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대한민국!
정치인 유시민보다는 작가 유시민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기에 고른 책.
총 7가지 질문에 대해 답하고 있다.
국가란 무엇인가 / 누가 다스려야 하는가 / 애국심은 고귀한 감정인가 / 혁명이냐 개량이냐 / 진보정치란 무엇인가 / 국가의 도덕적 이상은 무엇인가 / 정치인은 어떤 도덕법을 따라야 하는가
어지간한 정치학 개론서보다 재미있고 명료하게 정리가 잘 된 책이다. 정치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다면 흥미있게 술술 읽히는 책이라 일단 추천.
*인상깊은 구절
왜냐하면 그 이론은 좌절한 인류의 꿈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때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며, 실현 불가능한 꿈을 향해 달려간다. 결코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별을 바라보며 가슴 설레는 것처럼, "한 사람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에 대한 꿈은 언제든 사람을 다시 설레게 할 수 있다.
마르크스가 꿈꾸던 사회는 계급적 적대관계가 없고, 삶의 주체로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스스로 선택하는 개인들이 서로 상생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세상, 즉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였다. 안타까운 점은 이런 사회는 더 이상 운동하거나 변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부에 적대적 계급관계나 계급투쟁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사회의 동력이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비판이론으로서 마르크스주의는 사실상 패배했지만, 마르크스주의에게 보내는 유시민 작가의 연민이 너무나 절절했던 구절이다.
좌절한 인류의 꿈.
그냥 이 대목에서 유 작가님이 왜 정치인이 아니라 작가로서 살아가야 마땅한가가 입증되는 듯했다.
르낭은 민족 창출의 근본적인 요소가 기억이 아니라 망각이라고 주장했다. 민족은 기억의 공동체가 아니라 망각의 공동체라는 것이다. 르낭은 민족국가를 형성한 통일 과정은 항상 갑작스럽게 이루어졌고, 언제나 대규모 살상과 전쟁을 동반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삼국시대에도 전쟁과 살상이 끊이지 않았는데, 삼국통일은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일으킨 대규모 살상과 전쟁의 산물이었다.... 이 모든 테러와 살상을 망각하게 한 시간의 축복이 없었다면 한반도에는 단일한 민족공동체가 형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책의 특성상 여러 사상과 철학에 대한 소개가 이루어지는데, 르낭의 주장이 흥미로웠다. 하나의 공동체가 주관하는 끊임없는 폭력사태와 그 결과에 대한 '기억'이 하나의 민족을 창출하는 요소인 줄로만 생각했는데, 한편으로는 '망각'을 통해 폭력의 아픔을 잊고 결속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의 기억을 끊임없이 재생해내기 때문에 우리민족은 일본과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 물론 망각을 통해 결속이 이루어진 다음에는 끊임없는 기억을 통해 결속을 유지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관점을 소개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가장 재미있었던 마지막 질문,
"정치인은 어떤 도덕법을 따라야 하는가"에 대해,
칸트와 베버, 베른슈타인을 통해 답을 찾아가는 접근법 또한 인상깊었다.
행복한 삶이 아닌 올바른 삶을 권하며 모든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는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도덕법칙을 세운 칸트이지만,
오직 '동기'에 의해 좌우되는 칸트의 도덕법칙은 동기보다 '결과'가 더 중요한 정치에서는 책임의 부재로 인한 정치적 참극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정치인이라면 때로는 신념을 포기하더라도(변절이라는 욕을 듣더라도) 자신의 행동이 낳게 될 '예견할 수 있는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책임윤리가 필요하다.
이러한 예로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개량주의)가 당대에는 실패한 것처럼 보였지만, 역사적 결과로는 베른슈타인의 예측이 소비에트연방을 비롯한 모든 사회주의국가의 현실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점에서 베른슈타인은 혜안을 가진 정치인이 아니었을까.
박근혜 탄핵사건 이후로 국가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구해볼 수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특히, 다양한 국가관이 있지만, 목적론적 국가관을 가진 나로서는 유시민씨의 관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읽게 되는 책이었다.
물론, 그 어떤 공동선과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국가일지라도 따뜻한 감성과 냉철한 이성을 가진 '훌륭한' 시민들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므로 책에 인용된 아리스토텔레스의 구절을 되새겨볼 만하다.
훌륭한 국가는 우연과 행운이 아니라 지혜와 윤리적 결단의 산물이다. 국가가 훌륭해지려면 국정에 참여하는 시민이 훌륭해야 한다. 따라서 시민 각자가 어떻게 해야 스스로가 훌륭해질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