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1 - 자기 앞의 생(生) : 에밀 아자르

14살 모모의 슬픈 사랑 이야기

by SY



대학 시절의 방학 이후 참으로 오래간만에 방학을 맞이한 나는, 일주일에 두 권 정도씩 책을 읽어나갈 수 있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내 생애 진정한 방학을 '자기 앞의 생'과 함께 뜻깊게 시작했다. 뭐랄까, 에밀 아자르-본명은 로맹 가리 라는 작가를 처음 마주쳤다는 것이, 아니 이제라도 마주치게 되었음에 영광이라는 생각과 함께.


*간단 요약
소설은 14살의 모하메드(일명, 모모)가 마주하는 곡진한 생의 순간들을 묘사하고 있다. 어느 창녀의 아들로 태어난 아랍계의 모모는 창녀의 아이들을 숨어 기르는 유태인 로자 아주머니의 손에서 자라난다. 그리고 어느날부턴가 로자 아주머니는 뇌혈증을 앓으면서 점점 죽어가게 되는데,,, 모모는 자신을 돌봐주던 로자 아주머니를 이제는 자신이 보듬고 지켜야하는 존재로 받아들이면서, 사랑하는 존재가 죽음에 이르는 것이 '생'이란 것에 의해 좌우된다고 깨닫는 과정을 그린, 슬픈 사랑이야기이다.

*인상깊은 부분

거꾸로 된 세상,
이건 정말 나의 빌어먹을 인생 중에서 내가 본 가장 멋진 일이었다.
나는 튼튼한 다리로 서 있는 생기 있는 로자 아줌마를 떠올렸다.
나는 좀더 시간을 거슬러올라 아줌마를 아름다운 처녀로 만들었다.
그러자 눈물이 났다.

어느날 모모는 나딘의 녹음실을 따라가게 되는데, 그 곳에서 등장인물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녹음되지 않았을 때 테잎이 거꾸로 돌아가는 장면을 바라보게 된다. 이제는 너무 살이 찌고, 머리카락도 몇 올 안남은 로자 아주머니이지만 시간을 거꾸로 돌려 젊은 시절의 로자 아주머니를 떠올리는 모모의 모습에서 어린 아이의 관점에서 떠올릴 수 있는 '사랑'의 감정이 구체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추억해야 하는 것만큼 슬픈 일이 또 있을런지. 사랑하는 사람의 죽어가는 모습 대신, 찬란하게 아름답던 시절을 떠올리는 모모의 깊은 사랑이 느껴지는 대목.


"하밀 할아버지, 하밀 할아버지!"
내가 이렇게 할아버지를 부른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와 함께 한동안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고, 그것은 프랑스의 것이 아니었다.
하밀 할아버지가 종종 말하길,
시간은 낙타 대상들과 함께 사막에서부터 느리게 오는 것이며,
영원을 운반하고 있기 때문에 바쁠 일이 없다고 했다.
매일 조금씩 시간을 도둑질당하고 있는 노파의 얼굴에서 시간을 발견하는 것보다는
이런 이야기 속에서 시간을 말하는 것이 훨씬 아름다웠다.
시간에 관해 내 생각을 굳이 말하지면 이렇다.
시간을 찾으려면 시간을 도둑맞은 쪽이 아니라
시간을 도둑질한 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모모는 잘 모르는 것이 있을 때마다 이웃인 하밀 할아버지를 찾아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노인이 된 하밀 할아버지를 위해 그의 이름을 꼼꼼하게 불러주는 모모의 모습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갓난아기의 이름을 힘껏 불러주는 부모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밀 할아버지가 모하메드가 아닌 빅토르라고 깜빡 잘못 부르는 순간에도 빅토르가 아닌 모하메드임을 상기시키며 서로의 이름을 각인하는데,

'관계'라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첫걸음이 바로 '이름'이 아닐까.
더불어, 시간이라는 것이 아무리 천천히 지나가는 것이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에서 시간의 흔적을 찾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를 깨닫는 모모가 참 매력적이었다.(작가의 표현과 통찰이란!)
그래서였을까.

엄마의 눈가 주름에서 시간의 흔적을 찾기 보다는, 엄마의 눈 주름이 깊어진만큼 성장해버린 내 모습에서- 엄마의 시간을 도둑질한 나의 모습과, 엄마와 나 사이에 흘러간 시간을 찾게되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어느샌가.


14살 모모가 느끼는 '생'을 함께 바라보면서,
"생의 한가운데 내가 서있구나!" 느낀 순간들이 언제인지 더듬어 보았다.
지구상에 존재할 것 같지 않던 아름다운 장면들을 목도하게 되었을 때, 살아있음을 지극히 느끼게 되어 '생'의 의미를 돌이켜보게 되는가 하면,

너무나 괴로워서 마치 한바탕 꿈인 것만 같은 순간이 왔을 때, 잠을 자고 일어나면 달라지겠거니 기대하는 나 자신을 거울 속에 비춰보면서 이 또한 '생'의 한 가운데 내가 내던져진 것이로구나 싶은 순간도 있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살면서 어떤 순간에

"내가 생의 한 가운데 서 있구나. 이게 인생이구나!" 느끼셨나요?

끝으로,
내 앞에 놓인 생의 무게, 그리고 이 생을 영위하게 하는 사랑과 책임에 대해서 한번 쯤 생각해보게 되는 뜻깊은 그런 시간이었다. 강추~.




덧. 자기 앞의 생의 작가 에밀 아자르는 로맹 가리라는 작가의 필명이다. 사실 로맹 가리는 본인의 이름으로 활동하던 작가였지만 세간에 떠도는 누구누구의 소설이라는 틀에 박힌 평을 떼어내고자 아무도 모르는 필명을 지어놓고선(그것이 바로 에밀 아자르) 그 필명으로 제2의 전성기와 같은 찬사를 받게 된다.

'이름'에 갇힌 평가란 얼마나 무서운 것일지. 작가의 재치에 다시한번 박수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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