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호킨스의 지혜>, 데이비드 호킨스
완벽하지 않은 반쯤 핀 장미는 없습니다. 완벽하게 반쯤 핀 장미가 있을 뿐이지요. 따라서 인생과 세상과 현실에 대한 우리의 경험이 완전히 달라지게 하는 길은 모든 것이 매 순간 완벽함을 보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을 개선할 수 있나?” 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신경쓰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은 있는 그대로 완벽합니다. 세상을 개선하려고 애쓰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은 심지어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나름의 인식이 투영된 것일 뿐입니다. 카르마적 이익과 의식의 진화를 위해 세상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 세상은 있는 그대로 완벽합니다.
- <데이비드 호킨스의 지혜>, 데이비드 호킨스
지금과 다른 삶을 사는 한 가지 방법은 삶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꾸는 것이다. 매 순간 모든 존재의 완벽함을 보는 나로 바뀌는 것이다.
이 세상은 있는 그대로 완벽하다. 나의 삶도 마찬가지다. 나의 삶은 있는 그대로 완벽하다. 데이비드 호킨스는 말한다. 우리고 보고 있는 이 세상은 심지어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나의 삶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지고 있는 나름의 인식이 투영된 것이 나의 삶이고, 내가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세상이다. 카르마적 이익과 의식의 진화를 위해 세상이 존재하고 있고, 삶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세상과 나의 삶은 있는 그대로 완벽하다.
모든 것은 실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의식이 투영된 가상의 홀로그램이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완벽하게 바라본다면 그것은 완벽하게 존재한다. 내가 어떤 환경에 있고, 어떤 일을 하든 모든 것은 완벽하다. 지금 이 순간 있는 이대로.
내 생각에 무조건적 사랑은 인간이 삶에서 추구할 최고의 목표입니다. 무조건적 사랑은 인간계에서 도달 가능한 수준입니다. 오늘날의 세상에서 깨달음의 상태까지 도달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무조건적 사랑의 상태이기만 하면 육체를 떠날 때 천상계에 진입합니다.
높은 500대는 매우 놀라운 상태입니다. 만물의 순전한 아름다움에 압도당합니다. 사랑만이 유일한 실상으로 존재합니다. 사랑만 존재하여, 보이는 모든 것이 사랑입니다. 경험되는 모든 것이 사랑과 아름다움입니다. 사랑과 아름다움과 조화와 기적적인 일이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해, 마침내는 끊임없이 일어나게 되지요.
데이비드 호킨스는 인간이 삶에서 추구할 최고의 목표는 '무조건적 사랑'이라고 말한다. 만물의 순전한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모든 것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사랑하는 상태. 사랑만 존재하며 보이는 모든 것이 사랑인 상태. 경험되는 모든 것이 사랑과 아름다움인 상태. 그런 상태에서는 사랑과 아름다움과 조화와 기적이 일어난다. 끊임없이 그런 일이 일어나는 삶을 사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지금 내가 존재하는 이 곳의 아름다움과 조화와 기적과 사랑이 보이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만사가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 심지어 생각하는 상태도 저 스스로 알아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생각할지 결정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의 생각하는 상태에 무심해지면 세상에 대해서도 무심해집니다. 주변 세상이 나의 협조 없이도 돌아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을 존재하며 움직이고 말하도록 내가 돕지 않아도 다들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무심해져서 목격자가 되는 일에 들어가세요. 목격자 되기는 어려운 단계가 아닙니다. 일을 일으키는 나가 존재한다고 멋대로 생각하는 자기도취를 놓아버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 어떤 것도 아무런 일도 일으키지 않습니다. 이 세계에 원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는 생각이 저 스스로 알아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관찰하고 깜짝 놀라는 순간이 많다. 뜬금없는 생각, 말도 안되는 생각, 쓸데없고 무용한 생각들. 지금 하고 있는 것과 전혀 관련없는 생각들. 그런 생각들이 두더지처럼 튀어나와 의식의 전면에 떠올랐다 사라진다. 그 생각들은 내가 내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저 스스로 알아서 일어나고 있다.
저 스스로 알아서 일어나는 생각처럼 세상도 그러하다.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생각할지 결정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듯이 세상도 내가 내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고 결정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세상은 나의 의지나 행동이 없이도 알아서 돌아가고 있다. 내가 돕지 않아도 행동하지 않아도 세상은 살아움직이며 변화하고 있다. 그러니 나는 무심해져서 목격자가 되어 이 세상을 바라보면 된다. 일을 일으키는 내가 존재한다고 착각하는 나를 버리고 그냥 있는 그대로 존재하며 목격자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명상의 가치는 우리로 하여금 생각의 내용과 동일시하는 것에 시간과 노력 쏟기를 철회하고 생각이 일어나는 공간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생각의 목격자가 있음을 알기 시작합니다. 목격자에 대한 알아차림이 있습니다.
의식 자체와 동일시하면 몸이나 마음이나 생각이나 감정이 자신의 실상이라고 동일시하는 것에서 벗어나 더 큰 차원으로 옮겨 갑니다.
나는 생각이 아니다. 감정도 아니다. 생각과 감정은 나의 실상이 아니다. 나는 그것들을 바라보는 목격자이자 알아차림이다. 생각과 감정은 내가 나의 의지로 선택하고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알아서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내가 아니다. 나는 그것들을 바라보는 알아차림이다. 내가 알아차림이 되면 나는 그 생각들과 감정에 끄달리지 않게 된다. 그냥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일어났다 사라지는 변화를 바라보게 된다. 그것들이 난데없이 생겨났다 허망하게 사라지는 공간이 된다. 그러면 그것들의 무상함을 깨달을 수 있고 그 깨달음은 놓아버림의 지혜로 변화된다. 놓아버림의 지혜를 얻게 되면 세상의 이런저런 소란함에 물들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재함의 의미를 실현하게 된다. 행복과 평화가 세상의 이런저런 일들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내면의 중심에서 솟아나게 된다. 나의 행복과 불행은 나의 외부적인 것들, 환경, 세상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의 행복과 불행은 모두 나의 의식이 결정한다. 나의 내부가 나의 의식이 물질화된 것이 내가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세상이다. 그러므로 바꾸어야 할 것은 단 하나 나의 의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