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미국 살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elles Adventure Apr 06. 2021

미국인들에게 환기란? 그게 뭔가요 먹는 건가요?

미국인들에게 환기란 없다.

울 부모님이 미국에 방문할 때면 늘 하는 일이 우리 집 환기를 시키는 거다. 온갖 창문을 모조리 열고 10-15분 동안 공기가 순환되도록, 그 추운 겨울에도 하루에 3번씩 환기를 시킨다. 내가 늘 환기 안 시켜도 된다고 누누이 얘기하지만 부모님은 환기는 이렇게 시키는 거라며, 이건 꼭 필요한 거라며 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 매일매일 환기를 시켰던 기억이 난다.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는데 환기시키는 바람에 너무 추워서 잠에서 깬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는 황사가 심해져서 황사가 그나마 잦아드는 날에만 환기를 시켰다. 요즘은 미세먼지가 난리라고 하던데, 미세먼지가 주류(?)가 될 때 즈음 미국으로 와서 그런지, 요즘엔 언제 어떻게 환기를 시키는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나라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실내를 환기시키는 것이 매우 흔하고 권장된다.




미국에 오고 나서 놀랐던 것 중 하나는 그 누구도 환기라는 걸 시키지 않는다. 심지어 청소기 돌릴 때도 그 먼지가 풀풀 날리는 데도 창문을 열 질 않는다. 도대체 환기를 안 시키고 어떻게 살지?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국의 웬만한 집 (아파트든 단독주택이든)에는 전부 HVAC (heating, ventilation, & air conditioning) 시스템이 장착돼 있다. HVAC는 말 그대로 난방, 환기, 냉방, 제습 등 공기의 온도나 습도 등을 조절하는 시스템이다. 일종의 컨트롤러가 있어서 거기서 온도를 설정하고 제습을 할 건지 하니면 환풍을 돌릴 건지 결정할 수 있다. 이 HVAC의 가장 편안한 점은 팬 (fan)이 돌아가는 한, 저절로 집안 전체 환기를 시켜준다는 거다. 나도 첨엔 이걸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HVAC에고 공기 필터가 있어서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더라. 그동안은 아파트에서만 살았어서, 아파트에서 알아서 바꿔줬기에 몰랐지만, 이제 집을 관리해야 하다 보니 이 필터도 주기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요렇게 생겼다. 그림처럼 보통 지하실에 HVAC가 있다. 바깥에서 공기가 들어오면 필터를 통과해서 집 안을 돌다가 집에서 또 골기가 나가는 식이란다. 나도 자세한 건 모름. 쩝.






한국에선 보통 방마다 에어컨이 따로 있고, 난방도 방마다 조절이 가능했던 것 같다. 안방만 난방을 하고 작은 방은 안 한다는 등 조절이 가능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HVAC는 중앙 관리 시스템이다. 그러니까 각 방마다 에어컨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내가 중앙에서 에어컨을 틀면 각 방에는 환풍구 (vent)에서 에어컨이 나온다. 난방을 틀면 역시 방마다 따로 난방을 트는 게 아니라, 집안 구석구석에 있는 환풍구 전부에서 따뜻한 바람이 나온다. 이렇게 비효율적일 수가! 역시 자원 낭비의 끝은 미국. 만약 특정 방에만 냉난방을 하고 싶지 않다면, 환풍구를 닫을 수 있기는 하다. 그러면 그 방으로 갔어야 할 따뜻한/차가운 공기가 다른 공간의 환풍구로 더 밀려 나오는 식이다. 이래서 전기세가 가스비가 많이 나온다. 흑. 요즘에는 자원을 아끼자는 취지에서 방마다 온도 조절을 따로 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치만 실제로 그렇게 돌아가는 집은 아직 못 봤다. 집을 레노베이트하면서 HVAC를 업그레이드 하지 않는 한 우리집도 그냥 이대로 쓸 것 같다. 


하지만 HVAC의 제일 큰 장점인 환기를 굳이 안 시켜도 알아서 환기가 된다는 게 내겐 너무나 매력적이다. 그리하여 우리 집에서 창문을 여는 경우는 부엌에서 뭘 굽느라 냄새가 많이 난다든가 아니면 청소기를 돌릴 때 정도만 창문을 연다. 그래서 가끔 우리 집에 놀러 오시는 울 부모님이 집에서 창문을 활짝 활짝 열면 그게 그렇게 생경할 수가 없다. 


HVAC 시스템에서는 온도가 몇 도 이하가 되면 자동적으로 난방이 나오고, 몇 도 이상이 되면 자동적으로 에어컨이 나오게 설정할 수 있다. 우리 집은 그냥 이렇게 해 놓는다. 이것의 단점은 남편이 창문 여는 걸 싫어한다는 것... 창문을 열면 여름에는 뜨거운 바깥바람이 들어와서 실내 온도를 높이니까 HVAC가 에어컨이 더 세게 돌아가게 하고, 반대로 겨울에는 난방이 더 세게 돌아가기 때문에 창문 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쩝. 사실 창문 여는 동안에 HVAC를 잠깐 끄면 되긴 하는데 막강 귀차니즘인 나는 그냥 자동 환기 시스템을 믿고 창문을 열지 않는다.




코로나 이후 집에서 환기를 더더욱 자주 시켜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우리 집에 HVAC 시스템이 있으니까 전~혀 걱정 없이 환기를 하나도 안 시키고 있었다. 근데 이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뙇! 도움은 되지만 충분치는 않다고 하여 앞으로는 창문을 자주자주 열어야겠다. 역시 엄마 아빠 말 듣는 게 최고!

매거진의 이전글 미국. 자문화 중심주의의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