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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폼 교수 Dec 13. 2021

로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다

당근마켓이 만들어 낸 변화

과거 미국에는 4000여개의 로컬 신문사가 존재했었다. 투자의 귀재 워렌 버펫은 이 로컬 신문사업을 금이 흐르는 강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그만큼 모든 면에서 좋은 사업이었다. 로컬 신문사는 로컬이라는 시장이 존재함을 증명하는 일종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2004년 인터넷 뉴스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종이가 아닌 디지털 뉴스들이 인터넷 포털과 SNS라는 매체를 통해 전달되기 시작하면서 로컬 신문사들의 자리가 위협받기 시작했다. 이제는 로컬의 뉴스 보다는 나라 전체, 혹은 글로벌 뉴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SNS라는 새로운 도구는 과거 로컬 신문이 담당했던 부고 알림 역할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미디어 플랫폼의 등장은 로컬 신문사에게는 사형선고와 다름없었다. 플랫폼의 등장이 로컬의 핵심기능인 지역뉴스와 알림 기능을 대체해 버린 것이다. 

플랫폼의 등장은 미디어 영역만이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이미 로컬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있다. 로컬의 쇼핑기능은 이미 커머스 플랫폼의 확산으로 존재가치가 사라지고 있고 그 추세는 로컬의 특산품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강원도에 살더라도 신선한 오징어를 구매하는 가장 편한 방법은 가까운 어시장이 아닌 쿠팡을 사용하는 것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 어디에서 전국의 모든 지역특산물을 인터넷으로 구매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단순히 상거래 영역만이 아니다. 도서관과 책방은 구글과 네이버가 대체하기 시작했고 인터넷만 연결된다면 어느곳에서도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로컬만의 직업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즉 플랫폼의 일반화로 오프라인, 지역, 그리고 로컬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들이 다양한 곳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방향으로의 변화도 약하지만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갯마을 차차차”라는 드라마에서 윤혜진(신민아 분)은 강원도 공진항에 내려와서 치과를 개업한다. 진료, 쇼핑, 연구 등 혜진의 일상적인 삶은 공진항이라는 지역으로의 이동에도 불구하고 크게 변하지 않았다. 혜진에게는 이미 플랫폼이라는 신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변화가 하나 발생한다. 바론 “공진 프렌드”라는 대화방이다. 공진항은 작은 시골마을이라 모든 이웃들이 카카오톡 대화방에 참여하고 사소한 사건도 이를 통해 공유된다. 가정 자체가 비현실적이기는 하지만 극중에서는 이 장치가 로컬의 의미를 부각시킨다. 모든 생활이 글로벌로 확장되더라도 사람 그 자체는 그렇게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로컬의 핵심은 지역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커뮤니티라는 사실을 이 드라마는 인식시킨다. 로컬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 커뮤니티라는 인식은 커뮤니티 플랫폼의 등장으로도 증명된다. 바로 하이퍼 로컬(Hyper Local)로 불리우는 새로운 커뮤니티 플랫폼의 등장이다. 이의 대표적인 예는 당근마켓이다. 



당근마켓에서 중고 상품거래를 할 만 아니라 우리 동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공유한다. 이제는 동네에서 지갑을 잃어버리면 가장 먼저 확인해 봐야 하는 곳이 당근마켓이 되었고 밤에 산책을 같이 할 동료를 찾는 가장 쉬운 방법도 당근마켓이 되었다. 로컬을 기반으로 사람과 사람이 만날 수 있는 커뮤니티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혹자들 혹은 미디어들은 당근마켓을 거래플랫폼, 즉 쿠팡과 같은 커머스 플랫폼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근마켓은 거래를 중계하되 그 사이에서 수수료를 받지 않기에 거래 플랫폼으로 정의하기 힘들다. 차라리 구글이 검색을 통해서 지식제공자와 지식소비자를 연결하는 행위와 유사하다. 즉 당근마켓의 본질은 연결과 만남에 있지 거래에 있지 않다. 

당근마켓은 스마트폰의 GPS 기능을 이용한 GPS인증이 기본기능이다. 즉 내가 현재 이 지역에 살고 있다는 인증이 있어야 커뮤니티 플랫폼 참여가 가능하다. 혹자는 이 기능이 지금의 당근을 만들어 낸 핵심이라 이야기한다. 하지만 당근마켓이 만들어 낸 가장 중요한 점은 “이웃과의 나눔”라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가치를 찾아 낸 것이다. 로컬, 커뮤니티, 이웃, 그리고 나눔이 갖고 있는 가치를 다시 살려낸 것이지 중고상품을 위한 오픈마켓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2004년에 시작하여 2021년 롯데를 중심으로 한 펀드에 매각된 “중고나라”를 보면 그 차이가 분명해진다. 중고나라는 분명히 중고상품 거래플랫폼이다. 안전거래를 보장하면서 구매자로부터 적지만 수수료를 받는다. 물론 지역기반이라는 특징도 없다. 쿠팡과 같은 거래 플랫폼이고 단지 상품이 중고일 따름이다. 1,150억에 매각되었으니 충분히 성공한 플랫폼이다. 하지만 새롭지 않은 개념이고 우리가 오늘 이야기하는 로컬이 갖는 그 어떤 가치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당근마켓은 나의 동네사람에게 내가 잘 쓰지 않는 물건을 싼 가격에 나누는 커뮤니티 플랫폼이다. 이 거래를 통해 합리적인 수준의 금전적 보상을 얻으려 한다면 잘못된 생각이다. 무료 나눔이 많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과거 벼룩시장을 생각하는 것이 맞다. 당근마켓이 만들어 낸 가치는 여기서 동네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일종의 신뢰이다. 상품 자체도 새것이 아니고 일면식 없는 사람과의 송금거래는 무언가 찜찜한 구석이 있기에 중고거래는 우리의 삶에서 일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이를 당근마켓은 일상적인 것으로 만들어냈다. 뭔가 집안에 필요 없는 물건이 생기면 “당근하자”라는 그런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 변화는 판매자와 구매자 간에 만들어진 변화가 아니라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 사이에 만들어진 커뮤니티에서의 변화이다. 시장은 이 변화의 의미를 3조원으로 평가했다. 

당근마켓의 성공은 로컬이 갖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로컬이 가진 가장 큰 가치는 커뮤니티 가치이고 이 가치는 모든 것이 글로벌한 세상에서도 로컬의 가치를 지킬 수 있는 이유가 될 것이다. 세상은 각박해지고 이웃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게 되었다. 인터넷의 등장은 우리의 삶의 범위를 순식간에 넓혀 버렸다. 하지만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군보다 내가 사는 동네소식이 언제나 중요하기에 로컬의 가치는 여전히 충분히 크다. 그리고 그 가치는 당근마켓과 같은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으로 이제 충분히 커질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커뮤니케이션 도구의 부족으로 알지 못했고 알리지 못했던 일들이 이를 통해 공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주에서는 10만인 클럽이라는 문화인 커뮤니티가 있다. 다양한 영역의 예술인들이 모여서 정보를 교환하고 소통하는 곳이다. 이 곳에서는 오프라인에서 진행하는 공연이나 전시 소식을 전할 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함께 할 동료를 찾는 시도도 이뤄진다. 이 카카오톡 대화방은 청주시의 노력으로 한단계 진화하려고 한다. 본격적인 커뮤니티 플랫폼을 만들어 보다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 플랫폼은 청주라는 로컬문화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함께 밴드를 할 동료를 찾고 우리 아이들이 벌이는 공연정보를 알리는 그런 로컬만이 가질 수 있는 가치를 공유하는 방향이 바로 그것이다. 


당근마켓을 중심으로 현재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변화는 우리가 과거에 가졌었지만 이제는 잃어버린 로컬, 동네가치에 대한 것들이다. 로컬을 글로벌에 대립하는 개념이 아닌 그 자체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키워 나갈 수 있는 순간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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