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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딸기체리수박 Sep 30. 2021

그깟 병원 나는 못 차린다네

과몰입_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한동안 글이 뜸했다. 얼마 전에 백신을 맞은 탓이었다. 남들은 1차 접종 때는 괜찮다고 해서 별 걱정 안 했는데 난 아무래도 남들과 다른 모양이다. 1차 접종만으로도 너무나도 백며든 탓에, 몇 주 동안 골골거리다가 이제야 좀 정신이 든다. 열도 꽤 났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뭔가를 하고 싶다는 의욕도 거의 없는 상태였다. 그 결과, 요 몇 주 동안은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했다. 늘 몸이 무겁고 열이 살짝 나는 통에 불쑥불쑥 퇴사에 대한 욕구가 올라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난 스스로 마음을 다잡기 위한 주문을 걸었다. 

 '지금은 아파서 그런 거야. 아무 생각 말고 푹 쉬면서 퇴사 생각은 버리는 거야. 퇴사는 안 돼. 넌 퇴사해선 안돼!'


 미친 듯이 아프진 않았지만 몇 주 동안 '조금 아픈 것'이 디폴트 값이어서 그런지 회사 다니는 게 무척 짜증 나고 힘들었다. 어쨌든 짜증 나고 힘든 기간 동안 퇴사하지 않은 덕분에 오늘 나는 또다시 월급을 받았다.


 내가 백며들어서 힘들어하는 기간 동안 내 곁을 지켜준 것들이 몇 개 있었다. 얼마 전부터 쿠팡 플레이에서 볼 수 있게 된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 그리고 그동안 내 힐링을 책임져 준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그중에서도 오늘은 갯마을 차차차에 대한 글을 써보려고 한다. 갯마을 차차차를 안 보는 사람도 많겠지만, 너무 큰 스트레스 없는 달달하고 재미있는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강력하게 추천하는 드라마다. 드라마 주요 인물은 배우 신민아와 김선호다.(극 중의 이름까지 기재하면 혼란이 올 수도 있으니 그냥 배우 이름으로 작성하겠음) 


 신민아는 서울에서 치과의사(페이닥터)를 하고 있고, 김선호는 뭔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뚜렷한 직업 없이 공진이라는 어촌 마을에서 백수로 지내고 있다. 그러다 신민아는 거지 같은 치과 원장에 폭발해서 결국 퇴사를 선택한다. 게다가 실명으로 치과 커뮤니티에 원장에 대한 험담까지 써 놓는다. 이 때문에 취업 길이 막히고 결국 공진에 가서 개업을 하게 된 것이다.


 난 드라마를 보면서 이 부분에 꽂혔다. 

 거지 같은 치과 원장 때문에 폭발해서 퇴사 - 실명으로 원장 험담하기 - 결국 개업


https://www.youtube.com/watch?v=IR7BrgO2oaA

갯마을 차차차

 지금부터 내가 이 장면에 왜 꽂혔는지를 구구절절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일단, 불합리한 것에 대해 화를 내고 퇴사를 선택할 수 있는 신민아, 아니 치과의사가 부러웠다. 대한민국에서 직장 생활하는 회사원이라면 각자 나름대로 어려운 일을 수 없이 겪으면서 살았을 것이다. 나 또한 우리나라가 총기 소지 허용 국가가 아니라는 점에 감사한 적이 있었을 정도로(나에게 총이 있었다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랐으므로...) 괴로운 일을 겪으며 지냈다. 근데 단 한 번도 저런 식으로 내 감정을 표출한 적이 없었다. 


 갯마을 차차차에 나오는 저 원장 정도로 뻔뻔하고 비양심적인 사람이 어디 세상에 한 둘인가? 어쩌면 저 사람은 그렇게 나쁜 건 아닐 수도 있다. 정말 악독한 사람이라면 저 상황에서 신민아가 글 올린 것을 빌미로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수도 있다. 아니면 가운을 집어던져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소송을 할 수도 있다. 물론 비약적으로 표현한 거긴 하지만,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바로 이것이다.


 정말 저 원장보다 나쁜 사람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랑 일하면서 부들부들 거리고 있는 사람도 세상엔 널렸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그냥 그걸 참고 받아들이면서 산다.


 왜?


 우린 개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깟 병원을 차릴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린 퇴사를 해도 다른 방법이 없다. 물론 극 중에서 신민아도 취업을 해보려다가 결국 몰려서 공진까지 내려가서 개원을 선택한 것이지만, 어쨌든 선택권이 있다. 그리고 드라마 설정상 공진에는 신민아가 개원하기 전까지는 치과가 없었다. 생각보다 서울에서 하는 것보다 경쟁력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돈을 더 많이 벌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다. 일단 저렇게 지르고 퇴사를 하고 나면, 다시 취업을 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다. 특히, 자발적 퇴사이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실업수당도 지원받을 수 없다. 그냥 갑자기 백수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나이가 좀 어린 편이라면 처음부터 취업 준비를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경력이 애매해서 어디 쓸만한 곳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실업 상태로 취업 준비를 하면 재직 중인 상태에서 일자리를 알아볼 때보다 훨씬 초조하고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 회사나 들어가면 기존 회사에 있던 빌런보다 더 심한 빌런을 만나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기껏 옮겨왔는데 더 거지 같은 회사에서 눈물을 흘리며 시간을 버텨내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신민아의 처지가 약간 막막한 것처럼 표현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잠깐 동안 나는 저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 부러웠다. 지금까지 나의 모습을 떠올리면 정말 부러웠다. 불합리함을 지켜봐야 했던 수많은 날들, 불합리함을 문제 삼았을 때 오히려 문제아가 되었던 일... 


 하... 부럽다.


(치과의사를 비롯한 많은 전문직 종사자들이 그 직업을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드라마를 보며 잠시 스치는 생각을 정리한 것입니다. '그깟 병원 나는 못 차린다네'라는 제목은 드라마 대사를 인용한 것입니다. 그깟 병원 아니고 최고의 병원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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