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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폼 교수 Jan 08. 2021

기상악화 배달 불가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할까?

당근 마켓에서 신생아를 매물로 올려놓는 사건이 발생했다. 세상은 분노했고 그 분노는 당근마켓이라는 플랫폼으로 향했다. 플랫폼의 운영자로서의 책임이 제기되었다.  당근마켓에서는 중고거래에 있어서 문제가 될 수 있는 애완동물, 짝퉁, 주류 등은 AI(?)를 통해서 걸러내지만 신생아를 매물로 올려놓으리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하튼 플랫폼으로서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발표가 있었고 사태는 마감되었다. 플랫폼이라는 개념이 너무 많은 곳에서 나타나다 보니 플랫폼 운영자의 책임 범위를 어디까지로 봐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플랫폼을 구분할 때 광장, 시장, 인프라 이렇게 나뉜다. 물론 필자의 자의적인 구분이지만 플랫폼 운영자의 개입 정도, 통제 정도를 기준으로 나눈 것이니 지금의 상황에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광장은 일종의 장, 터전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구글 검색이나 페이스북의 SNS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데 당근마켓 같이 거래를 연결하되 중간에 수수료를 취하지 않는 모델도 광장 플랫폼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전형적인 시장 플랫폼들은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하면서 중간자로서 신뢰를 제공한다. 결제를 지원하고 양쪽 참여자들의 신뢰 수준을 검증한다. 그리고 그 대가로 수수료를 가져간다. 당근마켓을 시장이 아닌 광장 플랫폼으로 구분하는 이유는 거래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거래 이외에 동네 생활과 같은 커뮤니티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광장에서 플랫폼 사업자의 역할은 많은 부분 제한된다. 광장은 본질적으로 개방적이며 그 안에서의 문제는 광장 참여자들과 광장에 존재하는 기본적인 원칙에 의해 해결된다. 터무니없는 주장은 묻히고 가짜 뉴스는 "싫어요"를 통해서 걸러진다. 물론 플랫폼 운영자들도 개방된 광장의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 노력은 플랫폼을 보다 경쟁력 있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지 플랫폼 운영자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한 노력은 아니다. 아니 아니라기보다는 이를 수행하지 않는다고 참여자들이 불평을 털어놓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운영자에 대한 불평보다는 쓰레기를 만드는 사람에게 지적과 충고를 하는 것이 합당한 행동이다.


가짜 뉴스를 걸러 내는 행위에는 비용이 발생한다. 반면에 선정적인 가짜 뉴스는 트래픽을 만들어 내고 종종 수익창출을 돕기도 한다. 플랫폼의 입장에서 가짜 뉴스를 그대로 두고 싶은 유혹에 빠지고 싶은 순간이다. 하지만 광장이 너무 더러워지면 더 이상 많은 사람들이 광장을 찾지 않는 결과가 나타난다. 그래서 플랫폼 운영자는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광장을 청소해야 한다.



시장 플랫폼의 경우는 약간 다르다. 며칠 전 대설이 내렸다. 모든 길이 마비됐고 귀갓길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이때도 여전히 배달 플랫폼은 움직이고 있었고 라이더들은 배송을 위해 오토바이를 몰아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배달을 중단하지 않은 플랫폼을 비난했다. 플랫폼 중 일부가 배송 중지를 선언하기까지 일정 시간이 걸렸다. 그러는 동안 배달 요구는 늘어났고 라이더 숫자는 부족했다. 알고리즘(AI?)에 의해 배달요금을 올라갔고 올라 간 요금을 보고 라이더들은 일터로 나왔다.


라이더들은 소득을 위해 플랫폼에 참여하고 자신의 판단에 의해 움직인다. 눈이 내렸고 길은 미끄러워졌다. 두 바퀴로 가는 오토바이는 세상 그 무엇보다 무서운 흉기로 라이더뿐만 아니라 빙판 위의 보행자도 위험에 빠뜨린다.

식당은 눈이 내리면서 코로나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손님이 없어지는 상황이다. 그런데 배달 앱의 주문은 계속해서 울려 댄다. 원칙에 의하면 라이더가 배정되고 이동을 시작해야 조리가 가능하다. 하지만 빗발치는 주문에 조리는 미리미리 이뤄진다. 하지만 라이더는 오지 않는다.


눈이 내렸고 라이더들은 다쳤고 식당은 배달되지 못한 음식이 쌓인다. 이 모두를 플랫폼의 잘못이라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조직을 운영해본 사람으로서 눈이 내렸고 빙판이 되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다. 상황을 판단하고 배송불가라는  사업의 중단을 결정하고  메시지를 올리는데 시간이 걸린다. 의사결정자가 다른 중요한 미팅을 하고 있다면 조금 더 지연될 수도 있다.


https://moneys.mt.co.kr/news/mwView.php?no=2021010710028092161


하지만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라이더들은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길 위로 나오지 않는 것이고 식당은 라이더가 배정이 되지 않았기에 조리를 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배고픈 손님들은 라면을 끓이던 쿠쿠의 취사 버튼을 누르면 될 일이다. 그리고 언론이 이야기하는 살인의 주체는 플랫폼이 아니다. 폭설에도 불구하고 길로 오토바이를 끌고 나와야 하는 라디어들의 삶의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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