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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진 Nov 09. 2024

MBTI는 INFP입니다

때로는 감정적인 사람이고 싶다


“MBTI가 어떻게 되세요?” “저 INFP에요.”

한 사람을 표현하기에 이토록 간단하고 명료한 수식어가 있을까.

 

MBTI란 마이어스(Myers)와 브릭스(Briggs)가 정신분석학자인 카를 융(Carl Jung)의 심리 유형론을 토대로 고안한 자기 보고식 성격 유형 검사 도구인데, 이분적으로 나누어진 4개의 분류 기준을 통해 사람의 성격을 16가지로 분류한다.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지만.

너도나도 할 것 없이 MBTI를 묻던 열풍이 불 때 나도 거침없이 유행의 열차에 탑승하여 성격유형검사를 했는데 그 결과는 놀라웠다. 사고와 감정 유형(T-F) 항목에서 감정(F)의 비율이 무려 98%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평소에 하는 사고 중 이성적인 사고는 겨우 2%에 불과한, 롤러코스터를 타듯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의 변화를 겪는 사람이 바로 나였지만 생각할수록 그리 이상한 일만은 아니었다. 장난에 대한 반응이 큰 탓에 친구들에게 맛깔스러운 놀리는 맛을 선물했고, 영화를 볼 때도 대다수의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뻔한 지점이 아닌 다른 장면에서 눈시울이 벌게지는 이상한 공감능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들 그럴 때 있지 않을까. 주인공들의 모습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나거나 배경과 음악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것이 벅차오를 때.)

 

실시간으로 변하는 감정이 땡그랗게 뜬 두 눈과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에 표가 나던, 속이 훤한 사람이던 나는 요즘 때때로, 아니 실은 자주 T(사고) 유형의 사람으로 변했다고 생각한다.


감염자가 수십 명씩 우후죽순으로 발생하던 코로나 대유행 시기, 병원 안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유 인력이 없는 부서 내부 상황에 코로나에 걸려 늘어가던 결원을 메우는 건 남은 사람들의 몫이었다.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범위를 넘어서 업무를 새로 분담하고, 근무표는 매일 같이 바뀌었다. 물론 근무표는 언제나 오프가 잘리는 안 좋은 방향으로 바뀌었는데, 마스크를 쓰며 사람을 멀리해야 했던 시기의 영향일까. 끝나지 않는 감염병과의 싸움은 사람 간의 온정도 멀어지게 만드는 듯했다. 아픈 동료를 걱정하던 다정한 마음은 시간이 흐르며 차갑게 가라앉았고, 쾌차와 안녕을 바라는 것과 별개로 누군가를 대신하여 출근 준비를 하는 거울 속 얼굴에는 짜증만이 가득했다. 어디 그뿐이었을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지인의 이야기에는 들어주는 척만 할 뿐, 진정한 위로를 건네지 못했다. 마음속으로는 ‘누구나 처음은 어렵지, 세상에 너만 힘든 건 아니야’와 같은 냉소적인 말이 가득했는데, 그마저도 긴 하소연을 계속 들을 자신이 없어 성급히 대화 주제를 돌리고는 했다.

 

그러던 중 여행지에서 새치기를 하는 한 무리의 노인들을 보았다. 한 명이 미리 줄을 선 뒤에 한 명씩 한 명씩 사람이 추가되는 방식이었는데, 쨍한 여름날 야외에서 줄을 서 있던 내 눈에 비친 동의조차 구하지 않는 뻔뻔한 당당함은 참기 힘들었고, 곧장 나의 불만이 시작되었다.


“설령 네 말이 다 맞아도 사람들 앞에서 지금처럼 행동하면 질타받을 수도 있어.”

 

듣기 싫은 말을 하는 내가 타인에게 좋지 못한 모습으로 비치는 것을 염려한 엄마의 말이었다. 어떤 마음으로 한 말인지는 분명 알았지만 못내 서운하기만 했다. ‘폐를 끼치는 행동을 한 것은 그들이고 나는 그 피해의 여파를 고스란히 받은 사람인데, 내 말에 틀린 말은 없는데 왜 그조차도 표현하면 안 돼?’ 하는 억울한 마음이었다. 다행히도 아직 F(감정)의 면모가 남아있어서 분한 감정은 또 금방 가라앉았는데,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본 직전의 모습은 그야말로 비인간적이었다. 홀로 살아갈 수 없기에 세상에는 사람과의 정이 중요하며 활활 타오르지는 않더라도 어렴풋이 잔잔한 온기만은 서로에게 닿기를 바랐는데, 온화한 사려는커녕 구겨진 미간만큼 남루한 인성만이 남아있는 모습이었다. 당당하게 새치기하거나, 아픈 것이 미안할 일은 아니지만 감사 혹은 미안함의 기색이 조금도 없는 사람들을 부당함이라는 단어로 묶고, 냉철한 말을 쏟아내던 나야말로 부당한(不當, 이치에 맞지 않는) 인간성을 가졌던 것이 아닐까. 새치기를 하던 사람은 말 못 할 급한 사정이 있었거나 그것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사회적 배려를 받을 수 있는 노약자였고, 몸이 아파 출근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음번엔 내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MBTI 뒤에 숨기는 했지만, 무 반 토막 내듯 분류한 고작 몇 개의 기준들로 개개인의 성격을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또한 각각의 유형 중 좋고 나쁜 유형은 없고, 그저 16개의 유형 사이 적절히 발을 걸치고 있다가 그때그때에 맞는 유연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T와 F의 사이에서는 F 유형의 사람이 되고 싶다. 이치에 맞는 사실만을 고집하기보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기를, 다른 이의 상황과 처지를 기꺼이 나의 것처럼 여길 수 있기를, 일희일비하더라도 마음껏 웃고 울 수 있는 투명한 마음을 계속해서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의 MBTI는 INFP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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