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살아지다사라지다 Jan 07. 2023

엄마의 두 번째 남자친구

엄마일 수밖에 없던 한 여자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딸이 많이 걱정되셨던 것 같다.

엄마를 재가시키려면 나이가 더 늦기 전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30대 초반이면 그 당시 기준으로 초혼의 나이는 아니었지만

외모는 아직 노화가 되기 전이라 충분히 가능한 나이었다.


물론 그 당시에 나는 초등학생이었기 때문에

모든 일은 나에게 비공개인 채로 진행되었다.

밑 작업은 비공개였겠지만 그래도 어떤 계기로든 드러나게 된다.




하루는 하교해서 집에 들어왔는데

명절도 아닌데 거실에 큰 상이 놓여있고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진귀한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그리고 상석에는 처음 보는 아저씨가 앉아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서 그 아저씨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아시아계의 외모로 저렇게 피부가 검은 사람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영문을 모르겠지만 가족들 모두 그 아저씨 앞에서 절절 매고 있었다.

할아버지만 유창한 일본어로 아저씨와 대화를 했다.

아 일본인이었구나.


엄마는 미국이 멀기 때문에 나를 자주 못 볼 것 같아서 포기했다고 한다.

그래서 조부모님은 가까운 일본으로 눈을 돌렸다.

게다가 추가적인 제안까지 했다.

결혼해서 한 삼 년 살다가 딸을 일본에 데려가서 살아도 되지 않겠니

일단 네가 먼저 일본에 가서 자리를 잡으면 네 딸도 엄마 따라갈 거다.

그리고 일본은 가까우니 일 년에 몇 번이고 와서 보면 되잖니.


나의 의사는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리하여 그 일본 아저씨는 엄마와 결혼을 앞두고 처가댁에 인사를 드리러 온 것이었다.

엄마는 나를 보고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

어차피 그 식탁에 앉을 기분도 아니었지만

막상 앉으라는 소리를 안 하니 내심 서운했다.




이번에는 엄마가 진짜로 갔다.

나는 학교 다니고 숙제하느라 바빠서 '아 그냥 엄마가 갔다 보다.' 하고 말았다.

어차피 갓난쟁이 시절부터 길러준 할머니가 내 옆에 계셨기에

엄마는 내 곁에 없었지만 나에겐 엄마 이상의 존재가 곁에 늘 있는 셈이었다.


엄마의 방은 늘 지저분해서 들어가지 않았는데

하루는 왠지 엄마가 그리워서 들어가 보았다.

서랍에 편지 한 장이 있었다.

일한사전을 보고 쓴 수준의 러브레터였다.

편지의 내용은 '결혼 주세요.'로 끝났다.


풋 이 아저씨 조금 귀엽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소포가 자주 오기 시작했다.

누런 박스 안에는

온갖 키티 연필, 지우개, 스티커, 머리끈, 입에 넣으면 살살 녹는 일본과자 같은 게 가득 들어있었다.

처음에는 아 한국에 아직 없는 거니까 신기해서 사서 보냈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두 달이 지나면 또 보내고, 넉 달이 지나면 또 보내고

아주 키티 컬렉션을 만들어도 될 수준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엄마가 큰 짐을 가지고 집으로 왔다.

엄마의 표정은 굉장히 밝았다.

잠깐 친정 가라고 휴가라도 받은 건가. 놀러 왔나 생각했다.


할머니는 엄마의 짐 꾸러미를 보며 또 혀를 찼다.


"어휴 저 년. 고새를 못 참어 못 참기를. 하여튼 뭘 진득하니 할 줄을 몰러. 망할 년."


엄마는 아예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도망 온 것이었다.




"야 이년아. 결혼하라고 보내 놨더니 고새 또 쳐 와. 오기를."


"아이씨. 그럼 어떻게 해. 애 생각만 계속 나는데. 하루종일 내가 할 게 뭐가 있어.

집 근처 문방구 가서 지우개 하나 사고, 다음날은 연필 하나 사고 그렇게 사가지고 오면

집에 와서 또 그거 붙들고 울고. 나 일본 가서 그 짓 밖에 안 했어. 그게 사는 거야?"


"어휴. 원수 같은 년."


엄마는 나에 대한 그리움을 학용품을 사 모으면서 달랬나 보다.

나고야에서 지내면서 친구도 사귀고, 공원 산책도 하고 그랬는데

온통 여자애들만 눈에 들어와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참다못해 아저씨에게 모든 사정을 다 털어놓았고

아저씨는 엄마의 심정을 이해해주고 헤어짐에 동의했다고 한다.

엄마는 일 년도 못 채우고 줄행랑을 쳤다.


엄마는 또다시 철없는 말투로 "나 잘 왔지?"를 강조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나 나나 웃는 사람은 없었다.



엄마에겐 기회가 분명 있었다.

일본에서의 결혼은 부차적인 문제고

할아버지의 친척이 운영하는 사업체에서 일을 배우기로 했었다.

사실 엄마가 그곳에서 자리를 잡는다면 나에게도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질지 모르는 일이다.


'엄마는 단지 새로운 시작이 귀찮았던 거야.'

내가 미혼일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난 그 딴 거 다 필요 없고! 내 새끼 보고 싶어서 왔어. 나 이제 결혼 안 해. 애만 키우고 살 거야.

이혼이 죄야? 이혼 한 딸이 창피해? 내가 죄인이라면 날 호적에서 파 버려. 나 혼자서도 얼마든지 내 딸 키울 수 있어."

라는 선언은 핑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나라도 별 수 없이 똑같이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짐 꾸러미에서 또 나에게 줄 선물을 잔뜩 꺼냈다.

빨간색 왕방울 머리끈은 참 탐스럽게 예뻤다.

그 머리끈을 달고 동네에 나가면 아주머니들이 말을 걸어왔다.


"아이고~ 방울이 이쁘네~ 누가 사줬댜? 어디서 샀댜?"

"이거 엄마가 일본에서 사 오셨어요."

"오~그래. 엄마가 일본에 여행 가셨나? 공부하시나?"

"아 네."

나는 미소로 화답하고 꾸벅 인사를 했다.


'네. 우리 엄마는 공부하고 오셨어요. 엄마 되는 공부요.'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의 첫 남자친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