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 태양 빛으로 꽉 채워지는 시간, 해질 무렵.

으스러질 듯한 석양을 쫓으며, 우리는 무엇을 바라본 것일까

by SY

언제나 시작은 설렌다.

이른 아침 찬 공기에 두 뺨을 부비며 학교를 향해 달려가던 8살 꼬꼬마 시절부터...


'시작'이란,

때론 무모하고,

때론 간지럽고,

때론 두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할 만큼 '용감'해지는,

끝없이 설레는 기분이다.


나는 이곳에 어떤 글을 쓰게 될 지,

어떤 글들이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 나가게 될 지,

그리고 나라는 사람은 어떤 글을 쓰고자 노력하게 될 지.

상상만으로도 벌써부터 설렌다.


그래서 시작은, 석양으로.

응?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른다.

보통... 시작이라는 건, 새해 첫 일출과 같은, 그런 것 아닌가.

그래서 성산일출봉, 정동진, 하다 못해 동네 앞 산에라도 올라 일출을 기다리는 것 아닌가.



2015년 8월 1일.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나'라는 사람으로 남겨졌다.

무소속 '나'가 된 셈이다.


결혼이라도 하고 그만두지.
옮길 자리는 마련해두고 떠나지.
그만둘 거였으면 좀더 신중하게 입사했어야지.


하나 하나 옳은 말이다.

바늘같이 콕콕 찌르지만 악의는 없다.

안타까움과 걱정에서 건네는 말이기에 더욱 그렇다.


인구론, 비정규직, 취업난... 수많은 키워드들이 청년들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2015년의 대한민국.

만 3년 1개월 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보니,

마냥 기쁘지도,

마냥 슬프지도 않은,

무덤덤함이 남았다.


"나는 할 수 있다."로 무장한 자기소개서가 떠올랐다.

면접 때마다, 그 곳이 어디든,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신감과 패기로 똘똘 뭉친 사람인 척 가면을 썼다.

어쩌면 그때는 그 나름대로 절박했을테다.

언론은 연일 취업이 어렵다고 떠들었다.

뉴스를 보시던 부모님 마음은 또 얼마나 조마조마했을까.

그리고 하루 하루, 나는 나이를 먹고 있었다.


일단은 취업이 중요했고,

당시엔 진짜 나와 가면을 쓴 나를 분간도 못할 만큼 도취되어 있었다.


내가 무엇을 잘 하는 사람인지,

무엇을 재미있어하는 사람인지 잠시 놓쳤다.

그걸 깨닫는 데 무려 3년이 걸린 셈이다.

내내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깨달았다고 해서, 모두가 '퇴사' 카드를 선택하는 것도 아니다.


휴가마다 쫓기듯이 여행을 떠났고,

마치 '여행'만이 나를 되찾는 방법이라 생각했었다.

많은 직장인들이 그러하듯,

비행기표를 예의주시하고,

볼거리 먹을거리 빠짐없이 체크하며 여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지금은,

하루하루가 내게 주는 휴가이다보니,

골목길 산책만으로도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하루를 완전히 나를 위해 쓰면서,

숨 고르는 법을 익힌다.


석양을 이야기하다보니,

'퇴사'까지 나와버렸다.

조심스러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일단, 취업은 해봐야 한다.

물론 적성에 맞는, 시간이 지날수록 의욕이 생기는 일이라면 더 바랄게 없지만,

부딪혀보지 않고는 알기 힘든 법이니깐.

모든 대한의 청년들, 화이팅!




다시 석양으로.

엄마는 늘, "지는 해"라고 표현하셨다.

해질 무렵은, 그래서 우울하다고.

해가 지듯이 우리네 인생도 저무는 것 같아 서글프다셨다.

그런가?...



제주 이호태우 해변을 걷다,

한참 동안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청년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눌러버린,

그런 광경이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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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해질 무렵은,
밤이 오기 전
마지막으로 꽉 찬 태양의 여운인 것 같아
그 어느 때보다 따스한 시간이다.

아마, 그때였던 것 같다.

그의 시선 끝에는,

마을 뒤로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태양과 함께,

꽉 찬 포근함이 있었다.

따스한 태양 빛이 온 세상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오는.

DSC09262.JPG

이상하게 용기가 났다.

아, 그동안 수고 많았어!

모두들 고생했어,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그래서 내게 석양은,

새로운 시작이다.

조금 외로울 때도 있고,

갈팡질팡 실수 투성이인 삶 속에서,

말없이 따스한 위로를 건네는 시간, 해질 무렵.

괜찮아, 괜찮아.

따스한 빛으로 속삭이는, 해질 무렵.

그 시간이 있기에

긴 밤, 이런저런 준비를 하며

다시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일테니.


곧,

해질 무렵이다.

오늘 하루는 다들 괜찮으셨나요?

다들, 수고 많았어요!

또 이렇게,

새로운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