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과 육아가 부부관계에 미치는 영향

서로를 좀 더 불쌍히 여기며 살기로 해

by 열매한아름

출산을 앞두고, 6개월 먼저 출산을 한 언니를 만났던 날, 언니는 이런 얘기를 했다.

남편 없이는 살아도
우리 아들 없이는 못 살겠어

그 말의 뉘앙스는 남편보다 아들이 소중하다는 의미를 넘어서, 남편이 조금은 귀찮은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의미였다. 그 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절대 안 그럴거라고 생각했다. 그 언니네 부부가 연애를 오래 해서 그런가보다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출산을 하고 육아를 시작하면서 남편과의 관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부부관계는 언제 갖지?

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조심스럽기도 했고, 몸을 움직이는게 불편해지면서 부부 관계는 못 가졌으니 거의 일년 남짓 우리는 손만 잡고 잤다(?).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측은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출산 후에도 수술 후 몸이 회복되는 시간이 더디기도 했고, 남편은 출근해야 하니 밤중 수유를 위해 우리는 각방을 쓸 수밖에 없었다.

손을 잡고 꼭 안고 팔짱 끼고 어깨에 기대는 정도의 스킨십은 자연스럽지만 뭔가 그 이상은 괜히 어색한 느낌이 들 지경이다. 오랜만의 키스에 ‘어색해’했더니 남편은 슬퍼하며 ‘그래, 우린 가족이지. 가족끼리 이러면 안되는거지.’하며 장난을 쳤다. 경각심을 갖지 않으면, 그냥 이렇게 흘러가다보면 진짜 그 흔하다는 섹스리스 부부가 되겠구나 싶었다.


스킨십은 커녕 같이 밥 한 번 먹기도 쉽지 않았다. 아가는 어쩜 엄마아빠 같이 밥 먹는 시간만 되면 딱 알고 깨어서 응애응애 우는지, 한 상 차려놔도 번갈아가면서 먹어야 할 때가 많다. 남편도 퇴근하자마자 아이 목욕도 시키고 짧은 시간이나마 아이랑 유대관계를 형성한다고 좀 안고 있다보면 금방 잘 시간이다. 우리 두 사람이 조용히 앉아 대화할 시간이 없다.


나도 좀 챙겨줘

아가가 잠든 것 같아 남편 옆에 앉았는데 또 아가가 깨서 운다.

“난 지혜랑 둘이 얘기하고 싶었는데” ...

남편의 한 마디가 측은하게 느껴진다. 요새 유독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많은가본데 집에 와서 하소연하고 싶어도 육아에 지쳐있는 아내에게 얘기를 꺼내기도 쉽지 않다. 남편은 예전처럼 내 돌봄을 받고 싶은가보다. 아침은 뭐해줄까 매일 밤마다 물어보고, 언제 들어오는지 늘 물어보고, 아침마다 모닝뽀뽀로 배웅하고,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 메뉴를 고민고민해서 만들어주던 신혼 초의 나와 지금의 나는 너무 다르다.

아내가 힘든걸 아니까 엄살을 부릴 수는 없지만 왠지 투명인간이 된 것 같은 느낌에 괜히 아기 옆에 같이 누워서 나도 좀 챙겨달라며 어리광을 부리기도 한다. 때로는 그 모습이 측은하고 귀엽기도 하지만 때로는 얄미울 때도 있다.


나도 힘들단 말이야

남편도 퇴근하고 오면 눈치껏 이것저것 돕기는 한다. 하지만 내 성에 차지가 않는다. 밥 먹은거 설거지하고 잠깐 애기 안고 있는 것 말고 딱히 하는게 없는 것 같아보인다. 남편은 남편대로 하루종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몸도 마음도 지쳐있으니 집에 오면 쉬고 싶은데 자기가 쉴 곳이 없다. 침대도 빼앗기고, 컴퓨터 책상은 구석에 쳐박혔고, 딱딱한 거실 바닥에서 자려니 허리도 너무 아프고...

아기를 재우고 나왔는데 갑자기 딸기 요거트 스무디가 먹고 싶다는 남편. 믹서기 돌리면 아기 깰텐데, 아기랑 밤을 보내기 위해 준비할 게 많아 정신 없는데 이 와중에 딸.기.요.거.트.스.무.디라니.

사실 만드는 데 10분도 안 걸리지만 가만히 앉아서 이거 갖다 달라, 저거 달라 하니 참을성 폭발!

“나도 힘들단 말이야! 이 와중에 이런걸 만들어달라는 오빠가 난 너무 미워!”


다음날, 남편은 카페에 들러 딸기요거트 스무디(자기꺼)와 녹차 스무디(내꺼)를 사왔다.


자기 일은 자기가 좀 알아서 했으면 좋겠다. 하루종일 아이 쫓아다니고 집안일 할 시간도 없는데... 나도 쉴 시간이 하나도 없는데,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자꾸 나한테 요구하면 짜증이 솟구친다.

딸기요거트스무디 사건 이후로 남편은 나름대로 자급자족 라이프에 적응하는 중이다.


취미로 육아하냐?

손목 뼈에 문제가 있어서 남편은 손목이 늘 약하다. 목욕 한 번 시키는데, 아기 한 번 안아주는데 손목 아프단 얘기를 몇 번씩 한다. 무리하면 안되는 거 알면서도 얄미운 생각이 든다.

“나는 손목 안아프나? 손목이 아파도 꼭 해야하는 거니까 나는 어떻게든 하는데 오빠는 왜 그래?”

엄마인 나는 내가 아프거나 안 아프거나 할 건 해야한다. 내 어깨 허리 손목 무릎 다 아파도 아기를 안아야 하고 목욕도 시켜야 하고 재워야 하고 ... 아이는 스스로 할 수 있는게 아무 것도 없으니까. 엄마만 바라보고 있으니까. 근데 남편은 내가 있으니까 자기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 얄미웠다. 아기 좀 안아달라니 쿠션위에 올려놓고 손과 눈은 핸드폰 게임을 한다거나, 분유를 좀 먹여달랬더니 쿠션을 몇개나 팔 밑에 받쳐서 손목 아프다고 어리광을 부리면 보는 나는 열이 난다.

뭔가를 해달라고 얘기하면 거절하는 법이 없긴 하지만 너무 서툴러서 잔소리가 자꾸 늘어난다. 참으려고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조금씩 발전 중이긴 하지만 초반에는 정말이지 답답하 마음에 잔소리 폭발.




출산 하기 전에는 남편 퇴근시간만 기다렸었는데 지금은 남편이 오면 정신이 없다. 기다려지면서도 막상 남편이 오고 나면 뭔가 복잡하고 정신 없어진다. 남편이 함께 있으면 심리적으로 우울감이나 외로움은 확실히 덜어지지만 일은 더 많아진다. 그래서, 오히려 혼자 있을 때가 몸은 더 펴하고 남편이 오면 그래도 외롭지 않아 마음에 위로가 된다.

집은 복작복작한 맛이 있어야 좋다고 생각하는 일인. 이제부터 시작이다.


임신했을 때 하도 산전산후 우울증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어서 남편에게 신신 당부 해뒀다.

아기는 내가 케어할테니까, 오빠는 나를 케어해줘

남편은 나를 케어한다며 시도때도 없이 “안아줄게”하며 양 팔 가득 나를 안아준다. 바쁠 때 자꾸 그러면 귀찮기도 하다가 또 고맙기도 하다. 우리 서로 노력하고 있다. 각자의 능력도 그릇도 다르고 우리 둘 다 초보 엄마아빠라 서투른 것 투성이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기는 우리 둘 다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 이런 시절도 한 순간이다. 이 시절을 그리워할 날이 오겠지. 아기가 신생아였을 때가 벌써 그리운 것처럼.


오늘은 내가 먼저 두 팔 벌려 꼭 안아줘야겠다.



커버 사진 출처 Photo by Gus Morett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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