체를 예술로 만들고 싶었다. 나는 지금까지 예술이란 아주 특별한 부류의 사람들,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고, 예술적 영혼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만이 하는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직업으로서의 예술, 특별한 재능으로서의 예술을 가정하고 나같이 평범한 사람은 그런 것과는 동떨어진 삶을 산다고 생각했다. 내 삶에서 예술은 소비하고 관람하는 것이지 생산하고 창조하는 것이 아니었다. 예술에 있어서 나는 철저히 관람자의 위치에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를 생각해보면 그때는 예술과 놀이의 경계가 없었다. 누군가가 시켜서 또는 돈을 벌기 위해서 또는 직업으로서의 예술이 아니라 그냥 재미있기 때문에 무언가를 만들고, 창조하고, 즐거운 놀이로서 무언가를 즐겼다.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영화감상문을 쓰고, 소설을 쓰고, 조각 작품을 만들고,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직접 만들고, 요리를 하고, 기록을 하고, 자연을 관찰하며 실험을 하고, 작은 여행을 떠나며 그런 것들을 어떤 목적도 없이 그냥 했다.
그러다가 중고등학교를 거치고, 직업을 갖기 위해 대학을 가고, 취업 준비를 하고, 직장에 들어가고, 직장에서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긴 세월을 거치면서 예술은 나와는 별개의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히게 되었다. 예술은 예술가가 하는 것이고, 나는 그것을 소비하고 감상하는 관람자에 머무는 것이 다였다. 그림 전시를 보거나, 클래식 공연을 보거나, 뮤지컬을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모든 행위가 누군가의 창작물을 수동적인 입장에서 소비하고 끝나는 구경하는 자의 위치로 강등된 것이다.
퇴근 후에는 누군가가 만든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누군가가 만든 유튜브를 보며, 누군가가 만든 음악을 듣고, 누군가가 쓴 책을 읽는다. 주말에는 누군가가 좋다고 리뷰한 곳에 여행을 가고, 누군가가 극찬한 책이나 영화를 소비한다. 모든 것이 소비와 관람으로 채워진 수동적인 삶에서 나는 창조와 능동성을 잃어버리고 삶과 예술의 기쁨도 잊어버렸다. ‘행동’하는 사람에서 ‘구경’하는 사람으로, ‘창조’하는 사람에서 ‘소비‘하는 사람으로, '놀이‘하는 사람에서 '노동‘하는 사람으로 삶을 아주 재미없게 사는 사람이 되버린 것이다.
어린 시절 아무 이유 없이 무언가를 창작했던 예술가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나는 다시 그 예술가를 깨우고 싶었다. 공교육과 직업교육을 받고, 직장생활을 하는 세월 동안 억압되고 잠들어버린 예술가를 깨워서 일상을 예술로 채우고, 삶 전체를 예술로 만드는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일상을 예술로 채우고, 삶 전체를 예술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우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아무 목적 없이 해볼 것이다. 그것들을 그냥 아무 목적 없이 순수하게 즐기는 마음으로 해보고 싶다.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생기면 만들어 보고, 해보고 싶은 것이 생기면 바로 해보고, 가보고 싶은 곳이 있으면 가보고,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고, 여행을 떠나고, 자연을 걷고, 그것들을 모두 영상과 글로 기록하고 싶다.
모든 어린이들은 예술가다.
- 파블로 피카소
나라는 어른은 그것을 잠시 잊어버렸을 뿐 저 깊숙한 곳에 아직도 예술가의 자아가 잠들어 있다. 그 자아를 흔들어 깨우기만 하면 삶이 재밌는 예술이 또는 놀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사람이라면 모두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예술가의 순수한 눈을 가지고 세상을 탐험하는 재미를 이야기하고 싶다. 이것이 바로 내가 다큐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나의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