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들이 빠져나간 성전엔 나 혼자였다. 아침 미사가 끝나고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묵주기도를 하다 말고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색색의 빛줄기에 넋을 잃고 있을 때였다. 성전 뒤쪽 유아방에서 들려오는 기도 소리에 다시 묵주를 들었다.
할머니 한 분이 제대 앞에 나와 인사하고 유아방 쪽으로 갔다. 기도 모임이 있는 듯 사람들 몇이 같이 있었다. 그 잠시 후였다. 누군가 성전 유리문을 세차게 밀치고 들어서는 소리가 났다. 그녀였다. 미사 때면 종종 시끄러운 소리로 전례를 방해해서 낯이 익었다. 그녀는 성전을 휘 둘러보고는 유아방으로 가서는 다짜고짜 고함을 쳤다. 함께 있던 신자들은 말리는 듯하다가 익숙한 일인 듯 짐을 챙겨 다른 곳으로 가버리고 방에는 할머니와 그녀만 남았다. 그때 할아버지 한 분이 황급히 들어오며 누군가를 찾는 듯하더니 유아실로 달려갔다. 잠시 후 조금 전의 여자에게 다가가 뭔가를 간곡히 부탁하는 모습이 유리창으로 보였다.
여자가 갑자기 삿대질하며 할아버지를 세차게 밀쳐대기 시작했다. 한참의 소란이 있고 나서 요란하게 방문을 나서는 소리가 났다. 그녀가 앞서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연신 몸을 조아리며 따랐다. 할아버지의 음성이 나직이 들려왔다.
“얘야, 집에 가자꾸나. 아침도 못 먹었잖니?”
여자는 딸이었다. 할아버지의 신신당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소리를 질러대더니 성전을 나서면서는 발길질까지 했다. 노부부는 삼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딸을 받아내느라 몇 번이나 휘청였다. 그들이 성당 마당을 빠져나가고서야 다시 묵주를 들었다. 마음이 잡히지 않았다. 얼마를 앉아 있었을까. 뒤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돌아보니 조금 전의 할머니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할머니를 기다렸다.
“죄송합니다. 기도하시는데‧‧‧‧‧‧.”
“‧‧‧‧‧‧.”
“오래 마음이 아파온 아이예요. 기도를 부탁하고 싶어서 왔어요.”
할머니도 나를 아는 듯했다. 미사에 늦을 때면 나는 늘 뒤쪽에 앉아 있던 그분들 뒷자리에 앉곤 했다. 그때 ‘평화의 인사’*를 나누었을 거다. 미사에 아주 일찍 간 날에도 웬일인지 그들은 앞으로 가지 않고 사람들이 드나드는 출입문 쪽에 앉아 있어서 의아해했던 기억이 나 물었다.
“저희가 어떻게 앞자리에‧‧‧‧‧‧.”
할머니는 눈만 뜨면 성당으로 달려가려고 하는 딸을 막느라 매일 아침이면 몸싸움을 벌인다고 했다. 한편으론 딸을 막아야 할지, 막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그 상황이라면 어느 부모가 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힘을 겨루다가 마지막으로 다다른 곳이 성전 출입구 자리가 아니었을까. 딸이 들어와 또 미사를 방해할까 내내 걱정되었을 거다.
십자가 아래에서 할머니는 한참을 엎드린 채로 있었다. 나의 묵주기도가 끝났을 때 할머니의 기도도 끝이 났는지 일어나 나를 향해 눈인사를 하고는 돌아섰다. 스테인드글라스를 지나온 빛줄기 하나가 할머니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출입문까지 배웅했다.
어떤 죄인의 몸짓이 그리도 가련할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한 번도 앞자리에 앉은 적 없이 출입문을 지키며 매일 새벽 미사에 나올 수 있을까. 남의 이목을 뒤로한 채, 자식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할 수 있었을까. 자식이 잘나갈 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감추지 못해 안달했고, 힘들어할 때는 남이 그 연약함을 알아볼까 봐 안으로 꼭꼭 문을 걸어 잠갔던 일이 부끄러웠다. 성전을 걸어 나가던 할머니의 쇠잔한 등이 무성영화의 한 장면처럼 뇌리에 남았다. 움켜쥔 것이라고는 하나 없을 헐벗은 손끝에서 흔들리던 나무 묵주도.
다시 묵주를 잡았다. 기도 속으로 딸을 달래던 할아버지의 나직한 음성이 되새김질 되어 들려왔다. “얘야, 집에 가자꾸나‧‧‧‧‧‧.” 마음의 집을 떠나 길 잃고 헤매던 그때,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내게 이르시는 말씀 같아 울컥해졌다.
12시, 삼종기도를 알리는 종소리가 성전 가득히 울려 퍼지고 있었다.
*가톨릭에서 미사 중에 평화를 비는 전례 양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