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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지다사라지다 Dec 15. 2022

품이 그리울 때

모든 아이들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근 며칠 아이가 아팠다. 열감기에 가래가 끓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밥 먹고 나면 신이 나서 펄펄 뛰던 아이가 뛰지 않는다.

계속 안아달라고 팔을 벌린다. 몸이 힘든 것이다.


약을 주면 평소에는 몸부림을 치며 안 먹겠다고 도망가더니

오늘은 체념하고 입을 벌린다. 쓴 게 약인 줄 아나보다.


집에 와서도 계속 안아달라 하더니

잘 시간이 돼도 더 놀겠다고 아우성을 치던 놈이

집의 모든 불을 끄고 먼저 자자고 한다.

감기가 독하긴 독한 모양이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엄마라는 존재가 아이에게 이렇게 비중이 큰 줄 몰랐다.

나의 엄마는 늘 밖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일찌감치 체념했던 것 같다.

너무 어릴 때라 기억나지 않지만, 그 체념의 과정이 나에게 외로웠을 것 같다.


아이는 즐거워도, 슬퍼도, 아파도 엄마를 먼저 찾는다.

적어도 아이가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엄마에게 독립하기 전 까지는

엄마라는 사람이 이에겐 우주만큼 넓고 큰 것 같다.




대학생 때 보육원에 봉사를 다녔다.

우리는 가기 전에 큰 마트에 들러 과자 꾸러미를 잔뜩 샀다.

도착하면 봉사자분이 3~5세 아이들이 가득 찬 방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아이들은 작은 둥지에 앉은 새 처럼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봉사자들이 한 명씩 바닥에 앉자마자 아이들이 달려와 안긴다.

한꺼번에 여러 명을 안고 있으면 좋겠지만, 품의 여력이 크지 않아서 한 명만 안을 수 있다.

안기는 데 성공한 아이는 이제 나머지 아이들을 경계한다.

"야 내가 먼저 앉았어! 오지 마! 저리 가!"


아이는 내 품을 파고든다. 처음 본 낯선 여자의 품.

마치 내 품을 벗어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꽈악 안긴다.

봉사자들에게 주어진 50분의 시간 동안 아이는 1초의 시간도 아까워라 폭 안긴다.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엄마가 아니란 것쯤은 진작에 안다.

사람의 품이, 사람의 온기가 너무도 그리운 것이다.

아이는 내 품에서 자는 건 아니지만 눈을 감고 온전히 품을 느낀다.

안기기에 실패한 아이들은 화도 내지 않고 다시 창 밖을 멍하니 본다.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상상할 자신이 없어졌다.


우리가 사 온 과자는 구석에 아무렇게나 내팽겨져있다.

아무도 과자를 먹지 않았다.




과자나 멋진 장난감이 아니라

포근하고 따신 품을 원하는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외롭지 않게, 누군가를 멍하니 기다리지 않게

모두가 품 속에서 따듯하기를 기도한다.


나 또한 언제든 품을 내어줄 수 있는 어미가 되도록 더 노력해야겠다.

모든 부모가 공감하겠지만

때로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아이가 부모를 사랑한다.

부모가 안아준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들이 안아주는 것인데.


어떨 때는 마냥 강한 힘을 가지고 싶다가도

어떨 때는 한없이 약해져 나 조차도 안아줄 수 없다.

우리의 변화하는 성장이 결국 불안의 근원일까.


끝내 계속 이겨내는 수밖에 없다.

아이를 안고 안고, 나의 온기가 사라지기 직전까지 또 안고

그렇게 우리는 이겨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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