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적인 이야기꾼, 하루키!
하루키 열풍이 심상치 않다. 신작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로 돌아온 하루키.
하지만 이번 책 이야기는 2014년에 나온 여자 없는 남자들 당첨~@
미국문화에 흠뻑 취해 있고, 마라톤을 즐기는 하루키지만, 그의 글에선 '뼛속 깊이 일본적이다'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여자 없는 남자들이란 소설은,
왜. 왜. 남자 없는 여자들은 소재가 될 수 없을까란 궁금증과 함께 시작하여 몇 시간만에 후딱 읽어버린,역시 하루키는 천부적인 이야기꾼이로다 싶은 소설이다.
*간단 책소개
드라이브 마이 카 / 예스터데이 / 독립기관 / 셰에라자드 / 기노 / 사랑하는 잠자 / 여자 없는 남자들 - 총 7가지의 여자 없는 남자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독자에 따라 7가지 이야기 중 베스트를 서로 다르게 꼽을 정도로 모든 이야기들이 매력적이다.
특히, 주인공들이 미국문화에 흠뻑 빠져있지만 굉장히 일본적이라는 것 또한.
*인상깊은 부분
밤늦은 시간이라 둥근 창 밖으로 보름달이 보여. 그런데 그 달은 투명하고 깨끗한 얼음으로 만들어졌어. 아래 절반은 바다에 잠겨있고. 그래서 아침이 와서 해가 뜨면 녹아버려. 이렇게 바라볼 수 있는 동안 잘 봐두는게 좋아.
하지만 잠에서 깨면 항상 몹시 슬픈 기분이 들어. 얼음 달은 이미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예스터데이 中-
주인공인 다니무라는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를 함께 한 기타루라는 괴짜 친구를 두었다.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를 제멋대로 개사해서 부르던 기타루에게는 구리야 에리카라는 소꿉친구이자 연인이 있는데, 기타루는 마음껏 연애할 수 없는 자신의 사정때문에 다니무라에게 구리야 에리카와 데이트를 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다니무라와의 데이트 중 구리야 에리카는 매일 밤 꾼다는 얼음달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데...
마무리는 다니무라의 독백.
- 그 시절 나도 매일 밤 둥근 선창으로 얼음 달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두께 이십 센티미터에, 단단히 얼어붙은 투명한 달을. 하지만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달의 아름다움이나 차가움을 누군가와 공유하지 못한 채 나는 혼자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십대 초반의,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흔들리던 마음이 떠오르는 이야기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십대의 청춘을 그리워하면서도 삼십대의 안정감을 선호한다고들 한다. 불안하고 미숙했던 이십대의 하고많은 실수들이 떠올라서가 아닐까 싶다. 그 고민의 순간들이 마치 한 장 한 장의 사진처럼 뇌리에 각인되어서 찬란하지만 슬픈 이십대의 기억들을 남기듯이. 개성이 강하지만 내면이 유약했던 기타루와 확신과 안정을 찾고 싶은 구리야 에리카, 그리고 조금은 평범한 주인공 다니무라. 그 시절 우리 주변에 하나쯤 머물렀던 친구들이 떠오르는 이야기, 예스터데이.
가게 이름은 '기노'로 했다. 가게를 열었다는 사실을 지인 중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광고도 하지 않고 눈에 띄는 간판도 내걸지 않았다. 그저 골목 안쪽에 가게를 열고서 그곳을 발견한 호기심 많은 손님이 들어오기를 가만히 기다렸을 뿐이다.
손님이 전혀 오지 않는 가게에서 기노는 오랜만에 마음껏 음악을 듣고, 읽고 싶던 책을 읽었다. 바짝 마른 땅이 빗물을 빨아들이듯 지극히 자연스럽게 고독과 침묵과 적막을 받아들였다.
-기노 中-
같은 회사 동료와 바람이 난 아내, 그리고 그 장면을 목격하고서 헤어지게 된 기노, 이혼 후 그가 차린 작은 가게 '기노'.
한번쯤 퇴근 길 골목길에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싶은 가게였다. 요란하게 덧붙이는 것 없이, 이름 그대로 '기노'인 그런 가게. 그곳에서 한 잔 시켜놓고 음악을 감상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고요한 장면. 마음껏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며 고독과 침묵과 적막을 받아들인다는 하루키의 묘사가 너무 와닿아서 어느새 '기노'의 문을 두드리는 내 자신을 발견하는 그런 이야기, 기노.
물론 더 많은 이야기들이 전개가 되므로 꼭 한번, 직접 읽어보기를!!!
어느 드라마보다도 현실이 더욱 드라마틱하고 지극한 구석이 있듯이,
빼어난 이야기꾼의 소설보다도 내가 발 딛고 선 이 현실이 더욱 극적인 전개를 보여주기도 한다.
없을 법한 이야기인데 따지고 보면 군데군데 있을 법한, 아니 한번 쯤 겪어봤거나 상상해봤거나 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 여자 없는 남자들이란 존재에 대한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소설, 여자 없는 남자들.
모든 소설이 감동 코드를 간직할 필요는 없으니깐, 진짜 재미있네~ 하는 마음가짐으로 빠져드는 신박한 이야기들이었다.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