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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지다사라지다 Feb 01. 2023

아직 이혼을 못 했습니다만

투 플러스 원 과자의 의미

별 다를 것 없는 부부싸움을 한 어느 날

우리는 둘 다 말 수가 적어서 대화로 화해하지 못한다.

보통 남편은 씩씩거리며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우고

내가 좋아하는 과자를 사서 식탁에 올려두고 방에 들어간다.


그날은 홈런볼을 세 개 사 왔다.

한 개만 사 오면 없어 보이니까 보통 두 개를 사지만

그때는 큰맘 먹고 세 개를 나란히 식탁에 놓고 들어갔다.


안타깝게도 나는 집 앞 편의점에서 홈런볼 2+1 행사를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친구에게 그 얘기를 했다.


"야. 나 참. 그렇게 성질을 내고 나가더니 홈런볼 2+1을 사 왔다. 고기도 아니고 빵도 아니고 홈런볼이 뭐냐."


"그래? 그것은 마치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아. 너와 아기 두 명에 자신을 플러스 원으로 묶겠다는 의지 같은 거 아닐까?"


"뭐? 야. 푸하하하. 너 웃기다 얘. 그 생각은 못했네."




싸움이 격해지다 보면 이성을 잃고 날이 선 비수를 날린다.

일부러 상처주기 위한 날카로운 말들

둘 중 누구도 평화에 이를 수 없는 말들


"이렇게 어떻게 사냐? 이혼해 이혼. 애는 내가 키울 거야."

"애는 두고 가. 너만 없으면 돼. 너만 안 보이면 아무 문제없다고."

"뭐? 애를 둬? 어디서 그런 말을. 내가 낳은 내 아이야. 억울하면 네가 낳아!"


이런 유치하기 짝이 없는

기어코 승자는 없는 다툼


"이혼해. 그래 해. 야 소송 걸어 소송."

"뭐? 너 돈 많아? 변호사 두 명 쓰면 천만 원 그냥 깨져. 그 돈을 애한테 쓰는 게 낫지. 그냥 깔끔하게 협의로 해."

"아 됐고. 난 소송 아니면 안 해. 변호사 사서 소송 해."


이런 답 없는 한심한 떼쓰기




승자는 없지만 피해자는 있다.

아이는 부모가 싸우면 극도의 공포를 느낀다.

엄마 아빠 사이에 서서 서로의 화난 얼굴을 번갈아 보며 왕왕 운다.

아이가 숨 넘어가게 울면 나는 아이를 들쳐 업고 안방에 들어간다.

아이는 한참을 끅끅 대며 진정하지 못한다.


이제는 아빠가 퇴근하고 오면 아이가 아빠방 문을 닫고

나를 안방으로 데려간다.

서로를 격리시키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나 보다.

아이 앞에서 싸우는 건 안 해야 되는 짓인데

참고 참다가 마그마가 터지는 날은 화산재가 온 집안을 뒤덮는다.

바닥에 밟히는 버석버석한 분노, 수치심, 억울함, 자책

매캐한 공기는 서로의 가슴에 독한 먼지를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이 쉽지 않은 이유는

다음 날 아침, 점심은 굶어도 4시쯤 되면 허기가 지기 때문이다.

마음의 문을 닫아도 위장의 문은 닫히지 않는다.

생물은 먹어야 산다. 입맛이 없다 하더라도 하루 종일 굶을 순 없다.

남편도 화가 났으니 부산스럽게 요리할 기분은 아니고

배달음식을 시킨 모양이다.


나는 방문 틈으로 살짝 본다. 1인분일까 2인분일까

1인분을 시켰다면 진짜 내일 법원 간다고 속으로 이를 갈았다.

그런데 같은 돈가쓰가 두 개 있었다.

남편은 최대한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밥 먹어."라고 말했다.

나는 못 이기는 척 미적미적 걸어와 털썩 앉는다.

속 마음은 랩을 신속하게 뜯어서 최대한 빨리 뱃속에 넣고 싶다.

손은 부끄럽고 마음만 앞서니 랩은 끄트머리만 찢겼다.

그는 한숨을 푹 쉬더니 마저 뜯어준다.


말없이 돈가쓰를 먹는데 목이 멘다.

배고파서 너무 맛있긴 한데, 내가 왜 이 시간까지 굶어야 했는지가 몹시 서럽다.

왜 이렇게 싸우게 됐는지, 내 마음을 몰라주는 상대도 원망스럽다.

그 와중에 자존심도 없이 먹으라고 했다고 쫄래쫄래 와서 처먹는 내가 창피하다.

입은 먹고 있으나 눈물과 콧물이 흉하게 흐른다.

그는 한심한 눈빛으로 옆에 있던 수건을 나에게 준다.

나는 드릉드릉한 코를 시원하게 팽 풀어버린다.

그리고 마지막 한 점까지 깨끗하게 먹었다.


우리는 서로의 접시를 겹쳐 문 밖에 내놓았다.

음식물로 더럽혀졌지만 서로의 흔적이 남은 접시가 포개졌고

남편은 돈가쓰 가루와 소스가 묻은 식탁을 행주로 닦았다.




싸워야 했던 만큼 먹어야 했고 먹었으니 치워야 했다.

한 집에 살고 있으니 피할 수 없는 동선이었다.


결혼을 했던 만큼 때론 상처를 받아도 기억에서 닦아 내야만 했다.

한 아이를 키우며 둘이 감당해야 하는 아이의 내일을 위해

그리고 한 때는 사랑했다 일컫는 서로의 진실을 위해


그렇게 한 끼 식사를 거듭하며 우리는 아직 이혼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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