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살아지다사라지다 Dec 10. 2022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이유

이것은 방임인가 자유인가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아무도 나에게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아기 때부터 외가에 맡겨졌다.

영화에서 나오는 장면처럼 잠들기 전 엄마가 아이의 침상에서 책을 읽어주고

아기는 스르륵 잠들고 이마에 키스 쪽 하면서 불을 꺼주는

그런 경험은 단 한 번도 없다.


나의 엄마는 나에게 책을 읽어줄 만큼 다정다감한 성격이 아니다.

엄마가 나를 따스하게 안아 준 기억이 없다.

다만 열정적으로 돈은 잘 썼다.

꼭 나를 위해서 소비했다기보다는 소비행위 자체를 즐기는 것 같았다.

엄마는 결코 부자는 아니었다. 그런데 돈을 열정적으로 써서 지금은 더욱 부자가 아니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과묵했다. 늘 티브이 앞에 계셨다. 소파 손잡이 위에는 리모컨이 있었다.

그것은 할아버지 외에 범접해서는 안될 영역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미디어 시청에서 제외되었다.

할머니는 글을 모른다. 할머니 시대에는 여자가 학교에 안 갔다.

그래서 나에게 책을 읽어줄 어른은 없었다.


삼촌 식구들은 옆 방에 살았다. 남자 사촌동생 둘과 유년시절을 함께 보냈다.

남자아이들 답게 낮에는 집 밖과 안을 누비며 뛰어 놀기에 바빴다.

하지만 저녁을 먹고 씻고 잠자리에 들기 전 외숙모의 집합 명령에 따라

아이들은 방에 들어가 독서를 당했다.


할머니는 전기가 없던 시절처럼 저녁 9시만 되면 이부자리에 드셨다.

다음날 새벽 4시에 일어나 마당을 쓸고 아침밥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9시에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불속에서 플래시를 켜고 책을 읽었다.

그렇게 나는 책과 친해지고 시력과 멀어졌다.


책장에는 흔해빠진 위인전 소전 집과 동물도감, 곤충도감

그리고 책 방문 판매원의 설득으로 구입한 세계 미스터리 10선이

장식품처럼 진열되어 있었다.


그 책들은 당연히 재미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남자 사촌들과 뜀박질을

할 자신이 없다면 책이라도 읽어야 했다.

가끔은 먹 향이 좋아서 혼자 서예도 했다.

할머니는 저 어린것이 붓글씨도 쓰고 책도 본다며 동네 슈퍼에 가도 자랑을 했다.

내가 할머니를 기쁘게 해 드려서 뿌듯했다.


하루는 엄마가 나에게 구구단을 얼마나 외웠는지 시험해 보겠다고 했다.

엄마의 태도가 너무 강압적이어서 나는 경직되었다.

구구단을 다 외우지 못했지만 너무 긴장돼서 아는 답도 대답을 못 했다.

엄마는 나를 비난했다.

그때부터 숫자가 싫었다.


피아노 선생님이었던 엄마는 나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주면서 자꾸 화를 냈다.

악보와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내 손등을 탁 치며 화를 냈다.

"너는 이것도 못하니? 몇 번째야 지금 어?"

그때부터 피아노가 싫었다.


엄마는 미안한 마음에 바로 피아노 학원에 나를 등록시켰다.

이미 피아노 앞에서 잔뜩 기가 죽어있는데 악보가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어느 날 나는 학원 피아노 앞에서 오줌을 쌌다.

그 이후로 학원에 가지 않았다.




내가 어미가 되고 하루는 유튜브로 육아 강의를 듣는데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부모가 무엇을 막 노력한다고 해서 아이의 타고난 재능을 더 향상하기는 어려워요.

그런데, 부모의 행동에 따라 아이의 타고난 재능을 깎아버릴 순 있습니다."


부모가 듣기에 어찌 보면 무서운 말이기도 하다.

달리 생각하면 부모로서 큰 액션을 취하지 않는 것이

아이에겐 더 좋은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내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지 않는다.

일단 아이가 보는 책이 재미가 없다. (미안하다)

그리고 내가 꼭 읽어주지 않아도 스스로 책장을 넘기며 무언갈 상상하고 있을 거라 추측한다.

하지만 아이가 먼저 궁금한 게 있으면 내 손을 가져다가 책 위의 그림에 내 손을 댄다.

인간 세이펜 같은 느낌이다.


아이의 책을 함께 들여다보고 있는 것보다

아이 옆에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게 더 좋다.

물론 1장을 읽기도 전에 또 다른 놀이를 하자며 채근하지만


이제부턴 육아에도 힘을 좀 빼야겠단 생각으로 지내고 싶다.

엄마가 곁에서 웃어주기만 해도

그게 햇살이 되어 아이는 무럭무럭 자란다.

(아직 미취학 아동인 점 양해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품이 그리울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