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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폼 교수 Aug 25. 2019

오픈마켓의 과거

이베이의 중국패전 이야기

타오바오가 중국에서 상거래 플랫폼으로 자리잡은 시기는 2005년이다. 2003년 창업한 후 2년만에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의 67%를 점유하게 된다(각주요망). 이때 타오바오와 플랫폼 경쟁을 펼친 대상은 바로 미국의 이베이(정확하게는 이베이 차이나)였다. 이 두 사업자간의 경쟁은 정확히 오픈마켓간의 경쟁으로 누가 더 많은 공급자와 소비자를 갖느냐의 게임이었다. 물론 그 싸움의 승자는 타오바오였다. 타오바오의 승리의 이유를 찾는다면 몇 가지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알리바바에 관련된 저술들은 마윈의 뛰어난 비전과 조직관리를 꼽는다. 물론 이베이의 중국 시장 경영에서의 몇 가지 중대한 실수도 이러한 타오바오의 승리를 손쉽게 만들었고 이런 이유로 이베이는 단 2년만에 중국시장에서 퇴각하게 된다. 하지만 플랫폼적으로 사고를 하면 약간은 다른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주석) 이베이가 미국에서 아마존에게 추월 당하는 시기는 2012년경이고 2003년 이라는 시점에서 이베이는 미국에서 분명한 전자상거래의 리더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충분한 공급자: 알리바바닷컴

그 첫번째 이유는 타오바오 이전에 알리바바 닷컴이 있었다는 점이다. 타오바오를 론칭하는 시점에 알리바바닷컴은 이미 백만개의 공급자를 이미 보유하고 있었고 이 들은 알리바바를 통해 세계와 소통하고 있었다. 이베이 차이나의 사업시작이 타오바오보다 몇 년 앞섰지만 타오바오가 그 차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알리바바닷컴이 갖고 있던 공급자 네트워크의 역할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전자상거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도 고객이지만 양질의 공급자를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알리바바닷컴은 알리바바가 가장 먼저 시작한 인터넷 상거래이다. 기업간의 거래를 도와주는 플랫폼으로 1999년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하는 시점에 중국기업들의 해외진출과 해외기업들의 중국 파트너 검색을 도와주는 플랫폼으로 성공하였다. 지금은 비록 알리바바의 일원(주석: 2007년 홍콩증시 상장, 2012년 2월 상장폐지)으로 남아있지만 알리바바 그룹의 시작점과 플랫폼에 대한 사고의 시작은 알리바바닷컴이었다. 중국내의 생산능력을 갖춘 공급자와 중국 밖의 수요를 가진 기업을 연결시켜주는 것은 전형적인 플랫폼의 양면시장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알리페이: 매력적 플랫폼 도구

타오바오의 경쟁전략은 아마존처럼 고급지지는 않았다. 아니 고급 질 필요가 없었다. 중국의 소비자들은 아직은 신뢰나 품질보다는 가격과 구색에 관심이 더 많았고 인터넷상에서 상거래를 할 수 있는 인프라, 특히 믿음의 기본이 되는 결제인프라의 구성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기에 한 차원 높은 유통서비스를 이야기할 단계에 이르지 못했던 것이다. 타오바오가 이베이를 무찌르기 위해 시장에 제시했던 도구는 바로 알리페이라는 결제도구였다. 타오바오와 알리바바닷컴의 결제수단으로 알리바바가 만들어 낸 알리페이는 신용카드가 일반적이지 않았던 중국의 사업환경에서 전자상거래 그 자체를 가능하게 했던 아주 매력적인 솔루션이었다. 물론 경쟁자인 이베이는 알리페이를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고 외국 기업인 이베이가 자신의 결제도구인 페이팔을 중국판으로 변형시키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 알리페이는 타오바오가 2년만에 이베이를 누르고 시장의 67% 차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알리페이 아주 단순한 에스크로 서비스이다. 에스크로는 판매자가 상품을 판매할 때 구매자의 대급지금은 타오바오로 이뤄진다. 이후 상품이 배송되고 문제가 없음이 확인되면 타오바오가 보관하고 있던 대금을 판매자에게 지급하는 방식이다. 타오바오에 대한 신뢰만 있다면 구매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 방식은 현재 한국의 모든 오픈마켓에도 적용되고 있는 “구매확정”이라는 과정이고 구매자가 “구매확정”을 누르지 않으면 일주일(사업자마다 조금씩 다르다) 후 대금은 자동으로 판매자에게 지급된다. 알리페이는 구매자가 알리페이에 충전을 한 후 충전된 금액으로 대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알리페이가 일종의 은행이자 신용카드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에스크로 방식의 원조는 타오바오의 경쟁자였던 이베이의 페이팔이었다. 하지만 중국정부는 외국사업자가 알리페이와 같은 은행 역할을 할 수 있게 허용하지 않았고 결국 페이팔은 중국에 제대로 시작도 못해본 채 사업을 접어야 했던 것이다. 물론 역설적으로 중국 정부는 알리바바에게 은행과 같은 사업을 할 수 있게 규제를 완화해준 것이다. 초기 투자를 해외투자자로부터 받은 알리바바의 경우도 이후 알리페이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알리페이를 위한 별도의 국내법인을 세우게 된다. 바로 Ant Financial 마이진푸의 탄생이다.

 

알리페이는 중국 초기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그 무엇보다도 매력적인 플랫폼 도구였다. 아직은 물류에서의 차별점을 중국인들이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서 타오바오는 알리바바닷컴을 통한 공급자의 확보와 알리페이를 통한 신뢰제공을 통해 플랫폼을 성립해 낸 것이다. 알리페이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이후에 마이진푸의 이야기에서 보다 본격적으로 다루도록 하겠다. 알리페이는 단순한 에스크로 서비스에서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리왕왕: 중국스러운 도구

알리페이와 더불어 타오바오 시장 승리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은 알리왕왕이다. 알리왕왕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이다. 모든 상품 페이지에서 알리왕왕의 접속이 가능하기에 중국의 구매자들은 언제든지 판매자를 호출하여 상품에 대한 문의가 가능하다. 즉 아마존이 어렵게 만들어냈던 온라인 거래상의 신뢰를 타오바오는 판매자를 메신저 앞에 대기시킴으로 해결한 것이다. 중국의 구매자들은 이 메신저를 통해 판매자의 현실적인 존재감을 느낄 뿐만 아니라 가격을 협상하기도 했다. 


마켓플레이스에 공급자가 증가함에 따라 경쟁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가격이 내려간다는 것은 일반적인 이론이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그 이론이 그다지 완벽하게 적용되지는 않았다. 세계의 공장인 만큼 상품도 다양하고 변형도 많아서 소비자 입장에서는 판매자가 제시한 가격이 최저가임을 믿기가 어려웠다. 그런 이유로 오픈마켓내에서의 공급자간의 경쟁으로 가격이 하락하기도 했지만 최종 가격 결정은 메신저 상에서 1:1 협상을 통해 이루어졌던 것이다. 결국 구매자들에게 이러한 판매자들과의 소통의 도구는 전자상거래라는 새로운 경험을 보다 쉽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무료 수수료 정책: 개방정책

알리페이와 알리왕왕과 같은 플랫폼 도구들이 이베이 차이나와의 경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타오바오가 이베이 차이나를 꺽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무료 수수료정책”에 있다. 경쟁이라는 상황에서 이베이 차이나가 유료 수수료 정책을 고집한 것은 글로벌 회사라는 한계도 있었지만 중국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평가할 수 있다. 당시 중국은 결제 인프라도 충분히 형성되지 못했지만 배송인프라도 충분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결국 오픈마켓의 기능이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시켜주는데 한정되기에 판매자가 구매자와 접촉이 이뤄지고 난 이후에 플랫폼은 필요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를 전문용어(?) disintermediation라 부른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중간자 배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거래를 위해 배송도 결제도 판매자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기에 이베이는 배제되기 시작한 것이다.


즉 이베이가 요구했던 플랫폼의 수수료는 판매자 구매자 모두에게 불필요한 추가 비용이기에 플랫폼에서 거래가 종결되는 비율이 높지 않았다. 만남은 플랫폼에서 이뤄졌지만 거래의 종결은 전화나 오프라인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결국 본질적으로 수수료를 청구하는 것이 어려운 시장이었고 이 수익화가 불가능한 상황을 타오바오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즉 무료 수수료 정책을 고집한 것이다. 


타오바오는 사업초기부터 거의 최근까지 판매자나 구매자의 등록비용부터 거래에 따른 수수료를 한 푼도 받지 않았다. 플랫폼의 규모를 늘리기 위해 문을 활짝 열어둔 것이다. 타오바오의 무료 수수료 정책은 이런 이유로 판매자가 거래를 위해 굳이 플랫폼을 떠날 이유를 찾을 수 없게 해주었고 그 결과 양면시장의 고객들과 그들 간의 거래를 모두 플랫폼 안으로 끌어 들이는데 성공한 것이다. 


타오바오는 무료라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통해 플랫폼의 성장을 위한 기본 중에 기본인 개방원칙을 철저히 지켜낸 것이다. 물론 타오바오의 무료 정책에 따른 수익모델의 부재는 투자자들에게 큰 고민을 안겨주었지만 이후 시장의 장악과 점차적 광고모델의 도입 등으로 해소된다. 결국 2005년 타오바오는 이베이 차이나를 추월하고 2007년에 시장의 80%를 장악하는 지배적 플랫폼으로 자리잡게 된다. 


같은 해 이베이는 중국시장에서 철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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