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선형적인 시제에 갇혀 있을까?
컨택트는 지인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였다.
타원형의 외계 물체, 먹물 쏘듯이 표현하는 뿌우연 언어 외에는 기억에 남지 않는다는 축이 있는가 하면, 인생영화라는 축도 있었다.
누군가의 인생영화가 될 만한 영화는 과연 어떤 내용일까 하는 호기심에 찾아보게 되었는데,
이런! 영화관에서 보지 못한게 너무나 아쉬운 그런 영화다.
뒤늦게 찾아보니, "문과형 인터스텔라다!" 라는 평이 있던데, 오히려 영화의 편집 측면에서는 놀란 감독의 메멘토가 떠올랐다.
***여기서부터 영화 줄거리에 대한 스포 듬뿍!!!
컨택트는 미확인 외계 비행물체 12개가 지구 곳곳에 착륙하면서 전 세계가 혼란에 빠지는 것에서 시작한다. 외계 생명체가 지구에 온 이유를 알기 위해 언어학자인 루이스 박사와 과학자인 이안 박사를 데려와 연구를 진행하는데,,,
특히 외계인과의 소통을 위해 지구의 언어(극 중 영어)를 하나씩 가르치면서 외계어를 파악해나가는 부분에서 왜 이 영화의 제목이 '컨택트'인지 알 수 있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는데, 같은 언어를 시용하는 사람들끼리도 단어 하나의 선택이 얼마나 큰 오해를 낳고 서로 간의 이해를 어렵게 하는지 알 수 있는 표현이다. 그럼에도 영화 속 루이스 박사는 외계인들에게 이름을 붙이고, 조금 더디지만 한걸음씩 소통을 해나가며 전세계의 평화 및 비선형적인 외계어의 이해라는 진일보한 성과를 얻게 된다.
영화는 이 과정에서 루이스 박사의 회상( 처음에는 회상인 줄 알았으나 사실은 미래의 일을 교차해서 보여주는 것)과 나레이션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선형적인 시제가 과연 절대적인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처음과 끝은 나에게 더이상 무의미하다.
영화 초반 루이스 박사가 한 아이의 성장과 불치의 병으로 인한 죽음이 혼란스럽게 떠오르는 장면 속에서 읊는 대사이다. 이때만 해도 아이를 잃은 모성의 상실감으로 인해 비선형적인 시제의 외계어를 통해 잃어버린 아이의 흔적을 찾아가는 영화인줄로만 내내 착각을 했다.
당신 인생을 전부, 처음부터 끝까지 알 수 있다면, 그걸 바꾸겠어요?
공동 연구를 통해 이성적 관심을 가지게 된 루이스와 이안. 외계인들의 의도를 파악한 후 루이스는 이안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 즈음 해서 의문이 하나 둘 풀리고 조각이 맞춰지기 시작하는데,
루이스의 기억 속에 떠오르는 의문의 남편이 과학자라는 점, 루이스가 외계어에 대한 책을 출간하게 된다는 점, 그리고 아이가 불치병으로 죽게 된다는 것을 너무 성급하게 남편에게 이야기해버리고 이러한 루이스의 능력 때문에 남편이 떠나가게 된다는 점.
아! 과학자인 남편이 바로 이안이었구나!!! 아니 이안이 남편이 될 것이구나!!!
결과를 알고 있음에도, 어떻게 흘러갈지 알면서도, 난 모든 걸 껴안을거야.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반길거야.
루이스는 앞으로 전개될 미래를 알면서도 이안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한나(루이스와 이안의 딸)를 언젠가는 잃게 될 지극한 슬픔을 알고 있음에도, 이안이 아이를 하나 가지자고 제안하는 것을 받아들인다.
묘한 순간이었다.
우리는 주로 현재의 삶에 영향을 주는 과거의 순간들을 떠올리면, 바꾸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래서인지 시간을 되돌리면 이러이러할거다 라는 부질없는 이야기들을 나눈다.
비선형적인 시제를 기반으로 한 인지구조 속에서는 그러한 인과관계 자체가 어쩌면 무의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가 현재의 나에게 실마리를 제공해 주기도 하고, 때로는 미래를 알면서도 똑같은 선택을 계속하게 만들기도 하는, 어찌보면 극 초반 루이스의 나레이션인 처음과 끝이 무의미하다는 것 자체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선형적인 시제를 절대적인 것으로 믿고 그에 갇혀서 과거를 수정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일반적인 사고방식에 물음표를 띄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문득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해졌다. 꿈 속에서라도 미래의 나와 조우하고 내가 어떤 모습인지를 알 수 있다면... 아마 이런 희망 자체가 선형적인 시제에 갇혀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미지의 미래에 대한 영원한 궁금증과 갈망이 아닐까?!
간만에 작은 흥분이 일었던, 신선한 영화였다.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