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이 사라져 간 어부
나에게 묵호, 묵호항의 의미는 크다. 왜냐하면 내가 사진을 시작했을 때, 그곳들은 내게 사진 놀이터가 되어준 곳이기 때문이다. 언제든 찾아가면 좋은 피사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는 사진을 가르치는 교실이 되어주었다.
2009년 봄기운이 찾아오던 어느 오후 3시 무렵,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는 묵호항을 찾아갔다. 봄빛이 아주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시간대였다.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처럼 묵호항을 헤매고 있었는데, 살짝 기분 좋게 취하신 어부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뭔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보였다.
어부 아저씨는 혈기왕성하던 시절에 여기 저기 여행을 다니면서 사진을 담았다고 하셨다. 그때 만나는 어르신 사진을 담아드렸는데, 너무 좋아들하셨다며, 나에게도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면서 사진을 담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좋은 조언을 해주셔서 뜻밖이고 감사했다. 그래서 "그럼 지금 사진을 담아도 되나요?" 했더니 흔쾌히 허락을 하셔서 지금의 이 사진이 남게 되었다. 내가 묵호에서 담은 인물 사진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다.
이 일이 있은 뒤에 더 이상 묵호항에서 뵙질 못 했다. 다시 뵈면 사진을 드리고 싶었는데, 그때 미쳐 성함이나 주소, 그런 것들을 적어놓질 못했다. 다시 묵호항에서 뵐 수 있을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내가 조금은 미웠다.
그래서 이렇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 한 장만 남았을 뿐, 이름 없이 사라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