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지옥 해방일지> 이나가키 에미코
생때를 쓰는 게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이 생활이 내 인생에서 최고다. 어떤 것이 멋진가 하면 무엇보다 시간이 넉넉하다는 것!
매일 잘 정돈된 방에서 청결하고 기분좋게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무엇이 더 필요할까?
대다수 사람은 당연한 듯 ‘행복하려면 반드시 돈이 필요하다’라고 믿는다. 물론 나도 과거에는 그렇게 믿고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행복이란 얼마든지 내 손으로 짧은 시간에 손쉽게 뚝딱 만들 수 있는 거라고, 걸레를 한 손에 쥐고 절실히 느끼며 지극한 행복감에 빠졌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이런저런 불안이나 불만에 대해 우물쭈물 고민하는 시간이 말끔히 사라졌다. 이 경지에 이르니 이제껏 나라는 인간이 참으로 끙끙 고민하며 살아왔구나, 많은 시간와 에너지를 불안과 불만으로 탕진해왔구나 하고 비로소 깨달았다. 그 불모의 지옥에서 무사히 졸업한 나는 눈앞에 나타난 엄청난 자유시간을 고마운 마음으로 누릴 따름이다. 결국 걱정없이 하고 싶은 ‘온갖’ 일들을 자유롭게 시도하며 지내고 있다. 40년만에 다시 시작한 피아노는 매일 2시간은 연습한다. 비록 거북이 걸음마처럼 느리지만 차근차근 실력이 향상되고 있다. 내친김에 하고 싶던 다도, 서예, 발레와 뜨개질도 시작했고 30년만에 하고 싶던 그림도 자유로이 그리기 시작했다.
이 얼마나 예술적인 나날인가!
→ 나의 꿈이다. 텅빈 방, 그러나 잘 정돈된 간소한 방에서 10분 안에 청소를 끝내고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건강한 음식을 먹고, 걱정없이 하고 싶은 온갖 일들을 자유롭게 시도하며 예술적인 나날을 사는 삶. 오늘은 또 무얼하고 놀까 행복하게 상상하며 아침을 여는 나의 모습. 그것이 나의 꿈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하루는 또 어떤 재밌는 일이 펼쳐질까, 또 어떤 신나는 놀이를 해볼까. 하는 생각에 설레였던 어린시절. 하루의 모든 순간이 놀이의 순간이었던 어린 시절의 두근거리는 삶을 사는 것.
내가 꿈꾸는 놀이로 가득한 삶을 살기 위해서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것은 소유가 아니라 시간의 자유다. 소유물을 늘리는 것은 나에게 그런 자유와 행복을 가져다 주기는 커녕 자유를 노예처럼 반납하고 노동으로 나의 시간을 바쳐야 한다. 물건을 사기 위해 그리고 그 물건들을 보관하기 위해 공간을 사고, 그 공간을 사기 위해 나의 자유와 시간을 노동으로 반납한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지.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지금껏 반복하며 나의 소중한 인생을 낭비해왔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텅빈 방에서 자유시간을 만끽하며 삶을 가볍고 신나게 살고 싶다. 나는 1년 후 휴직을 하고 제주 한달살기를 시작으로 그러한 삶을 살아볼 생각이다. 그리고 1년 동안 마음에 드는 도시를 여러 곳 정해서 그곳에 한달씩 살며 요가를 배우고, 걷기 여행을 하고, 사진을 찍고, 악기를 배우고, 무언가 특별한 경험에 도전할 생각이다. 1년 후에는 가장 마음에 드는 도시를 골라 그곳에 집을 구할 것이다. 10분 안에 청소가 끝나는 작은 집, 자연속에 있는 집이 나의 이상적인 집이다. 그리고 그 집에서 아침에는 명상으로 하루를 열고, 10분 만에 청소를 끝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할 것이다. 글을 쓰고, 자연으로 걷기여행을 떠날 것이다. 아마 그곳은 아름다운 자연이 가득해 10분 만 나가면 자연 속에 품 안겨 마음껏 걸을 수 있는 길들이 가득한 곳이리라. 어디가 좋을지 한달씩 살아보고 결정할 생각이다. 이건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거니까. 아름다운 자연 속을 걸을 수 있는 걷기 코스가 30개 이상 있고, 배우고 싶은 것을 마음껏 배울 수 있고, 자연 속에 집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라도 나는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 이변은 이런저런 고심 끝에 회사를 그만두고 인생 첫 ‘월급없는 생활’을 시작했을 때 일어났다.
돈이 없으니 집안일이 편해졌다?
월급이 들어오지 않으니 돈이 없었다. 돈이 없으니 지금까지 당연하게 누려온 생활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포기해야만 했다. 먼저 집세를 절약하려고 고급 맨션에서 낡은 원룸으로 이사했다. 공간이 좁아지니 물건을 수납할 곳이 없었다. 결국 옷도 화장품도 수건도 식기도 조미료도 조리도구도 이제껏 오랜 세월 열심히 일해서 차곡차곡 사모은 나의 수집품 대부분을 포기해야 했다.
옷을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시크한 파리지엔 따라잡기>에 나온 대로 열 벌 정도만 남겼고, 식사는 휴대용 가스버너를 이용해 소금과 간장, 된장만으로 요리해 마치 혼자 캠핑하는 듯한 생활이 시작되었다. 수도승과 같은 금욕생활이 더 빛나 보이던 시절이었다.
→ 이 책의 저자 이나가키 에미코는 자신이 행복하고 이상적인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된 계기가 바로 월급없는 생활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월급이 들어오지 않으니 돈이 없었고, 집세를 절약하기 위해 작고 낡은 원룸으로 이사한다. 공간이 좁으니 가진 물건들을 모두 버려야 했다. 옷은 열벌만 남기고, 냉장고와 세탁기도 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모든 것을 비우니 오히려 삶이 편해지기 시작한다.
어떻게 그런 마법이 일어난 것인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나의 2025년 미니멀 라이프의 교본으로 삼아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돈을 버는 대신 시간을 버는 삶. 월급없는 생활을 해보기로 하자. 월급없는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그녀처럼 당연하게 누려온 생활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포기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그것은 포기라기보다 오히려 자유와 해방으로 느껴진다. 10분만에 청소가 끝날 수 있는 작은 공간에서 생존에 꼭 필요한 중요한 것만 가지고, 삶의 진정한 자유를 즐기며 시간 부자로 사는 삶. 그것이 나에게는 자유와 해방이다. 소유와 물건에 대한 집착, 사회가 선전하는 광고와 자본주의 세뇌의 유혹에 지지 않는다면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월급없는 삶은 어떤 삶이 될 것인가. 벌써부터 설레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