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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lles Adventure Jan 17. 2021

우울증이 다시 도졌다.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거지 같은 우울증

아만다와 친해진 계기는 우울증 때문이었다. 박사 때 우울증을 앓았지만 그래도 그땐 함께했던 친구들이 있었다. 졸업 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시골에 덩그러니 이사를 갔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마음이 맞는 사람을 찾지 못하자 지금껏 경험했던 우울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나의 우울증은 더 진화했다. 이 동네에서 나와 마음이 잘 맞았던 사람은 드미트리와 그의 여자 친구인 아만다였다. 아침에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나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처음으로 터 놓고 그걸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해해 준 사람이 아만다였다. 결국 둘 다 이사를 갔지만. 이사를 갔을 때 나는 정말 슬펐다.


나이가 40인 아만다는 11살 때 본인이 우울증에 걸렸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껏 만성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좋은 학교에서 박사학위도 받았지만 일을 하지 않는다. 아니지, 못 한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그들이 이사를 가기 전, 어느 날 아만다에게 전화가 왔다. 트미트리가 지금 수업 중이라 내게 부탁한다고. 병원에 가 보니 아만다는 정신과 수속을 밟고 있었다. 아만다는 11살 때 자살 시도를 한 이후에 자살 충동이 심해질 때마다 정신과 핫 라인에 전화를 했다고 한다. 내 우울증은 아만다의 우울증과 약간 달라서, 기운 없이 앉아있는 아만다를 보고 무슨 말을 해 줘야 할지 몰랐다. 아만다는 내게 "나는 11살 때부터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했는데 그래도 우울증은 내 곁을 꼬박꼬박 찾아오고 이제 너무 지쳤다"며 나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발버둥 치며 꾸역꾸역 살아보려고 해야 하는지, 이제는 정말 포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냐 그렇게 생각하지 마 라고 위로를 해도 모자랄 판인데, 아만다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내가 지금 겪는 이 우울증이 끊임없이 나를 쫓아다닌다면 나도 포기하고 싶어 질 것 같아"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 알지만 우울증이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고되게 만드는지 알게 되고 나니, 이게 평생에 걸쳐 나를 따라다닌다면 나도 역시 포기하고 싶어 질 것 같았다. 그때는 몰랐지, 내 우울증도 잦아들만하면 다시 나타나고 이제 이겨냈다 싶으면 다시 스멀스멀 잠식하고 이렇게 5년 넘게 나를 따라다닐 줄은 몰랐지.






우울증이라는 단어만 보면 우울할 것 같은데, 사실 난 우울한 적은 거의 없다. 내 우울증은 무기력감에 가위를 눌리는 느낌이다. 무기력감이 너무 크고 그 어떤 것에도 기대가 되지 않고 흥미가 없이 지루하고 재미없는 하루가 내 우울증의 증상이다. 난 자살 생각도 중딩 때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든 적이 없었다.


내 우울증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 2개가 있다. 하나는 아마존 제작 모던 러브라는 미니 시리즈에 나오는 조울증 이야기다. 뉴욕 타임즈에 연재됐던 칼럼을 드라마로 제작한 거다. 제3화에서 앤 해서웨이가 조울증에 걸린 역할을 했는데, 나는 그런 조증은 없지만 그녀가 표현한 우울증에 정말 격하게 공감했다. 참고로 모던 러브 시리즈 굉장히 재밌다. 좀 이상한 편도 있기는 한데 대체로 재미남.


Modern Love 3편


왼쪽 장면은 저녁 먹으려고 열심히 다 차려 놓고 기대감에 부풀어 있고 신나 하는 앤 해서웨이. 그러다가 정말 문득, 그 어떤 마땅한 이유도 없이 갑자기 수렁에 빠지는 순간이다. 오른쪽 장면은 그런 수렁에 빠지는 자기 자신에게 자꾸 "일어나 일어나 아냐 할 수 있어 왜 이러는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열심히 거는 장면이다. 이 두 장면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내가 반복적으로 우울증이라는 수렁에 빠질 때 딱 저런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 미니시리즈를 봤을 땐 우울증이 그닥 심하지 않은 때여서 "아 저 심정 이해 가지 암암"이렇게 보고 넘어갔었다. 근데 우울증이 다시 도진 이번 주, 유튜브에서 우연히 단편 영화를 보게 됐는데 세상에 이렇게 내 심정을 잘 대변해주는 영화가 있다니. 바로 단편 영화 커브 (2016)다. 유튜브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보게 됐는데, 혹시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다면 꼭 보길 바란다. 이 유튜버는 영화 소개가 다 끝나고 나서야 우울증에 관한 영화라고 얘기했는데, 이 여자가 빠진 상황을 보자마자 나는 저게 나 같다고 느꼈다. 그리고 저 여자는 정말 열심히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처절하게 몸부림치는데, 처음 몇 분 동안은 "그래 나라도 저렇게 열심히 살아보려고 할 것 같다"싶었다. 근데 저 광경을 계속 보고 있자니 "나 같으면 포기하고 그냥 떨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그런 수렁 같아 보였으니까.


The Curve 단편영화





나는 바보가 아니라서 뭘 어떻게 해야 우울증에 도움이 되는지 안다. 운동을 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밤에 일찍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일부러 약속을 잡고, 일부러 밖에 나가서 바람 쐬고, 친구들을 만나고, 정신과 약을 열심히 먹고, 상담을 꼬박꼬박 받고. 나는 이게 내 우울증에 도움이 된다는 걸 당연히 알고 있다. 누가 모르겠어? 근데 우울증의 문제는 이걸 다 아는데도 실행을 못 한다는 거다. 다 알아, 이렇게 하면 나아질 걸. 근데도 못하는 게 우울증이다. 간혹 인터넷에서 "우울증이라면 밤에 일찍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운동하기만 해도 훨씬 나아진다!"라는 글을 보는데, 이는 우울증에 대한 이해가 50%뿐인 사람의 글이다. 그거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요. 다 아는 데 못하는 거지.


심지어 나는 지난 5년간 저걸 어떻게든 해보려고 노력했다. 가끔 루틴을 잃고 수렁으로 빠지고 허우적대고 나는 왜 이럴까 자책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루틴을 다시 세우려고 했고 한 시간에 $45 하는 피티를 잡아서 어쩔 수 없게 운동을 꼭 했고 상담받는 것도 귀찮아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렇게 슬럼프에 빠졌다가 나왔다가를 반복해왔다. 슬럼프에서 빠져나와 어느 정도 궤도에 이르면 "올 이번엔 정말 극복한 건가? 이제 우울증은 끝일까?" 기대가 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다시 나는 루틴을 잃고 다시 수렁으로 빠진다.


팬데믹이 시작되고 나서, 우울증이 정말로, 이번에는 끝날 수 있겠구나 기대가 됐다. 사이코패스 같은 직장 동료들과 매일 마주치지 않아도 되고, 나와 베프인 우리 언니와 같이 살게 됐고, 내 루틴을 쉽게 망가뜨리는 여행을 갈 수 없게 됐으니까. 약간의 슬럼프가 종종 왔지만 지난 달만 하더라도 올 나 진짜 이번엔 우울증 완전 극복한 것 같아 라고 기뻐했다. 약 먹은 지도 2년이 되어 가고 이제는 정말 다 나은 게 아닐까? 삶은 꼭 그렇게 고통스럽지만은 않은가 보다 라고 기대감이 쌓였다.






근데 우울증은 그렇게 쉽게 나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지난 1주일 동안 나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다시 수렁에 빠졌다. 아 일은 안 하더라도 오늘 운동이라도 해야 하는데, 딱 30분 운동이라도 해야 하는데, 이런 생각으로 꼼지락꼼지락 거리며 침대에서 4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넷플릭스를 켜고 별로 재미도 없는 쇼를 보면서 또 아 오늘 하루 이렇게 그냥 보내면 안 되는데 안되는데 생각했다. 그러다 해가 지면 아 이런 하루가 내일도 반복되면 어쩌지? 나 다시 수렁으로 빠지는 거면 어떡하지? 운동이라도 해야 하는데, 밖에 나가서 걷기라도 해야 하는데. 이런 생각만 들고 자책만 할 뿐 실제로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브런치에 글이라도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1주일이 지나갔다.


이런 깊이의 슬럼프, 오랜만이다. 이사 오고 나서 우울증 최고조에 다랐던 1-2년 차 때로 다시 돌아간 것 같다. 5년을 공들여서 할 수 있는 거라곤 다 해봤고, 약도 꼬박꼬박 먹고 상담도 받으며, 베프인 언니와 같이 살고 있는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상황인데도, 결국에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단편영화 커브에 나온 댐 같은 수렁에서 손에 피 칠갑을 하면서 열심히 발버둥 쳐봤지만 결국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자리에 다시 돌아와 있다. 이 얼마나 얼마나 허무한 노력인지. 예전에 아만다를 보며 이해가 갔던 것처럼, 아 이런 게 반복되면 자살 생각이 들 수도 있겠구나 싶다. 설사 이번 수렁도 어찌저찌 빠져나온다 하더라도, 나는 결국에 저 자리로 또 돌아가게 되지 않을까? 어떻게든 극복했다고 생각이 들 때 즈음 나는 다시 이렇게 되지 않을까? 아 정말 짜증 나고 싫다. 내가 어떻게 "삶은 고통"이라는 말을 지난 몇 개월간 잊어버리고 살았는지.


그래도 어차피 원점으로 돌아갈텐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가도, 그래도 오늘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쓸 마음이 들고 실제로 글을 썼다는 내 실행력을 보면 희망이 있는 걸까? 혹시 코로나블루가 아닐까 싶기도 한데, 문제는 코로나가 끝나더라도 우리 동네에 마음 맞는 친구가 없다. 나와 잘 맞는 친구들은 전부 이사 갔다. 그만큼 우리 동네가 혹독하거든요. 언니도 어차피 6개월 뒤면 떠날 거고. 코로나가 끝나더라도 앞으로 뭐가 나아질 가망이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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