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연습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별은 여전히 아프다.

by 초록별쌤

☃ 다섯 번째 이별

-갑자기 다섯 번째라 그래서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딸 결혼하고 시작된 이별의 숫자를 말합니다-

이불속에 아이의 온기가 여전히 남아 있는데...

화장대 앞에 딸의 모습이 보이는 듯한데...

이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만질 수도 없네요~

어젯밤 갑자기 허리가 아파서 공항에도 못 가고 이렇게 집에서 멍한 모습으로 시간을 돌아봅니다.

우리의 시간을 이렇게 마무리하게 하신 그분의 뜻을 헤아려보려고 많은 애를 쓰고 있지만..

그래도 아주 많이 서운해요~~

공항에서 헤어지는 고통을 더 아프게 느낀다 해도 잠시라도 더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으려고 날을 새며 옆에 있었지만 마음이 아픈 건 똑같아요~~

내 눈물의 항아리는 얼마나 더 울어야 채워질는지..

이별은 아무리 해도 연습이 되지 않아요.

연습한 만큼 잘해야 하는 건데 아무리 연습을 해도 나아지지 않고 여전히 아파요~

이별의 아픔은 너무나 크지만

내 공간에 내려놓고 간 딸의 마음이 그보다 더 커서 견디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면 또 금세 만날 수 있겠지...


딸~~!

미국 너의 집까지 편안한 비행이 되길 기도할게~


이별은 아프지만 그만큼 사랑이 있다는 얘기니까 감사해야겠죠..

이별이 이만큼 아프게 느껴질 정도로 딸을 사랑한다는 얘기니까..

아프지만 마음 한편에는 따뜻함이 있네요..

그 따뜻함으로 견디며 살아야죠..

이별은 연습이 되지 않기에 아픔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 거고~~

이별의 아픔 옆에 자리한 사랑을 느껴야죠..


일곱 번째 이별(2년 뒤)

허전함과 만나는 두려움

밤을 새워가며 딸이 짐 싸는 것을 도왔다.

한국에서 두 달 머무는 동안 아기를 양육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거의 갖춰 놓았기 때문에 집 전체에

가득했던 물건들을 정리하고 싸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결국 한숨도 자지 못하고 공항으로 나가기 위해 준비를 했다.

새벽길이어서 그런지 인천까지 가는데 50분밖에 걸리지 않아서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공항에 들어서는 순간 수많은 여행객들을 바라보며 마치 내가 여행을 떠나는 것 같은 느낌으로 딸이 수속 밟는 것을 지켜보았다. 드디어 출국장에 서있는 아이들.. 아기는 그저 가족들과 함께 있음이 편안한지 우리들을 바라보며 귀여운 얼굴로 환하게 웃는다.

그 천진난만한 웃음이 갑자기 부러웠다.

아무 생각도 없이 짧은 순간만이라도 편하게 웃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들었다.

꼭 끌어안고 “잘 가라~금세 또 만나자..” 그 짧은 말 한마디를 하는 게 참 힘이 들었다.

몸이 조금 떨렸고 가슴속 밑바닥에서 뜨거운 뭔가가 올라오고 있음이 느껴졌기에..

아이들은 뒷모습을 남긴 채 멀리 가버리고 그와 손을 잡고 걸어서 공항을 빠져나왔다.


차에 타자마자 잠이 들었다.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눈이 떠지지 않아 눈을 감은 채로 집에 들어와 기절하듯이 쓰러져 잠이 들었다. 편했다. 걱정했던 만큼 슬픔이 느껴지지 않아서..

얼마나 잤을까? B기관 센터장의 전화소리에 놀라서 잠을 깼다. 힐링 메시지에 대한 강의를 요청했다.

흔쾌히 수락하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나를 위해 예비하신 그분의 놀라운 사랑이기에..

심리상담에 대한 나눔과 소통을 너무나 좋아하는 나의 마음을 아시는 그분이시기에 내게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는 깜짝 선물을 준비하신 것 같았다. 전화를 끊었을 때 이미 잠은 멀리 달아나버렸다.

집이 너무나 조용해서 이상했다. 금세 아기의 소리가 들릴 것 같은데..

방밖으로 나가는 게 두려웠다. 정말 아무도 없음이 확인될까 봐..

허전함과 만나는 게 이렇게 두려울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어쩌면 허전함이란 단어 속에 여러 감정이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때때로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에구~~ 손주 보고 싶어서 어떻게 해? 아른아른하죠?’
당연히 손주가 보고 싶다.

하지만... 난 딸이 더 보고 싶다. 딸과 손주가 함께 있다면 당연히 훨씬 좋은 거구..

근데 왜 사람들은 손주 보고 싶다는 말만 할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모르긴 몰라도 그들도 손주도 좋지만 자녀가 더 보고 싶을 것 같다.

그런데 굳이 손주 얘기를 더 하는 이유는 자녀들에게 ‘보고 싶다’라는 표현을 하는 게 자연스럽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손주가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기에 표현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고

자녀에 대한 감정은 표현하는 게 조금 어색하니까 손주를 앞장 세워서 보고 싶은 욕구를 주장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여하튼... 난 정말 사랑스럽고 귀여운 울 아기도 보고 싶고.. 딸도 많~이 보고 싶고...

딸 덕택에 만나게 된 새 아들! 마음 따뜻한 울 사위도 그립다.

건강하게 잘 지내다가 우리 금세 또 만나자!


이후로도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했답니다.

딸이 결혼하자마자 미국으로 간지 12년째입니다.(처음에 떠날 때는 3년만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오겠다고 했음 ㅠ)

이별은 여전히 슬프지만 슬픔에서 회복하는 시간은 짧아졌습니다.

딸 가정이 미국에서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곳에다 딸의 자리를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했으니까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손녀를 보며

미국의 정서와 한국의 정서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래의 삶을 위해 자신이 만들었던 모든 것들을 한국에 내려놓고 딸이 선택한 미국의 삶이

부모 입장으로 보기엔 너무 아깝지만 딸의 선택을 존중해야겠지요~

글을 쓰며 딸에 대한 그리움으로 마음이 아파오지만 난 엄마니까 참을 수 있어야 합니다~

참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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