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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Aug 15. 2017

책 이야기 4 - 다시, 책은 도끼다. : 박웅현

그래서 책은 쇠도끼가 아닐까?!


전래동화 중 금도끼 은도끼라는 이야기가 있다.
나무꾼이 연못에 하나뿐인 쇠도끼를 빠드리게 된다. 산신령은 금도끼와 은도끼가 나무꾼의 도끼인지 물어보았지만, 마음씨 착한 나무꾼은 자신의 도끼는 쇠도끼라고 정직하게 이야기를 하고, 이에 감동한 산신령이 금도끼, 은도끼, 그리고 쇠도끼까지 모두 나무꾼에게 준다는 그런 내용.
내게 '다시, 책은 도끼다.'는 쇠도끼같은 책이다. 
나는 쇠도끼를 잃었을 뿐인데(도서 구입 비용?) 금,은,쇠도끼 모두 내게 다시 돌아오게 되는 그런 울림이 전해지는 책.^^


다시, 책은 도끼다의 저자 박웅현님은 인문학 강독회에서 이야기한 '독서법'에 대해 총 8강에 걸쳐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음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 책들의 리스트.

쇼펜하우어의 '문장론'
마르셀 프루스트의 '독서에 관하여'
곽재구의 '곽재구의 포구기행', '길귀신의 노래'
김사인의 '시를 어루만지다'
법인의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톨스토이의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볼테르의 '미크로메가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스티븐 그랜블랫의 '1417년, 근대의 탄생'
이진숙의 '시대를 훔친 미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스페인 기행', 영국 기행', '카잔차키스의 천상의 두 나라'
밀란 쿤테라의 '커튼'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
살만 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
괴테의 '파우스트'

방학 전부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기 시작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참으로 진도가 안나갔다! 자유로운 영혼인 조르바에 대한 예찬과 재조명이 대단한 기세인데, 생각보다도 소설 속으로 빠져들지를 못했다.
박웅현 님의 독서법을 따라가다보니, 조르바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부카라의 멜론과 볼가 강가의 수박과 한 일본 소녀의 차갑고 섬세한 손을 영원히 내 손에 - 영원히, 다시 말해 내 손이 썩을 때까지 - 쥐고 있을 것이다."

이게 카잔차키스의 삶의 태도입니다. 이 문장을 읽은 다음부터 저는 멜론을 만질 때마다 그냥 만지는 것이 아니고 한 번 더 저만의 느낌을 가져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왜 온몸이 촉수인 삶을 살아야 할까요?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어디에도 완벽한 것은 없기 때문인 것 같아요. 현명하게 사는 방법은 그 순간을 온전하게 사는 것뿐이죠. 행복은 저 멀리 있지 않아요.


조르바는 기분이 좋으면 춤을 춰버리고, 책 속에 든 지식 따위는 집어 던져버리라고 이야기 한다. 언어로는 표현 못하는 수많은 감정들을 춤이라든가 연주라든가 주체하지 못하는 흥을 발산해버리는 방식으로.
조르바의 온몸이 촉수인 삶이 바로 작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기행문에서 보여주는 삶의 모습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삶에 대한 자세, 태도는 박웅현님이 다시, 책은 도끼다를 통해 독자의 삶 속에 들어올 수 있는 독서를 하라는 것과도 연장선에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래서였을까.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나만의 생각, 사색을 통한 주관적인 깨달음이 중요하다는 강조를 잊지 않았다. 덧붙여 책을 통한 사색을 하면서 평범한 우리들이 느꼈을 법한 고민들도 살살 문질러주신다.


그러나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나만의 고유한 사색에 의해 어떤 진리에 도달했다면, 비록 그 내용이 앞서 다른 책에 기재되었을지라도 타인의 사상과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체험이라는 점이다.

내가 깨달은 걸 이미 남이 먼저 알아냈다고 해서 허무해 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그 체험은 다른 사람의 체험과 바꿀 수 없는 겁니다. 이미 내 몸에 체화됐죠.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데 그 생각을 누군가가 앞서 이미 했다. 그러니 내 생각은 소용이 없다가 아니라 내가 이런 문장을 내 삶에서 느끼고 살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가 되어야 해요.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많고, 인터넷도 굉장히 빠른 세상에 살고 있고. 그러다보니 어떤 상황에서든지 혼자 먼저 생각을 하기 보다는 '이 문제의 정답은 뭐지?'라는 마음으로 휴대폰을 들고 정보 찾기에 바빠진다. 그리고 열심히, 다른 사람들이 제시해 놓은 길들을 따라간다.
쇼펜하우어의 문장과 이에 대한 박웅현님의 해석을 읽으면서,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의 길찾기가 떠올랐다.
그 시절 국내 여행을 가기 위해 아빠는 지도를 구입하셨고, 국도와 고속도로를 체크하면서 어느 길이 꽉 막힐지 알 수 없는 불안을 가지고 몇 가지 루트를 정해 가족들과 함께 길을 나섰다. 중간중간 지도에 표기되지 않은 골목길을 만나면 동네 주민분들께 차를 세워 묻기도 하면서, 엉금엉금 기어갈지라도 나만의, 우리만의 길을 찾아 목적지에 도달하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추천 길들을 따라 가다보면, 스스로 이정표를 읽기도 어려워지는 지경에 이르고야 만다. 내가 직접 길을 개척하는 기쁨, 조금 늦더라도 목적지까지 도달했다는 뿌듯함, 그 길을 함께 나선 사람들과의 추억 그 모든 것들이 내비게이션과 함께 서서히 사라져가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독서야말로 나만의 고독한 사색가가 되어 책을 읽어 나가야 한다. 책 커버에 적힌 추천사나 홍보용 보도기사에 쓰여있는 구문들에 현혹되지 말고, 내게 울림을 주는 구절들을 중심으로, 나만의 스토리, 나만의 감동코드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독서이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다시, 책은 도끼다는 '많이 많이' 읽는 병에 걸렸던 내게 잠시 쉬어가면서 나만의 책 이야기를 만들어 보라고 속삭여주는 좋은 길벗이었다. 강추.

but... 책을 읽고 나면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이 늘어난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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