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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지다사라지다 Dec 19. 2022

부모가 철이 없으면 자식이 철이 든다

네 살 아기를 키우는 미운 엄마

다행히 아기의 감기가 회복세이다.

아이가 아프고 나면 무언가 배운다는 말을 들었다.

버전 업 까진 아니고 시스템 업그레이드 같은 건가 보다.

잠을 늦게 자는 아이였는데, 요즘은 씻고 나면 본인이 먼저 자자고 한다.

나일강의 기적만 기적이 아니라 이것이 진정한 일상의 기적이다.



나는 철없는 부모 밑에서 자랐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나의 엄마는 도피 유학 대신 도피 결혼을 택했다.

물론 엄마와 아빠는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말은 하는데 믿기진 않는다.

아빠는 속세의 인간보단 자연인이 되어 사는 게 더욱 어울릴만한 사람이었고

엄마는 실제로 나이도 어렸고 성급하게 부모가 되었다.


자녀는 당연히 부모의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나의 장래희망은 어떠한 직업이 아니라 내 부모처럼 살지 않는 것이었다.


엄마는 작은 일에도 쉽게 화를 내고 짜증을 냈다.

그래서 나는 내 감정을 최대한 감추고 말을 줄였다.


엄마는 말보단 주먹이 앞서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말보다 글이 앞서는 사람이 되었다.


엄마는 주머니에 있는 돈은 그날 다 써버리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강박적으로 저축에 집착했다.


엄마는 학교보단 거리를 택했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 열심히 다녔고, 우등생은 아니었지만 모범생 소리는 들었다.


동네 할머니들은 나를 보고 애늙은이라 불렀다.

그때는 그게 나이보다 성숙하다는 칭찬인 줄 알았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것은 기특하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겉으로 볼 때 나는 일찍 철든 아이로 보였겠지만

실은 칭찬에 갈증을 느끼는 어린아이였을 뿐이다.

나라도 인정받고 싶었다.

그 어미에 그 자식이라는 말이 죽기보다 듣기 싫었다.




엄마는 나를 일찍 낳았기 때문에

내가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도 40대 초반밖에 되지 않았다.

요즘 초산의 평균 연령대를 감안할 때 그것은 굉장히 젊은 나이다.


30대 후반까지 동안의 미모를 유지했던 엄마는

나의 고등학교 졸업식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늙었다.


엄마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 엄마는 노느라 바빠 졸업식에 가지 않았다.

그래서 할머니가 대신 혼자 졸업식에 가서 졸업장을 받아오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날 많이 우셨다고 들었다.


나의 고등학교 졸업식날 나는 개근상과 공로상을 받았다.

식이 끝나고 학생들에게 꽃다발을 주기 위해 삼삼오오 모이는데

엄마는 눈이 퉁퉁 부어 내 앞에 나타났다.

엄마는 나의 졸업식에서 왜 울었을까.

엄마는 그날 이후로 일 년 새 이십 년 치 나이를 먹었다.




부모가 철이 없으면 자식이 먼저 철이 든다.

대책 없이 살면 어떻게 되는지를 너무 가까이 배워서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나이에 맞지 않는 사색과 노력을 하게 된다.

그래서 빨리 늙는다.


그렇게 고단했던 내가 부모가 되었고,

때론 지나친 자기 검열을 하곤 한다.

내 아이는 일찍 철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마음처럼 쉽지 않다.

아기가 네 살에 걸맞은 떼를 쓸 때 솔직히 귀가 아프지만 부럽다.

나는 저렇게 떼를 써보지 못했다. 받아주는 이가 없어서.


내가 철없는 모습을 보일 때, 쪼그만 게 나를 다독인다.

그게 참 기특하면서도 속상하다.

제발 기도하건대 아이가 나의 인생을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


네 살. 미운 네 살이라고들 한다.

성장 과정에서의 내적 변화가 극심해지는 시기라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나의 상황을 볼 때

아이는 한 없이 예쁘고, 내가 밉다.

철은 없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나를 잘 길러준 엄마가 밀물처럼 미웠다가 좋았다가

썰물처럼 내가 밉다.


나도 이제라도 철 없이 살아보고 싶다.

역시나 말뿐이겠지만 말이다.

딸로 사는 것도, 엄마로 사는 것도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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