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슬픔이 사람들로부터 되도록 감춰야 하는 감정이 된 건진 몰라도 시도 때도 없이 흐르는 눈물은 나의 '약한' 모습을 온 동네에 소문내는 행동이 되기에 이를 방지하려는 자연스러운 방어 기제 아니었나 싶다.
-김이나 <보통의 언어들>, 109p.
그 어린 나에게 아버지는 무엇을 가르치고 싶었을까?
집에서 우는소리가 나면 아빠는 크게 화를 내셨다. 그리고 울면 누가 쳐다본다고 부끄럽다고 하셨다. 우는 게 부끄러운 일인 줄 알았다.
성장기가 끝나도 슬픈 영화를 봐도 슬퍼도 힘들어도 속상해도 울지 못하고 내 마음을 꽁꽁 묶어둔 채 근 35년을 살아왔다.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아이들을 더 바른 길로 인도하고 싶고 건설적으로 필요한 곳에 귀하게 쓰임 받는 아이들로 자라나게 하기 위해 그동안의 나를 돌아보며 성찰의 시간을 자주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감정을 숨기는 것은, 두꺼운 화장을 한 후에 운동을 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노폐물이 배출되지 않아 독소가 밴 피부에 뾰루지가 올라오듯, 감정을 참아내는 건 놓아달라고 외치는 내 마음을 더욱 옥죄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뾰루지만 나면 다행이지 나중엔 곪아 터지게 된다. 힘들 때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방법조차 모르게 되고, '이건 지금 힘든 게 아니야'라며 뇌를 속이는 것도 가능해진다. 마음은 그렇게 방치되고, 곪아 터질 때쯤 되어서야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라면서 고통을 호소하는 일이 허다하다.
나 스스로 너무 엄격했을까? 이젠 놓아주려 한다 내 마음과 감정들을. 날개를 달고 훨훨 날 수 있도록.
감정은 부끄러운 게 아니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내 감정을 알고, 상대방의 감정을 알아야 급변하는 AI와 디지털 세계에서 건강하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미래 사회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평안을 찾고 건강하게 해소할 수 있도록 오늘도 운동하고 책 보며 글을 쓴다.