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사실’이 아니라 '현상'임을 아는 능력

by 최정미의 뇌과학

명상을 하다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변화가 찾아오는데요.

평소라면 금세 마음을 흔들어 놓을 생각과 감정들이, 어느 순간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생각이 나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생각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느끼게 되는 현상이지요.

이 변화의 핵심 개념인 ‘탈실체화(dereification)’ 를 최신 뇌과학 연구의 관점에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생각이 ‘사실’이 아니라 ‘현상’이라는 것을 아는 능력인 '탈실체화'는 우리가 떠올리는 생각이나 감정, 기억, 심지어는 ‘나라는 느낌’까지도 실체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과정을 뜻하는데요. 영어로는 de-reification 즉, ‘실체화(reification)’에서 빠져나온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탈실체화.png


명상에서는 자주 “생각과 거리두기”, “비판단적 인식”, “붙들림에서 벗어남”과 같은 표현으로 나타나는 변화가 바로 이 de-reification 인데요. ‘탈집착’, ‘인지적 탈융합(cognitive defusion)’, '중심에서 벗어나 보기(Decentering)', '비동일시(Non-identification)', '메타 인지(meta-awareness)' 라는 개념들과도 비슷합니다.


최근 발표된 뇌파(EEG) 기반 명상 연구들은 이 능력을 점점 더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하고 있는 중 인데요, 특히, 고감마(high-gamma) 신호가 생각과 자아감으로부터 멀어지는 순간에 뇌가 보이는 중요한 지표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명상의 종류가 다양하다보니, 보통 명상시 특정 리듬이 반드시 증가하거나 감소한다고 표현하긴 어려워서, 어떤 리듬의 절대값만으로는 모든 명상 상태를 아우르긴 힘든 분위기 였어요. 그러다보니, 최신 연구들은 고감마의 ‘크기’가 아니라 고감마 패턴이 '잡념(mind-wandering)' 상태에서 얼마나 달라졌는가를 정량화하는 방향으로 현재 각자의 명상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려는 시도가 되고 있는데요.


보통 mind-wandering(멍하니 잡념에 빠짐) 상태는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과거 경험이나 기억' 을 떠올릴 때 나타나는 뚜렷한 패턴을 갖습니다. 이 상태가 곧 탈실체화(dereification)가 가장 낮은 상태인, “잡념과 완전히 동일시된 상태” 의 뇌파 기준 패턴이 되는 것이죠.


반대로 명상은 이 mind-wandering 패턴으로부터의 점점 거리(distance)가 멀어져 가는 상태라 보고, 이 ‘거리’가 멀어질수록 자기 생각, 감정과의 분리 경험이 높아지고, dereification이 강해졌다고 해석하게 됩니다. 즉, 명상은 잡념으로부터 벗어나는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 내는 과정(mind-coupling) 이라고 본 것인데요.


그렇다면, 기준 패턴인 마음이 방황하는 상태(mind-wandering)를 어떻게 유도했을까요?


연구에서 말하는 mind-wandering은 그저 멍하니 쉬는 상태가 아닙니다. 숙련 수행자들은 ‘쉬라’고 하면 오히려 바로 명상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연구팀은 mind-wandering을 의도적으로 유도하는 방식을 사용해야 했어요.


예를 들면, 어린 시절 여행이나 최근 하루를 떠올리게 하는 등의 자전적 기억을 언어로 머릿속에서 서술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죠. 이런 활동은 모두 자기참조적 사고를 활성화시켜서, 잡념 속으로 깊이 빠져들도록 만드는 휴식모드 뇌신경망의 자연스러운 마음 방황 모드입니다.


이 상태는 탈실체화(dereification)의 반대 지점에 있어서, 생각을 ‘현상’이 아니라 ‘사실’처럼 느끼고, 그 안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잠기는 순간이지요.


그런데,

모든 명상 전통이 dereification을 동일한 방식으로 강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집중 명상에서는 호흡 하나에만 초점을 기울이고,

열린 주의 명상에서는 잡생각의 흐름을 가볍게 흘려보내며,

어떤 수행에서는 ‘자아의 실체가 없다’는 통찰에 접근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명상은

결국 '생각, 감정과 같은 의식 작용들로부터의 자유'라는 공통된 방향으로 향합니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뇌과학자들이 탈실체화(dereification)를 명상의 ‘핵심 능력’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요.


어쨌든, dereification이 훈련되기 시작하면 일상에서도 많은 변화가 나타나게 되는 데,

예를 들면,

감정이 올라와도 반응이 느려지고,

생각이 튀어나와도 곧장 그 생각에 빠져들진 않게 되며,

판단 이전에 잠시 머무르는 ‘틈’이 생기며,

자아감이 과도하게 부풀었다가도 금세 안정되는 힘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순간들이 쌓이면 마음 전체의 움직임이 달라지게 되지요.

즉, 명상이 세상을 바라보는 뇌를 바꾸는 토대가 됩니다.


우리는 종종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신호일 뿐인,

생각과 감정을 곧 ‘나’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명상은 그 믿음이 바뀔 수 있는 무상한 것이라는 것을 직접 경험하게 해 주지요.

생각과 감정은 잠시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현상이며,

그것을 붙잡을 수도, 흘려보낼 수도 있는 선택권이 있음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과학으로 세상을 밝힙니다. 최정미의 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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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fQl0ttyn4ac


그림 출처 : https://doi.org/10.1038/s41598-024-737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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