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밭에 풀이 나있는 걸 보면 마음이 너무 불편한 것이. 남의 밭일지라도 풀을 뽑아주고 싶을 만큼 풀은 존재하면 안 되는 거였다. 아빠가 경작하는 밭은 늘 정갈했다. 풀 한 포기 없었다. 그것만이 나에겐 정상으로 각인이 되어있었나 보다.
농촌유학을 와서 세 들어 살게 된 유나네 밭은 참으로 생경한 풍경이었다. 유나아빠는 우리더러 따 먹으라고 상추, 로메인, 가지고추, 아삭이고추, 당조고추, 두 가지 컬러 방울토마와 흑진주 방울토마토를 마당에 심었다. 그 옆엔 참외와 수박도 심었다. 상추는 어찌나 잘 자라는지 매 끼니마다 상추쌈을 먹었다. 나는 야채를 워낙 좋아하니 매 끼니 먹어도 맛있었다. 다행히 아들도 상추는 잘 먹었다. 간혹 푸성귀가 점령한 식탁을 보며 '내가 토끼야?'라는 말을 양념처럼 하기도 했다.
유나네는 풀을 뽑지 않는다. 비닐 멀칭은 했지만, 화학비료도 뿌리지 않고, 농약도 뿌리지 않는다. 처음엔 나도 상추밭에 나는 풀들을 그냥 지켜보았다. 그러나 보다 보다 마음이 불편해지면 뽑기 시작했다. 그때 알았다. 풀은 나면 바로 뽑거나 아니면 끝까지 두거나 해야 한다는 것을. 많이 자라 버린 풀은 어지간한 힘으로는 뽑히지 않았다. 회사에서 나는 간혹 몇 달이나 지나버린 후에 숫자 오류를 발견하게 되면, 마음속으로 '이걸 나 혼자 가슴에 묻어버려'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회사에서는 실행하지 못한 바로 그 일을자연에서는 해보는 거다. 풀이 어느 정도 자라면 그냥 가슴에 묻어야 하는 거다. 괜히 풀나무 뽑겠다고 덤볐다가는 허리가 나가는 수가 있다.
유나네 감자밭은 날이 갈수록 풀밭으로 변해갔다. '저래서 감자인들 생길까' 싶을 만큼 풀이 감자를 이겨먹은 지 오래다. 감자줄기가 보일락 말락 할 정도로 풀이 무성해져서 감자밭이 풀밭으로 정체성을 바꿔갔다. '나라도 풀을 뽑아줘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으나, 이미 풀나무는 건드리는 게 아니란 걸 알아버린 후라 마음은 불편하지만 애써 외면했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 정갈한 감자밭을 보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풀 없는 감자밭을 보면서 '바로 저 거지'하는 속엣말과 함께 미소가 절로 나왔고, 그 밭에서 수확될 튼실한 감자를 상상하며 침을 꼴딱 삼키기도 했다.
드디어 감자 수확철이 되었다. 유나아빠는 우리에게도 감자를 수확할 기회를 주었다. 아빠는 손주들에게 농산물 수확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행여라도 호미로 감자나 고구마를 찍어버리면 금방 썩어서 저장이 어려워질 뿐 아니라, 농사일에 서툰 아이들이 함께 하면 걸리적거리기 때문에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감자만 잘 가꾸어진 정갈한 감자밭
아들이 난생처음 감자를 캐는 거라 나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행여 감자를 호미로 다 찍어놓으면 애써 감자수확의 기회를 준 유나아빠에게 민폐가 되니 말이다. 아들에게 어떻게 호미질을 해야 하는지 설명을 하고, 호미질을 할 때마다 제대로 하는지 감시하고, 잘 못하면 다시 시범을 보이고, 끝내 짜증을 냈다.
이럴수가!! 내가 아들을 대하는 모습에서 엄마를 통제하는 아빠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가? 나 스스로가 섬뜩했다. 마음을 고쳐 먹었다. 아들에게 자유를 주고, 나중에 불량감자는 비용을 지불하고 사야겠다고. 그렇게 해서 우리는 신나게 감자를 캤다. 감자 캐는 것보다 풀나무 뽑는 것이 열 배는 힘들었다. 그렇다고 풀나무를 안 뽑을 수도 없었다. 풀나무뿌리에 감자들이 깜찍하게 하나 둘 숨어있기도 하니 말이다. 아들은 처음 해보는 감자 캐는 일을 힘들어하면서도 재미있어했다. 아들은 뭘 하든 입이 더 부산해서 어떨 땐 귀가 따갑기도 하지만, 단순 반복 작업을 할 때는 심심하지 않아서 좋다.
비닐멀칭 속에 담배가 심어져 있다(비닐멀칭은 생산성을 올리기 위한 최고의 수단이겠지만 뭔가 애처롭다)
우려와는 다르게 감자가 알알이 잘도 영글어 있었다. 나중에 유나아빠에게 들은 설명에 따르면 화학비료도 안 뿌리고 풀도 안메고 키운 감자는 알이 단단하다고 한다. 풀나무와 경쟁해야 하니 더 단단해지는가 보다. 그리고 풀뿌리가 워낙 깊고, 잔가지들이 얽혀있어 비가 많이 와도 감자가 썩지 않는다고 한다. 풀뿌리가 빗물을 흡수해서 감자를 썩지 않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수확한 감자를 쪄 먹어보았더니 정말 단단하고 쫀득쫀득한 게 지금껏 먹어봤던 그 어떤 감자보다 맛있었다. 아린 맛도 전혀 없어서 감자를 쪄 식탁에 올려놓으면, 아들도 왔다갔다 하면서 하나씩 잘 먹었다.
유나아빠는 아들이 상처 낸 감자를 사라고 하기는커녕, 아들이 열심히 캔 보상이라면서 감자를 두 박스나 선물로 주었다. 덕분에 그 감자들을 아들이름으로 지난봄에 위문차 방문한 언니들과 '독수리5자매 단체톡방'에서 늘 나를 응원해 주는 언니들에게 나눠 보냈다. 유기농 감자의 신세계를 널리 알리고픈 마음도 함께 싸서 보냈다.
최재천교수의 '최재천의 곤충사회'란 책에는 생물다양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생물다양성을 위해서도 풀나무들이 꼭 필요하다는 것과, 그 풀들이 우리의 먹거리를 위해서 해주는 유용한 역할까지 알았으니 앞으론 풀들을 보면 반가울 거 같다.
"자연계의 다양성이 일단 확보되면 그게 유지되는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다양하기 때문에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다양한 존재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농사짓는 방법이 문제입니다. 제가 예전에 코스타리카에서 바나나 농장을 잠깐 들렀는데요. 뒷산에 올라서 내려다보면 눈이 모자라게 바나나가 심어져 있습니다. 이게 우리가 농사짓는 방법이에요. 보나 마나 얼마 전까지 그곳에는 굉장히 다양한 식물이 섞여 살았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들어가서 싹 밀어냅니다. 그곳의 식물 다양성을 완벽하게 제거합니다.
(중략)
그러면 저 바나나 이파리를 특별히 좋아하는 곤충들에게 이곳은 천국일 겁니다. 그래서 전국에서 몰려옵니다. 분명 어제까지는 예쁜 곤충이었는데 오늘부터는 농부가 해충이라고 부르면서 농약을 뿌려 죽이기 시작합니다.
(중략)
굉장히 많이 죽였다고 생각하고 돌아와 보면 그다음 해에 또 갉아먹고 있어요. 그래서 또 뿌립니다. 그런데 이번엔 잘 안 죽어요. 왜 안 죽을까요? 작년에 안 죽은 아이의 후손이 돌아온 거잖아요. 면역력을 가진 아이들의 후손이 돌아왔기 때문에 안 죽어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실험실에 가서 더 독하게 수은, 카드뮴 같은 중금속도 집어넣어서 만든 독극물을 뿌리는 겁니다. 이게 우리가 수백 년 동안 농사를 지어온 방법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주변 강에서 물고기들이 배를 뒤집기 시작하고, 왜가리가 쓰러져 있고, 동네 사람들이 병원에 가기 시작하는 겁니다.
(중략)
처음부터 우리가 농사를 지을 때 이렇게까지 생물다양성을 완벽하게 말살하고 짓지 않았어도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잖아요. 간작, 혼작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우리는 싹 밀어내고 한 가지로만 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한 겁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우리가 지금 환경을 어마어마하게 파괴하고 그 악순환의 쳇바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생물다양성은 이렇게 중요한 이슈입니다. 우리의 삶과 아주 직결된 대단히 중요한 이슈입니다."(최재천의 곤충사회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