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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쓸 데 없는 것도 있을건데

비워내기

by 사라랄라 철사라

쓸데 없는 짓을 한다. 옷장을 열고 안입는 옷, 꼴 보기 싫은 옷을 내다 버리고, 책꽂이에서 죽을 때까지 읽을 일이 없을 것같은 책도 내다 버리고, 상자에서 정리 안 하고 모아놓은 사진들을 쏟아놓고 내 얼굴이 밉고 늙게 나온건 다 찢어버리고 나면 머릿속이 좀 개운해진다. 그래도 뭐가 안 풀리면 혼자서 영화를 보러 가거나 비싼 음식점에서 혼자서 맛있는걸 사 먹는다.

<세상에 예쁜 것>, 박완서



나와 내 삶이 아직 결론나지 않았다는 것을 나 자신을 가꾸고, 가치 있는 일을 함으로써 스스로 믿고 증명해 가고 있다. 어디로 가는지 여기로 가는 게 앞으로 가는게 맞는 건지는 몰라고, 맞는 길로 가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제자리 걸음은 아닌 것은 확실하다. 현타가 왔다.

좋아하던 사람들과의 소통도, SNS 도 재미있게 느껴지질 않았다.

찾지 않던 의미를 찾아 보았다. 찾지 못했다. 세상 쓸 데 없게 느껴졌다.


이번 한 주는 도무지 마음이 힘들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직장에서의 일도, 개인적인 일도.

이럴 땐 숨이 차게 동네 한 바퀴 뛰고 나면 괜찮아 졌는데, 한 주 내내 비가 왔다.

책을 읽거나 필사를 하며 다잡던 마음도 잡히질 않아 괜시리 울려대는 애꿎은 휴대전화만 원망한다.

옷장을 비워내고, 책장을 비워내고, 서랍을 비우고, 책상을 정리하고, 주방청소, 화장실 청소, 베란다 청소, 드라이브, 먹고 자고 뭘 하던 마음이 괜찮아지질 않는다.


별 대가 없이도 넘쳐났던 하루하루의 기대와 설렘 같은 것들도 사라졌다.


주말이 된 지금도 견뎌내는 중이다.


백구과극(白駒過隙),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는 것은 흰 말이 달려 지나가는 것을 문 틈으로 보는 것 처럼 순간이다. 평소엔 빨리 지나가는 것을 알지 못하지만, 뒤돌아보면 인생이 매우 빨리 지나간 것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것도 문 틈으로 보는 흰 말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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