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산 유모차가 튼튼한 이유
광고가 아닌 현실 고증
아기가 더 어릴 때 유모차를 사야 했다.
시중에 브랜드는 참 많은데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몰랐다.
인근 공원을 산책할 때 유독 의기양양한 자태의 유모차를 본 기억이 났다.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유명한 세단의 느낌이랄까.
당연히 새 제품은 비싸니 중고 거래를 했다.
'새것 같은 중고'를 구입한 덕에 참 유용하게 잘 썼다.
그 브랜드를 접하기 전에 가성비만 고려했던 유모차들도 사용했었는데
돌부리에 스치면 차체가 마구 흔들린다던가 넘어진다던가
사용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바퀴 하나가 작별을 고할 위기에 처했었다.
새것 같은 중고인 유럽 유모차는 튼튼한 바디와 안정적인 승차감으로
아기에겐 꿀 같은 낮잠을, 나에게는 꿀에 비할 수 없는 휴식을 선물했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식재료를 사러 유모차에 아기를 앉히고 장을 보러 나섰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와 아기는 새로운 난관에 봉착해야 했다.
'이 길에서 유모차를 과연 끌 수 있을까?'
이게 뭐여. 이게 길이여 돌 더미여.
한국에 살면서 흔하게 보던 광경은 보도블록 교체 공사였다.
오래되고 낡은 것을 앉아서 두고 보지 않는 한국은
도보에 벽돌 몇 개가 빠져있으면 두 달 내로 길 전체를 들어내고 새 벽돌로 길을 메웠다.
사실 유모차를 사용하기 전에는 길이 울퉁불퉁한지 매끄러운지 관심이 없었다.
홀몸일 때는 두 발로 걸을 수만 있으면 사는 데 큰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유모차와 함께 하는 삶을 살다 보니
이 길은 유모차를 밀기에 편한지, 저 커피숍은 유모차와 함께 입구를 부드럽게 통과할 수 있는지가
이동 동선을 정하는 데에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하지만 내 눈앞에 펼쳐진 유럽 거주지역 동네의 도보란
마치 내 인생처럼 굽이굽이 부러지고 터지고 깨져있었다.
군데군데 지뢰 같이 놓인 개 똥은 덤.
심지어 구시가지도 아니고 관광지 유적지도 아니고 그들끼리 메인타운이라 부르는 도시의 한복판이었다.
유모차를 손으로 잡고 잠시 고민했다. 내가 이 챌린지를 통과할 수 있을까.
아이는 뒤를 돌아 내 얼굴을 살피며 '어이. 출발하지 않고 무엇하는가?'의 눈빛을 보내고 있다.
나는 이 길을 지나야만 한다.
솔직히 속에서는 한국어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아니 이 나라는, 이 지역은 세금을 어디에 쓰는 거야. 도로 정비에 관한 예산은 아예 없는 거야?
세상에. 저 벽돌 깨진 것 좀 봐. 얼마나 오래 놔뒀으면 깨진 틈새로 풀이 저렇게 길게 자라 있어.
여긴 지자체도 없고 공무원도 없어? 아니면 있는데 일을 안 하는 거야?
나 원 참. 이건 오래된 역사 유적을 보존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잖아. 거주민들이 매일 오가는 길인데.
옷은 저렇게 차려입고 멋진 구두를 신고 이런 후진 길을 걷다니.
지극히 한국인의 사고에 입각한 불만이었지만 말이다.
정작 SNS에는 저런 너저분한 도보도 '유럽 감성'이란 제목으로 누군가 찍어 올렸겠지.
막상 그들은 전혀 불편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
한국의 공원을 산책할 때 견주들은 항상 비닐을 가지고 다녔다.
강아지가 변을 보면 변이 식기도 전에 봉지에 담아 치웠다.
나는 그 문화가 외국에서 수입된 줄 알았다.
정작 내가 서있는 유럽 땅에는 일주일 전 본 개 똥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어머. 똥이 참 굵고 실하네요. 칭찬받고 싶으셨나 봐요.
아무튼 유럽의 유모차가 제품력이 좋은 이유는
환경에 맞게 제작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백 년 전에 깨진 보도블록도 유연하게 넘어갈 수 있는 서스펜션
개 똥이 눈앞에 등장했을 때 신속하게 방향 전환을 할 수 있는 부드러운 핸들링
중구난방으로 길가에 주차된 차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갈 수 있는 콤팩트함
자연 그대로의 돌 더미를 지날 때 부가적으로 누릴 수 있는 진동안마모드까지
강한 유모차만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 일류 유모차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햇살은 좋으니까 아기는 낮잠에 들었다.
길 모퉁이의 예쁜 카페에 가서 차라도 한 잔 하고 싶지만
그곳에 당도하기 위하여 나는 유모차를 미는 것이 아니라 최소 열 번은 손으로 들어야 해서
상체 벌크업을 포기하고
그냥 마른침이나 삼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