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이 30대 초반에 엄마의 첫 남자친구를 만났다.
아저씨는 미국에서 큰 한인 슈퍼마켓을 운영한다고 했다.
한 번은 무장강도가 가게를 털러 왔는데, 보통 사람이 총을 들고 있으면 두 손을 올리고 항복해야 하지 않나.
이 아저씨는 화가 너무 나서 총을 든 사람에게 달려들었다고 한다.
강도가 너무 당황해서 총은 쐈는데 손이 흔들렸는지 아저씨의 팔에 총알이 박혔다.
그 상태로 아저씨는 강도를 바닥에 눕히고 후드려 팼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을 때는 아저씨를 범인으로 오인하고 체포했다고 한다.
"오. 아저씨 근데 총 맞을 때 기분이 어때요? 많이 아파요?"
"음... 글쎄. 비교를 하자면 망치로 팔을 세게 맞은 기분이야. 화가 난 상태라 아픈 건 나중에 알았어. 하하."
아저씨는 반팔 티를 올려 배꼽같이 생긴 흉터를 보여주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엄마도 참 엄마 같은 남자만 만나네. 쯧쯧.'
나는 그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이라 아가 티는 벗어던진 나이었다.
그래도 아직 나에게 어른들은 어려웠고, 소극적이어서 더욱 데면데면했다.
할머니에게 건네 듣기로는 엄마가 아저씨를 따라 미국에 갈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아무 감정이 없었다.
와 엄마가 미국에 가면, 나도 나중에 놀러 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만 들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이혼한 딸자식 걱정돼서
손녀는 우리가 책임지고 기를 테니 너는 가서 새 가정 꾸리고 살아라 하신 모양이다.
어리다면 어린 나이지만
나는 엄마가 미국 가서 행복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여기서 사는 게 크게 불편하지 않고 뭐 유달리 힘든 것도 없으니
엄마가 멀리 가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았다.
엄마도 나에게 직접 말은 안 했지만 미국에 가는 것에 동의한 것 같았다.
아저씨를 만나면서 유독 표정이 밝았다.
나도 어린 나이에 처음 겪는 일이라서 어버버 했지만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순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누가 기르던 상관없다고 느꼈다.
어차피 나의 중심만 잘 잡으면 된다.
미국행 준비를 앞두고 우리는 집 근처 이태원에 있던 웬디스에 갔다.
점심을 셋이 먹기로 했다.
버거 세트를 시키고 기다리는 와중 엄마가 전화를 받으러 밖에 나갔다.
아저씨는 특유의 느끼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물었다.
"아저씨랑 엄마랑 같이 사는 거 어떻게 생각해?"
"예... 뭐... 네..."
그때의 나는 대답밖에 할 줄 몰랐다. 그리고 긍정도 부정도 하기 싫었다.
뭐가 좋고 나쁜 건지 판단이 설 나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 아저씨의 손이 내 허벅지를 감쌌다.
여름이라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한 손으로 내 허벅지를 쓰다듬으면서
느끼하게 웃고 있었다.
엄마가 들어오자 황급히 자세를 고쳤다.
나는 원래 무표정이었지만 얼굴이 더 굳어갔다.
햄버거는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셋이 함께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나를 집에 데려다주고 둘은 다른 곳에 갈 것 같았다.
나는 영혼이 빠져나간 상태로 길을 걸었다.
그런데 갑자기 앞서가던 엄마가 내 옆에 딱 붙어선다.
아저씨가 저만치 가는 걸 확인하고서 나에게 묻는다.
"너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좋겠어. 너 엄마 미국 갔으면 좋겠어? 안 갔으면 좋겠어?"
"......"
"예 아니오로 말해줘. 한 마디만."
"아니."
"그래."
엄마는 먼저 가는 아저씨에게 황급히 달려가더니 무언가 말을 하고 나에게 돌아왔다.
나는 집에 와서 일상처럼 내 방에 들어갔고
엄마도 별 다른 얘긴 없었다.
며칠 지나고 할머니가 빨래를 개면서 중얼중얼하셨다.
"하여튼 그 년은 변덕이 죽 끓듯 혀. 어휴."
엄마가 미국행을 포기했을 뿐만 아니라 아저씨와 단칼에 헤어졌다.
왜 그랬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나의 대답 때문이었을까 생각한다.
나는 엄마에게 허벅지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만약 그 얘기를 하면 강력형사사건으로 바로 번질 수 있기 때문에 얘기하지 않았다.
나는 그 느끼한 비호감 아저씨의 목숨을 구해줬다.
몇 달이 흐른 후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왜 미국 안 가?"
"네가 싫다고 했잖아."
"아... 응."
엄마의 빠른 결단력에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엄마도 아직 청춘인데
여행이라도 갔다 오지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조부모님 입장에서도 아직 젊고 예쁜 딸
충분히 재가해서 잘 살 수 있는데
지 팔자를 지가 꼰다고 나무랐다.
그런데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그 심정 알 것 같다.
아무리 천혜의 멋진 곳에 간들 내 새끼 눈에 안 보이면 다 무슨 소용이래
뭘 먹어도 뭘 입어도 눈물만 질질 나긋지
지나가는 애들만 쳐다보며 징징 울겠지
엄마의 첫 남자 친구는 홀로 미국으로 돌아갔다.
엄마의 속 마음까지는 모르겠으나 슬픔의 기미는 전혀 없었다.
엄마는 이별의 다음날부터 늘 그래왔던 것처럼 철없고 주책없게 돌아왔다.
부모로서 그것은 희생이 아니라 당연한 선택임을.
그리고 궁극적으로 부모 자신을 위한 선택임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