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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하는 어머니

by 헤아리다

만으로 스물한 살에 정신과 이력 오 년 차, 손목엔 마음의 병이 외적으로도 표현되어 있고, 항상 깊은 물속에 침잠하여 존재를 지우고 싶다는 생각은 몇 번인지 헤아릴 수 없다. 다만 나 자신을 서사에 몰아넣어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들려는 건 아니다. 나 또한 다른 이들과 같이 땅에 손을 짚어 일어서려 하고, 어떻게든 달려보려 한다. 또한 그렇게 하는 이들을 실제로 존경한다. 당신 같은 사람들 말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싫어한다. 역시 당신 같은 사람들 말이다. 인스타그램은 사람의 행복한 단면을 보여주고 박탈감을 유발한다.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는 이들의 글들은 나의 무력감을 들춰낸다. 인스타든 브런치든 픽션이든, 나를 아프게 하는 건 마찬가지다.

드라마, 책 등의 창작물은 인간의 감정을 극한으로 보여준다. 게임이나 짧은 영상물은 견제한다. 당신의 글은 당신의 아픔이 내게로 다가온다.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마치 아무것도 손에 대지 못하고 생각만 했던 데카르트의 꼴이다. 그렇다고 내가 데카르트 정도의 깊은 사유를 하는 것도 아니지. 이렇게 극도로 예민한 성격을 가졌음에도 만성적인 우울증이라는 명목 하에 원인을 찾지 못하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왜일까, 내가 살아온 환경을 생각하면 냉랭한 집구석이 생각난다.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는 도산한 회사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무급으로 몇 달 일하셨고, 어머니는 매일마다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결국 이혼 절차를 밟고, 나의 양육권은 어머니가 가져갔다. 그로부터 이삼 년 후, 어머니는 지금의 새아버지와 재혼했다. 그 새아버지 또한 자녀가 있었고, 그 딸들은 전 아내에게 넘기고 나의 어머니와 재혼한 모양이다. 역시 이 사람과 함께하면서 집안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생부와의 생활이 냉랭했다면, 계부와의 생활은 분노로 가득 차 뜨거웠다. 집에 돌아오면 벽지에 피가 묻어있기도 하거나, 어머니가 계부에게 맞았다고 신고해서 부부싸움 중에 경찰이 오기도 했다. 경찰의 동정 어린 눈은 잊히지 않는다. 이 눈에 대한 나의 감정은 거부감인지, 감사함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한 번 이혼한 사람들이 만나 하루 종일 싸워대는 건 누구의 잘못일까? 그 이혼에서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던 걸까? ‘나의 인생은 망했어’라며 어머니는 하나님이라는 신에게 빌어대고, 계부는 펑펑 돈을 써댄다. 지금은 못 버틴 어머니가 이혼소송을 걸었고, 나는 집에서 쫓겨나 알바하며 원룸 생활로 버텨간다.



나는 그때 무슨 생각을 했더라. 어쩌면 해리된 기억이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어머니와 생부와의 싸움이 극에 달했을 때는 울며불며 매달렸다. 아버지에게 어머니 좀 말려보라고, 어머니껜 그만 좀 하라고. 초등학교 5학년 즈음이었다. 그리고 중학생~고등학생 때는 나까지 분노에 휩싸였다. 싸우고 있을 땐 싸우고 있는 부모의 방을 부수려고 했고, 그들은 무시했고, 나는 당시 모태신앙 기독교였기에 성스러운 신자의 탈을 쓴 가증스런 어머니에게 분노가 일어 성경을 던져 창문을 깨부쉈더랬지. 그리고 싸움이 지속되니 부모를 죽여버리겠다고 소리 질렀다. 단순 위협이 아닌, 실제로 부모를 죽이고 싶은 충동이 극한까지 일었다. 헤드셋이 그들의 소리를 막아줘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세상에 없을 뻔했다. 그래서 생부가 나를 상담센터에 데려갔고, 만성 우울 진단을 받고 약을 먹기 시작했었다. 물론 지금이야 공황장애 필요시약, 불안장애, 우울장애, 수면장애, 알코올 금단증상을 막는 약까지 섭취량이 늘기만 하지만, 이 약이 없으면 버티지 못할 걸 알기에 꾸준히 섭취한다. 이런 말을 하기엔 부끄럽지만, 부모가 집에 있는 휴일엔 절대 거실로 나가지 않고 밥도 굶고, 생리 현상도 페트병으로 해결했다. 어머니가 너무 두렵고, 증오스럽다. 세상에 나를 생각 없이 싸질러 놓고, ‘내가 엄마인 게 처음이라 그래’ 하며 가식적인 사과의 태도를 내비치는 것, 가증스럽다. 그래, 어머니가 처음이고, 23년 동안 어머니가 뭔지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지.



언젠가 밀란 쿤데라의 책을 읽으며 눈에 꽂힌 문장이 있다.


‘모성애가 희생 그 자체라면, 태어난 것은 그 무엇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죄인 셈이다.’


나에게 어머니라는 존재인 그녀가 모성애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실제로 나의 탄생으로 인해 그녀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기에, 늦게나마 죽음으로 속죄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녀는 장례식장에서 가식적인 눈물을 흘리겠지. 가짜 오열을 하겠지. 그건 상상만 해도 역겨워서 그만두기로 했다.


그리고 뭐.. 차라리 고아원에 보내졌으면 나았겠다 싶다. 내가 그들에게 두들겨 맞은 것도 아니고, 가정폭력을 당한 것도 아니지만 너무 증오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이혼 소송 때문에 내 정신과 진료 내역이나 뽑아오랜다. 세상에 태어난 것도 귀찮아 죽겠는데 이런 것까지 귀찮게 매달린다. 인생 영면으로 편해지고 싶지 않으면 적당히 했으면 좋겠다. 본디 인간이 가장 사랑받기 좋은 모습은 죽은 모습이기에 그들도 만족할 거다. 그리고 내가 이 글을 왜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경조증이 한번 일고 지나가니, 미친 듯이 우울해진다. 아마 이 글은 곧 내가 삭제할 수도 있겠지. 그리고 이 글엔 아무 의미도 없다. 인생처럼. 다만 좆같은 인간들 사이에서 좆같아도 사는 게 인생이니 별 수 있나. 급하게 대충 마무리하겠다. 인간은 자신의 과실을 먹고 자란다. 어머니의 과실은 나를 낳은 것, 나의 과실은 세상에 태어난 것. 다 더럽게 역겨운 과실, 과업이다. 당신들도 부디 좆같은 세상에서 힘차게 살아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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