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 사람들 2

안문기 아버님과 여름 날의 아이스크림

by 그린로즈
img015.jpg Leica M3 + Rigid with APX100


60년만에 소방도로가 생기면서 사라지는 언덕배기 마을을 몇 개월 동안에 걸쳐 촬영하러 다녔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묵호별빛마을"이라는 이름으로 관광객들에게 알려진 곳이다.


그 해 무더웠던 여름날, 인적도 드물고 빈 집만 많은 이곳을 "볼 게 뭐 있어서 매일같이 올라오냐"며 조금은 퉁명스럽게 말씀하시는 안문기(당시 85세) 아버님 댁 마당을 지나갈 때이다. 사실 아버님은 내가 올라오는 것을 마당에서 지켜보시고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주시는 참 인자하신 분이시다.


원래 아버님은 삼척에서 태어나고 자라신 분이셨다. 하지만 군대를 제대하고 삼척에 돌아가보니 마땅한 일자리가 없었다고 하셨다. 그때는 묵호항에 가면 일자리가 많아서 전국에서 사람들이 많이들 찾아간다는 소문이 자자했다고 하셨다. 그래서 아버님도 일자리를 찾아 묵호로 오게 되셨고, 지금의 이곳에 집을 구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때 묵호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이사를 와서 쉽게 집을 구할 수 없었는데, 도로에서 한참을 올라가야 도착할 수 있는 불편한 이곳에 집을 구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셨다. 하지만, 곧 집 앞으로 도로가 생긴다는 마을 분들의 이야기에 이곳에 자리를 잡고 도로가 생기길 기다리셨다고 하셨다. 도로만 생긴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살기 편한 곳이 될거라고 기대하셨던 20대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가 내겐 참으로 귀하게 들렸다.


나는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그래서 함께 나눈 추억 또한 없다. 그것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양가 할아버지 모두 다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문기 아버님과의 만남은 내게 할아버지의 인자함과 사랑을 느끼게 해주었다. 늘 아버님을 뵐 때마다 나는 마음 속으로 "나도 할아버지께서 살아계셨더라면, 이렇게 여름이면 덥다고 아이스크림을 챙겨주셨겠지?" 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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